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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어느 노(老) 교수의 고백
기사입력 : 18.10.18 06:00
이인복 기자 news@medical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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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타임즈 이인복 기자|최근 하루가 멀다하고 연이어 터져나오고 있는 대리수술 문제로 온 나라가 들썩거리고 있을때 문득 그가 생각난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지 모르겠다.

1년에 1000건이 훌쩍 넘는 수술 업적을 달성해 병원에서 대대적인 홍보를 펼칠때 오래전부터 왕래하던 기자와의 인터뷰조차 한사코 거절했던 바로 그 교수였다.

당시의 기억을 되돌아보건데 그의 업적은 병원에서 군침을 흘린만한 소재였던 것은 분명하다.

혹여 그 교수가 특정될까 수술 건수를 적을 수는 없겠지만 대한민국은 물론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기록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이러한 엄청난 성과를 거두고도 한사코 인터뷰도 홍보도 거절하는 것일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 무작정 찾아간 그의 연구실에서 당시로서는 너무나 조심스러운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한참을 망설이던 그가 처음으로 꺼낸 말은 '망신'이라는 단어였다. 이러한 수술 건수가 외부로 알려지는 것 자체가 너무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다며 그는 이를 홍보하고 있는 병원을 원망했다.

두번째로 그는 '물음표'를 제시했다. 기자가 아니라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 누구라도 1년에 1000건이 넘는 수술을 하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겠느냐는 되물음이다.

세번째로 그가 제시한 단어는 '현실'이었다. 매일 매일 이건 아니라고 되뇌이면서도 수술복을 입고 들어가야 하는 자신에 대한, 대한민국 대형병원의 현주소에 대한 회한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나라 최고 명의로 손꼽히는 이 노(老)의사의 삶을 하루하루 회한으로 채웠을까.

병원계에는 이른바 '명의 효과'라는 것이 있다. 한 방송사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이름이 나오는 순간 최소 6개월에서 길게는 2년까지 예약이 '완판' 된다는 속설이다.

그렇게 수백, 수천명의 환자들이 몰려들때 이를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2년이 걸려서라도 꼭 그 의사에게 진료를 보겠다는 환자를 돌려보낼 수 있는 기전은 전무하다.

병원에서도 이를 마다할 이유는 없다. 하루 24시간 내내 병원의 모든 인프라를 무서운 속도로 돌려야 겨우 유지되는 극심한 저수가속에서 신규 환자는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다.

이런 비정상은 또 다른 비정상을 낳는다. 명의는 한명인데 환자는 수백명, 수천명에 달한다. 병원에서는 어떻게든 이 환자를 붙잡아야 하고 사람은 부족하다.

그러니 가용할 수 있는 인력을 모두 몰아넣는다. 그나마 전임의나 전공의가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마저도 없는 곳에서는 그런 인력이 간호사가 되기도 의료기기 영업사원이 되기도 한다.

최대한 수술을 빨리 끝내야 하니 그 명의는 기계에 가까워져 간다. 1번부터 4번까지 한번에 4개의 수술방을 열어놓고 순간이동을 하며 주요 부위만 메스를 댄다.

다음 수술이 밀려있으니 그 수술방은 빠르게 정리가 돼야 하고 대부분의 가능성은 가능성으로만 묻힌 채 우선 병실로 환자를 밀어 올린다.

이러한 현실이 최근 내부고발 등으로 터져나오면서 대리 수술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서자 한 대학병원은 교수의 직접 집도를 원칙으로 수술에 대한 대대적인 모니터링에 들어갔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벌써부터 실효성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집도의가 수술 전체를 커버한다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비정상이 비정상을 만들며 마치 정상처럼 굳어져 버린 지금 비정상적 궤도가 점점 더 커져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결국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는 것이 시작이다.

"의사들이 먼저 변해야해. 스스로 타협하면 누가 바꿔주겠어. 돈, 인센티브, 논문, 명의 이런 것들에 눈이 멀면 안돼. 나라도 바꿨어야 하는데 나도 눈이 멀어있었지. 나도 죄인이야. 다같이 마음을 먹어야해 다같이.그래야 바뀌어."

그 노 교수가 마지막으로 던진 회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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