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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선한 사마리안' 의사의 멸종
사명감과 경계심 팽팽한 긴장 붕괴…응급콜 갈등하는 이유 살펴야
기사입력 : 18.09.06 06:00
이인복 기자 news@medical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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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타임즈 이인복 기자| 의사들과의 만남이 잦은 직업인 만큼 그들과의 식사자리가 생기면 늘 농담 삼아 묻는 질문이 있다. 바로 항공기에서 응급콜이 온다면 받을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의사들 사이에서도 이 질문은 상당히 익숙한 항목인 듯 그들은 큰 고민없이 자신들의 생각을 풀어놓는다. 하지만 결론은 유사하다. 바로 심각한 '고민'이 골자다.

초년병 시절 솔직히 그러한 답변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외국 영화에서 보듯 '내가 의사입니다'라고 소리치며 나가 환자를 척 하니 구해내고 박수를 받는 장면이 익숙해서 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제 흔히 말하는 '짬'이 찬 기자로서 난 그들의 고민을 백번 이해하고도 동의한다. 오죽하면 비행기에 타자마자 수면안대를 꺼내고 잠들어 버린다는 의사가 인간적일 정도다.

잘 되면 비행기 모형을 받고 잘못되면 항공기 혹은 환자에게 줄소송을 당한다는 그들의 인식을 확고히 한 것은 과연 누구였을까.

최근 봉침 치료를 하던 한의사에게 다급한 도움 요청을 받고 아낙필락시스 쇼크가 발생한 환자를 구하러 뛰어 나가는 가정의학과 의사의 화면이 생생하게 방송으로 전해진 바 있다.

당시만해도 초점은 한의사와 봉침 치료에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한 사건으로 주객이 완전히 전도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해당 소송이 진행되며 가정의학과 의사가 피소되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유족과 변호사들이 주장하는 바는 이렇다. 처음부터 아예 현장에 오지 않았으면 몰라도 응급 상황에 함께 한 이상 보증인으로서 함께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요약하면 환자를 외면했으면 몰라도 환자를 구하러 왔던 만큼 보증인, 의료인으로서 주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책임을 지라는 의미다.

이러한 사실이 전해지면서 전국의 의사들은 불같이 분노하고 있다. 또한 다행스럽게도 많은 이들의 머리속에 '선한 사마리아인'이라는 일종의 불문법의 잔상이 남아있다는 점에서 여론도 이러한 상황에 반감이 우세하다.

그렇기에 아마도 이번 사건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사법부에서도 사건의 무게감과 파장을 알기에 쉽게 배상 책임을 내리기는 쉽지 않은 이유다.

하지만 문제는 이제 그 후로 넘어간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이번 사건은 전국 의사들의 강한 반감을 불러오며 공분을 사고 있는 전대미문의 사건이다.

아무런 책임이 없는 의사가 오로지 환자가 위급하다는 말만 듣고 응급의약품을 들고 뛰어가는 모습도 전파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됐다는 점에서 공감의 깊이도 크다.

설사 그 의사가 책임없이 법원을 나온다 해도 이미 사람들의 머리속에 나아가 의사들의 머리속에 확고하게 이번 사건이 각인됐다는 의미다.

결론적으로 이미 의사들의 머리속에는 "응급환자를 잘못 도왔다가는 피소당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져나가고 있을테다. 그리고 그 인식은 경계심과 위기감을 증폭시킬 가능성은 그리 적지 않다.

이제 아마도 이번 사건을 접했던 20대부터 80대까지의 의사들은 항공기의 응급콜과 마찬가지로 응급환자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도 상당한 '고민'을 거듭할 것이다.

의사로서의 사명감과 머리속을 지배하는 경계심과 위기감이 팽팽하게 맞서며 그들의 번민은 커져만 갈 가능성은 무시할 수 없다.

만약 그 사명감으로 나선 의사가 유사한 이유로 또 다시 피소된다면 그것은 곧 '선한 사마리안 의사'들의 종말을 고하는 쐐기가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한 의사가 자신의 가족들이 병원에 갈 경우 의사 가족이라는 것을 꼭 강조하라고 신신당부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순간 의사 가족으로서 조금 더 나은 케어나 특혜를 바라는 것인가 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답변은 단호했다. 같은 의사로서 의학적 판단을 존중하니 방어적 치료가 아닌 최선의 치료를 해달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라고.

이번 사건으로 얼마나 많은 의사들이 선한 사마리안의 허상을 떨쳤는지는 감히 예측할 수 없겠지만 분명한 것은 자동차에 '아이가 타고 있어요'라는 스티커를 붙이듯 이제 옷 위에 '나는 CPR을 원합니다 고소하지 않겠습니다'라는 스티커를 붙이고 다녀야 할 날이 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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