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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브리병 꾀병으로 오해받기 십상...다학제 접근 필수”
정욱진 대한폐고혈압연구회 회장
기사입력 : 21.04.19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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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타임즈=최선 기자] "특별한 증상이 없어 꾀병처럼 보인다. 발견했을 땐 너무 늦은 경우가 많다."

희귀질환에 속하는 파브리병은 자칫 '꾀병'으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특정 효소 부족으로 당지질이 축적돼 발생하는 파브리병은 전신에 작용하기 때문에 흔히 보이는 이명이나 신경통, 각막 혼탁과 같은 증상으로 시작해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칠 때가 많다.

실제로 최근 아시아 태평양 지역 의료 전문가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희귀질환자의 약 23~42% 정도만 적절한 치료를 받는다는 결과가 나온 바 있다. 전문가들은 임상지침 부족, 의약품 승인 부족, 검사·치료 재원 부족에 이어 파편화된 진료를 문제점으로 꼽는다.

국내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다학제적 진료가 가능한 보험 환경이 구축됐지만 여전히 갈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욱진 대한폐고혈압연구회 회장(가천대학교길병원 심혈관연구소장)을 만나 파브리병의 다양한 증상과 희귀질환의 다학제적 진료의 활성화 방안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파브리병은 전신에 걸쳐 다양한 증상이 나타난다. 이 때문에 초기 진단 및 치료가 늦어진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파브리병은 모든 증상들이 비특이적으로 나타나고, 전신에 걸쳐 발생하기 때문에 진단이 매우 어렵다. 실제로 파브리병 남성 환자의 경우 소아 때부터 신경병성 통증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를 성장통이나 꾀병으로 생각하고 넘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 어떤 환자의 경우 성인이 될 때까지 스테로이드 치료를 받다가 관절에 무리가 온 상태에서 진단을 받은 경우도 있다.

파브리병은 크게 통증, 이명, 뇌졸중 등의 신경계 증상, 눈에 소용돌이 모양이 나타나는 인과적 증상, 혈관 각화종이라고 해 피부에 작고 검붉은 반점이 나타나는 피부과적 증상, 소아기 때 나타나는 소화기계 증상을 비롯해, 신장 기능과 심장 기능을 악화시키는 증상 등도 나타날 수 있다. 환자들은 안과, 피부과, 소화기내과, 신경과, 신장내과, 심장내과 그리고 소아유전학과 등을 통해 파브리병을 진단을 받거나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순환기내과에서는 비후성심근병증을 가진 환자의 1% 정도의 환자가 파브리병으로 진단될 수 있지만 의사가 파브리병을 모르면 진단이 안되는 경우가 있다.

파브리병은 진단까지의 시간이 많이 걸리므로 환자들의 우울증이나 불안증을 겪는 일이 많다. 여성 파브리병 환자는 유전질환이라는 죄책감에 의해 정신적으로 힘들어 하기 쉬워 정신과 진료가 동반되기도 한다. 이처럼 파브리병으로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선 다양한 진료과의 협력을 통한 다학제적 진료가 필요하다.

▲파브리병은 진단까지는 보통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되고, 진단이 늦어지는 이유는?

처음 증상이 나타나는 시기는 3~10세 사이의 어린 나이로, 평균적으로 진단을 받기까지 평균 15년 이상 걸린다고 알려져 있다. 평균적으로 진단을 받기까지 남성은 16.3년, 여성은 13.7년 가량 걸린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신체 전반에 걸쳐 증상이 비특이적으로 발현되기 때문에 다른 질환으로 진단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정욱진 대한폐고혈압연구회 회장
파브리병의 진단이 늦어지는 이유가 낮은 인지도와 증상적 특징도 있지만, 그보다 질환을 숨기는 경우가 더 문제가 된다. 파브리병은 X 염색체를 통해 다음 세대에 유전된다. 때문에 가족에게 피해가 갈 일을 염려해 질환을 숨기거나 잠적하는 사례도 있다. 국내는 유전질환이 터부시 되는 경향이 있어 특히나 파브리병이 있는 사실을 가족내에서 비밀로 하는 경우가 있다. 파브리병을 조기에 발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진단받은 환자의 가계도를 파악하고 검사를 하는 것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진단받은 환자를 중심으로 평균 5명의 추가 가족 환자가 발견된다고 보고되고 있다.

치료제가 있기 때문에 숨기거나 치료를 미룰 필요가 없다. 조기에 발견해서 적극 치료하는 것이 최선의 결과로 이어진다. 적절한 치료만 받으면 기대수명만큼 남들과 똑같이 살 수 있다.

▲조기 진단으로 적절한 치료를 받았을 때와 치료가 늦어질 때의 예후 차이는?

파브리병을 치료하지 않으면, 신체에 다양한 합병증이 발생해 결국 조기사망에 이를 수 있다. 대부분 파브리병 환자들은 심장이나 신장에 심각한 기능 장애를 가지고 있으며, 가장 흔한 사망 원인은 심혈관 질환으로 보고되고 있다. 일반인과 비교해 파브리병 환자의 기대수명은 남성 16.5년, 여성 4.6년 정도로 짧다. 심각한 증상 발현과 이른 사망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는 조기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

▲파브리병 등 희귀질환에 다학제적 접근이 필요한데 국내 현황은?

파브리병과 같은 희귀질환의 경우 다학제적 접근이 당연히 필요하다. 파브리병은 증상이 매우 다양하게 전신에 걸쳐 나타나고 환자 개개인마다 겪게 되는 증상이나 치료의 효과 등이 다르다. 때문에 관련 있는 다양한 과에서의 스페셜리스트들이 함께 진료하고 치료하는 다학제적 접근이 중요하다. 실제로 이런 다학제적 접근은 희귀질환에 대한 진료의 표준화와 치료 효과의 개선, 의료질의 향상을 유도할 수 있다.

문제는 현제 국내에서 다학제적 진료가 이뤄지는 병원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해외 파브리병 치료의 다학제적 접근 사례를 설명하자면, 영국은 파브리병을 비롯한 기타 리소좀 축적 질환(LSD)에 대한 적절한 치료를 제공하기 위해 국가 전문가가 다수의 센터를 지정한다. 이 센터들에서는 파브리병 환자들의 유전상담, 진단서비스, 환자의 임상 평가 및 지속적인 치료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또 유전 질환에 대한 전문성을 가진 주치의를 중심으로 다양한 관련 과들 스페셜리스트와 팀을 이끌고 환자에 대한 적절한 평가 및 치료를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다학제적 그룹에는 전문 간호사들도 포함돼 있다.

이러한 부분이 국가에서 지원, 제공되고 있으므로 다양한 환자의 경험이나 증상에 따라 적합한 치료가 가능하다. 특히 환자 가족 검사(family screening)나 가족 치료를 위해 유전 상담 또한 제공하고 있다. 추가적으로 파브리병 환자들이 겪는 정신과적 증상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치료가 이뤄지고 있다고 알고 있다.

국내에는 아직 이러한 유전 상담이 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진행이 어려운 부분이 있다. 의료진 8명이 모이는 경우 수가를 인정해 주지만 상담 시간만 30분이 넘어가고 길게는 몇 시간에 걸쳐 이뤄지는데 32만원에 불과한 수가만 인정되고 제출해야 하는 서류로 인한 행정 부담 및 삭감 우려까지 뒤따른다. 병원 경영 입장에서는 그 시간에 차라리 해당 의료인력이 다른 진료를 보는 게 더 이득인데 누가 굳이 자기 시간을 들여 다학제적 진료를 하려고 하겠나.

국내에서도 건강검진을 받을 때 유전적으로 이상이 있는 사람들의 가족에는 유전검사 등을 시행해 사전 선별, 치료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또 특정 지역센터를 지정해 전문적으로 파브리병 등 희귀질환을 진료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국내 파브리병 및 희귀질환 치료 환경에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현재 국내 파브리병 환자의 진단 치료율은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매우 낮은 상황이다. 국가 차원에서의 파브리병 환자의 진단을 위한 유전 상담 서비스나 정신과 상담 서비스 등이 연계된다면, 더 많은 파브리병 환자들이 진단과 치료를 통해 일상적인 삶을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국내에서 인구 대비 추산되는 파브리병 환자는 1200여명 정도인데 불과 200여명만 진단, 치료를 받는 실정이다. 이들을 적극 발굴해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는 진료 환경이 구축돼야 한다.

전문 치료 센터를 건립한 영국은 참고할 만한 모범 사례다. 영국은 센터 건립 후 기존 1500명의 환자의 4배에 달하는 6000명의 환자를 찾아내 치료를 받게 됐다. 이런 노력이 없었다면 해당 잠재 환자들은 제대로 된 여생을 살 수 없었을 것이다.

국내는 파브리병 환자로 진단을 받더라도 보험 기준이 다른 나라보다 까다로워서 증상이 발현되지 않으면 약물 치료를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파브리병은 조기 치료가 중요하므로 이러한 부분 또한 완화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주사제를 2주에 한번 씩 맞는 일에 부담을 느끼던 환자들에게 경구용 치료 약물이라는 새로운 옵션이 생겼다. 하지만 경구용 치료 약물은 현재 주사 치료를 1년 이상한 환자에게만 처방할 수 있다. 그로 인해 환자들이 경구용 약물로 치료를 시작하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치료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이러한 보험 기준도 변경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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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기사를 쓴

    최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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