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벌제는 의사에게 모욕감…이젠 자정할 때다"

박양명
발행날짜: 2011-08-22 06:58:20
  • 초점 의사-제약사 관계 윤리지침 제정 급물살 "교육 시급"

|초점| 의료인-제약산업 관계 윤리지침 제정

정부는 제약사와 의사 사이의 리베이트를 뿌리뽑기 위해 칼을 뽑아 들었다. 작년 11월 리베이트 쌍벌제가 본격 시행된 것.

제약사에 리베이트를 받은 의사는 적발되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의료계 관계자들은 "리베이트 쌍벌제는 의사들에게 모욕적이고 부끄러운 법"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에 따라 한국의료윤리학회는 의료인과 제약산업 관계를 위한 윤리 지침안을 마련하고, 각계의 의견수렴을 위해 근거창출임상연구국가사업단과 공동으로 지난 19일 1차 공청회를 열었다.

다음 달 22일에는 2차 공청회를 열어 다시 한번 의견을 모을 예정이다.

‘의료인-제약산업 관계 윤리지침’ 안은 3개의 기본원칙과 8개 분야로 나눠진 행동지침으로 구성돼 있다.

한국의료윤리학회 고윤석 회장은 "현재 의료계에서 윤리학회가 가장 시급하게 다뤄야 할 현안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논의한 결과 제약회사와 의료인의 관계 윤리지침 제정이 가장 먼저 꼽혔다"고 밝혔다.

그는 "의료인과 제약회사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지만 윤리에 관해서 의료인이 만든 행동규범이 지금까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쌍벌제의 국회 만장일치 통과로 작년 11월, 의료인은 심한 모욕을 당했다"며 "의료인 스스로 지킬 수 있는 윤리지침을 만들어 준수할 때"라고 덧붙였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 허대석 원장도 "최근에 일어난 여러가지 사건을 보면서 의사가 전문가로서 신뢰성에 상처를 입고 있는 현실이 대단히 안타까웠다"고 환기시켰다.

이어 허 원장은 "의사들이 자율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기정화하는 기능이 작동하고 있는 것을 사회에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환경은 열악한데, 윤리까지 생각해야 하나”

하지만 현재 의료현실에서 윤리 강화만 주장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의료 현실을 바꾸기 위한 제도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료윤리학회와 근거창출임상연구국가사업단은 19일 의료인-제약산업 관계 윤리 지침에 관한 공청회를 열었다.
건국의대 A교수는 "의료인 윤리의식이 높아져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OECD 국가들 중에서 보면 의료보험료가 높은 편이 아니며 이를 의사와 약사 등이 나눠 가져야 하는 열악한 의료환경 속에서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또 "의료환경 자체가 열악한데 종교인 정도의 윤리 수준을 바라는 것은 무리"라며 "환경 변화를 위한 제도적 법적 개선이 동반돼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B병원 원장은 "의료인은 비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고귀한 직업인이라는 것이 맞지만 병원을 운영하다보면 생업의 개념이 들어간다"면서 "현재 보험수가에서는 윤리지침을 이야기하면 그것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의료인에게 윤리적인 잣대를 갖다 대면서도 그들이 지속가능한 모델로 의사를 포기하고 다른 직업을 찾지 않도록 하는 대안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리지침에 앞서 '윤리교육' 이뤄져야 할 때

의사들의 윤리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지침도 중요하지만 결국 ‘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

의료윤리연구회 이명진 회장은 "리베이트 쌍벌제는 의사로서 부끄럽다. 아무리 법으로 제제를 해도 받을 사람은 다 받는다. 받아서 부끄러운 것은 받지 말아야 한다"며 "결국 윤리교육이 가장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의약분업 이전에 겪었던 구체적인 사례를 예로 들면서 교육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당시 어떤 약을 10개 사면 60개가 왔는데 그것이 리베이트이고, 죄라는 것을 모르고 받았다. 잘못된 것이라고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

이 회장은 "결국 의학교육의 문제"라고 못박았다.

그는 "제약사가 도산한다, 의사가 망한다는 것은 이유가 되지 않는다. 도산할 회사는 도산하고, 의사도 망할 사람은 망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독약품 김철준 사장도 "의약분업 전에는 정부가 리베이트를 관행적으로 25%까지 인정해줬다. 저수가를 전제로 정부가 양보한 것이다. 이러한 관행 때문에 의사들이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서 관행적으로 해온 것이 많다"며 "아무리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도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시간을 장기적으로 봐서 학생 교육을 강화하고 전공의 교육도 하는 등 윤리 교육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에 고윤석 회장은 "많은 의사들이 자기 가치를 지키면서 진료행위를 하고자 할 때 이렇게 생각을 해봐야 한다는 지침은 있어야겠다고 판단했다"며 "어떤 것이 리베이트냐 아니냐는 받는 의사, 주는 제약사 모두 알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또 그는 "결국 의대 교육, 졸업 후 교육을 통해 윤리적인 민감도를 향상시키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면서 "대한내과학회에서는 의료윤리교육을 조금씩 하고 있으며 앞으로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의학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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