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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문재인 케어'의 역습…의료전달체계가 무너진다
서울대병원 허대석 교수
기사입력 : 18.07.02 12:00
메디칼타임즈 기자(news@medical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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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분기 상급종합병원 건강보험 진료비를 전년 동기와 비교하니 41% 증가했다. 의원 (8%), 병원 (9%), 종합병원(14%)과 비교하여 증가율이 3-5배 수준이다. 문재인 케어 시행 이전에도 의료기관 이용 행태는 선진국에 비해 기형적으로 상급종합병원에 편중되어 있었다. 불요불급한 상급종합병원 이용을 억제하는데 일부 역할을 해왔던 선택진료제도까지 폐지되면서, 더 많은 환자들이 대학병원으로 몰린 결과로 해석된다.

7월부터는 실시되는 2·3인실 급여화는 중소병원에는 적용되지 않아, 대학병원의 2인실이 동네 병원 2인실보다 본인부담이 낮아져 상급종합병원으로의 환자쏠림은 더욱 가중될 것이다.

세금으로 의료재원을 충당하기에 ‘무상의료’라고 국내에 소개된 영국의 경우, 본인 부담이 없기 때문에 많은 환자들이 런던 대학병원으로 몰릴 것으로 상상할지 모르나 실제는 그렇지 않다. 영국 대학병원을 방문해보면 전체 병상수가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일정 비율의 빈 병실을 유지하고 있다. 언제 응급환자가 올지 모르기 때문에 병상의 공실률을 10-15% 유지한다고 한다. 어떻게 가능할까?

첫째, 영국에서는 환자가 특정 의료기관이나 의사를 선택할 권한이 없다. 거주지 주치의가 정해주는 의료기관을 가야 한다. 한국처럼 형식적인 진료의뢰서가 아니다. 주치의가 정해주는 병원이 아닌 다른 의료기관을 선택할 경우, 의료비의 대부분은 본인부담이다.

둘째, 의료진이 대학병원에 더 이상 입원할 필요가 없다고 판정하고 지역병원이나 호스피스기관 등으로 전원을 결정하면 바로 집행된다. 한국처럼 환자나 보호자가 퇴원을 거부하고 버티면 몇 년씩 대학병원 병상에서 머물 수 있는 제도가 아니다. 의료자원 배분은 의학적 중증도를 의사가 판단하여 결정한다.

수가통제와 의료선택권은 양립하기 어려운 두 가지 명제이다. 국가가 의료수가를 통제하는 영국과 같은 제도에서는 의료서비스는 국가가 배급을 하는 것이지, 환자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는다. 의료기관이나 의료진에 대한 자유로운 선택권이 있는 미국의 경우, 동일 의료행위에 대한 수가는 천차만별이다. 보험료를 많이 지불하는 고가보험에 가입할수록 의료기관 선택의 폭도 넓어진다. 시장논리로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조절한다.

커피 한잔의 가격을 자판기든, 커피전문점이든 특급호텔 커피숍이든 동일하게 받도록 규제하면 많은 사람들이 특급호텔에서 커피를 마시려고 줄지어 기다릴 것이다. 중이염 수술비가 동네 의원이나 수도권 대학병원이 비슷하다면 어느 쪽을 선택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문의료진과 고가 장비가 있는 대형병원을 선호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감기, 타박상 환자까지 대학병원에 와도 진료를 거부할 수 없고, 의료기관 종별로 수가에 약간의 차등을 두지만, 실질적 본인부담금은 차이가 거의 없다. 대학병원에서 하루에 300명이상의 외래 환자를 진료하는 전문의가 있는가 하면, 암 환자나 정신과 환자도 의사 1인이 하루에 150명이상 진료하기도 한다. 선진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부끄러운 현실이다. 대형병원 의사들은 경증 외래환자를 보는데 지쳐, 입원중인 중환자 진료에 소홀해지는 것도 안전사고의 한 원인이다. 또, 일단 입원하면 퇴원하지 않으려 하는 환자들도 적지 않으니, 수도권 대학병원 병실 구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응급수술 환자가 와도 입원할 수가 없는 경우가 많다.

‘우리 부모님이 아프시다고 하면 아주 경증 질환이 아니면 대학병원에 보낼 것이다. 이를 강제할 근거를 만들면 환자들의 자율권을 침해하는 것이다’라고 현 정부의 의료정책 입안자가 건강보험보장성 토론회에서 발언했다고 한다. 현 정부의 의료정책은 ‘병원비 걱정하지 말고 상급종합병원을 원하는 대로 이용하세요’로 요약할 수 있다. 모든 국민이 균형되게 의료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책결정자들의 입장에서 저비용으로 고급의료서비스를 쉽게 이용할 수 있게 만들려 하니, 의료전달체계에 대한 논의만 오랫동안 반복될 뿐 기본원칙조차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의료 서비스의 질이 더 낮아지고, 당신과 당신의 가족이 그 병원을 반드시 필요로 하는 순간에 이용할 수 없다면 의료선택권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의료수가는 국가가 강제 통제하면서 의료기관 선택권을 제한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우리보다 몇 배 잘사는 선진국에서도 성공하지 못한 의료정책을 현 정부는 할 수 있다고 한다. 중장기적 제도 확립보다 단기적인 생색내기에 매달리는 의료복지 포퓰리즘, 언제까지 지속 가능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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