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메타가 만난 사람

    정체성이 뚜렷했다. 그는 본인을 '의사과학자'로 소개했다. 대개 병원 교수들의 자기소개가 OO과 교수나 임상의로 끝나는 것과 사뭇 다른 풍경이다. 이달 개최된 대한비뇨의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우수학술상을 수상한 것도 의사과학자라는 양면적인 속성이 한몫했다는 게 그의 판단.의사과학자는 과학적인 연구 방법을 습득하고 독립적인 의과학연구를 수행하는, 말 그대로 의사이면서 과학자를 뜻한다. 명칭이 낯선 것은 그간 국내에서 의사과학자를 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기초과학, 임상 어느 하나 만만치 않은 도전 과제인 까닭에 두 분야의 교집합을 찾기란 쉽지 않은 게 당연할 터. 실제로 국내 연간 의대 졸업자 중 1%만 의사과학자가 되는 현실에서 진료에 치이고, 연구에 치이다 보면 이도 저도 아닌게 된다는 하소연까지 나온다.상황은 더 복잡해지고 있다. 의대 증원 문제가 불거진 데다가 최근 카이스트는 의사과학자 양성을 목표로 과학기술의전원 설립에 팔을 걷었다. 김아람 건국대학교병원 비뇨의학과 교수(대한비뇨의학회 기획위원)를 만나 융합 연구 성과 및 최근 불거진 의사과학자 양성 공론화에 대해 물었다.지난 9월 김아람 교수는 대한배뇨장애요실금학회에서 최고 권위의 학술상인 멘토 아카데미 어워드(Mentor Academy Award)를 수상했다.3년간 SCI 논문 13편을 게재하고 배뇨장애 및 요실금 분야 의학 발전에 기여한 점을 인정 받은 것.이달엔 대한비뇨의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선 전립선 비대증 치료에 사용되는 5 알파 환원효소억제제가 방광암 위험을 낮춘다는 검증 연구로 우수학술상(기초 부문)을 수상했다.김아람 교수는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해선 정책·제도적 지원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수상 경력은 흥미롭다. 2017년 비뇨기과학회, 2018년 배뇨장애요실금학회 학술상은 기초 부문에서, 2021년 배뇨장애요실금학회 학술상은 임상 부문에서 각각 수상했다.올해 비뇨의학회 우수학술상은 기초 부문 수상이었지만 연구 아이디어는 3년 전 내놓은 임상 논문이 기초가 됐다. 임상과 기초과학 두 분야가 서로 유기적으로 시너지를 내며 연구 동력이 된 것.김 교수는 "방광암의 성별비는 남성이 80%, 여성이 20%로 남성에서 약 4배 더 많다"며 "비뇨의학 분야 연구진들은 왜 남성에서 발생률이 높은지 의문을 가져왔고 여러 연구가 진행됐다"고 말했다.그는 "두타스테리드나 피나스테리드로 대표되는 5 알파 환원효소억제제가 전립선암 발생에 미치는 연구도 여럿 진행됐다"며 "여기에 착안해 해당 약제들이 과연 방광암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연구하게 됐다"고 밝혔다.그는 "각종 연구를 종합해 분석하는 메타분석을 한 결과 실제로 5 알파 환원효소억제제가 방광암 위험을 낮춘다는 결과물을 3년 전 내놓았고 이를 시발점으로 이와 유사한 연구들이 많이 활성화 됐다"며 "해당 연구는 임상에 기반하고 있지만 이를 통해 추후 진행할 연구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고 강조했다.2020년 논문은 임상 데이터 분석에 기반한 반면 2023년 연구는 5 알파 환원효소 억제제가 방광암 유병률과 재발률을 낮추는 분자생물학적인 기전에 초점을 맞췄다.김 교수는 "임상의의 관점으로는 5 알파 환원효소억제제가 방광암 위험을 낮춘다는 결과가 나오면 그것으로 끝나지만 의사과학자의 관심사는 약물을 넣었을 때 실제로 방광암 세포가 죽는지 확인하는 데까지 확장된다"며 "약제를 투약할 때 방광암을 유도하는 유전자 중에서 SLC39A9가 특이적으로 억제되는 것을 실험실에서 바이러스 연구로 확인해 논문을 쓰게 됐다"고 설명했다.그는 "이는 5 알파 환원효소억제제가 어떤 유전자를 타겟으로 해 방광암 억제 효과를 내는지 확인한 최초의 연구"라며 "의학적 메커니즘을 규명한 것은 아무래도 과학자로서의 관심사가 크게 작용했다"고 말했다.그는 "임상과 과학을 같이 하면 하나의 사안을 여러 각도로 들여다보고 분석할 수 있기 때문에 유기적인 시너지를 낼 수 있다"며 "의사가 되기로 마음 먹었을 때부터 의사과학자를 꿈꿔왔기 때문에 그의 일환으로 임상 논문과 기초 과학 논문을 병행해서 쓰고 있다"고 했다.최근 '의사과학자 양성 및 의과대학 설립 필요성'에 대한 설문에서 국민 86%는 의사과학자 양성에 찬성한다는 답을 내놓았다. 의사과학자 양성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84.8%였다. 미래 선도 국가 도약을 위해 의학과 과학의 융합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 실상은 어떨까.김아람 교수는 "의사과학자 양성이 이슈로 부상했지만 대한민국 의료체계에서 수술과 외래 진료, 각종 행정 업무를 끝마치고 기초과학 연구까지 병행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며 "과학 연구와 임상 연구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진 의료기관이 아니라면 혼자서 그런 시스템을 갖추는 것도 버겁다"고 지적했다.그는 "아산병원에서 수련하던 당시 수술과 연구를 병행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었고 좋은 스승들의 가르침을 통해 방향성을 잡았다"며 "건국대 역시 줄기세포학교실이 있어 해당 분야 연구진들과 네트워킹을 통해 포괄적인 연구를 시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이런 인큐베이팅 시스템이 없거나 경험해보지 않은 경우 의사과학자 한명이 의료기관에 취업한 후 연구 인프라와 네트워킹을 구축해 독자적인 연구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그의 판단.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뜻이다.김아람 교수가 지난 11월 1일부터 4일까지 코엑스에서 열린 75차 대한비뇨의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우수 학술상을 수상했다.김 교수는 "면역학회도 산학연을 두루 포괄하면서 광주과학기술원 교수가 회장을 맡기도 하는 등 융합 연구를 위한 시도가 늘고 있다"며 "본인도 연구 주제와 영감을 얻기 위해 과학, 기초의학자와 그룹을 만들어 주기적으로 만나는데 논의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는다"고 밝혔다.그는 "무엇보다 접촉이 있어야 관심이 생기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네트워킹 제공이 의사과학자 양성에 굉장히 중요하다"며 "그간 국내에서 임상과 과학의 융합 연구는 과학적 탐구를 좋아하는 개인의 열정에 기댄 측면이 큰데 이제는 좀 바뀔 때가 되지 않았나 한다"고 말했다.인간게놈프로젝트, mRNA 연구로 코로나19 백신 개발의 주역이 된 연구자 모두 의사과학자 출신이다.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의 37%는 의사과학자이고, 다국적제약사의 대표들도 의사과학자 출신이 지배적이다. 이들의 탄생엔 한 가지 주제에 다양한 연구자가 참여해 길게는 수십년 '끝장 연구'를 할 수 있는 풍토가 뒷받침됐다.김 교수는 "국내에선 대형병원이라고 해도 대외적으로 공표할 만한 연구 실적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며 "임상의사와 과학자가 만나 양질의 가치 있는 연구를 하려면 시간과 돈이 필요하지만 기다려주는 분위기는 아니"라고 귀띔했다.그는 "융합 연구를 통해 임팩트 팩터(논문평가지표) 10점 이상의 논문이 나오려면 최소 2~3년의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한데 국내에선 인내와 투자 대신 다작을 원한다"며 "본인도 최근 6년간 SCI급 논문을 33편 이상 썼지만 오히려 적게 쓰더라도 더 깊은 연구를 하고 싶다는 갈망이 든다"고 강조했다.이어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려면 양적 수치로 환원되는 연구 성과물 대신 질적 평가로의 가치 척도 전환이 필요하다"며 "지금 의사과학자를 양성한다고 해도 연구자가 나오려면 20년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장은 국내에서 활동하는 소수의 의사과학자들에게만이라도 국가 정책적으로 지원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 의료계 뜨거운 감자 의대정원

    의료계에서 의과대학 정원 확대 대안을 제시하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다. 정부는 의대 증원을 필수의료 대책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이는 소기의 목적을 이루지 못한 채 의료비 폭증만 야기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관련 대안으로 '사관학교형 의대'를 제시한 대한의사협회 윤인모 전 기획이사는 21일, 의료전문지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이에 대한 각계 관심이 모이는 상황을 전했다. 사관학교형 의대란 제2의 의사면허 개념으로, 필수·지역의료에만 종사할 공무원 신분 의사를 양성하는 제도다.대한의사협회 윤인모 전 기획이사는, 의료전문지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사관학교형 의대'에  대한 각계 관심이 모이는 상황을 전했다.앞서 대한의사협회 기획이사로 있으면서 의료계 내부에 사관학교형 의대의 실효성을 피력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현재 필수의료 대책으로 거론되는 수가 인상, 의대 증원 등은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이와 함께 집필활동과 언론 인터뷰, 국민 청원 및 홍보사이트 개설로 사관학교형 의대를 해법으로 강조해 왔는데, 최근 200만 유튜버 방송에 출연하면서 대중의 관심을 받는 상황이다.이와 관련 윤 전 기획이사는 "의대 증원으로 의료계에서 강경 투쟁 얘기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 해야 할 대상은 국민으로 국민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며 "이제 국민은 계도의 대상이 아니라 설득의 대상이다. 의사가 잘 설명하면 국민이 이해해 줄 것이라고 보는 이들이 있는데 이제 그럴 수 있는 때를 지나쳤다"고 말했다.이어 "이를 위해선 의료계가 발로 뛰며 며칠 밤을 새워서라도 설득하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미약하게나마 뭐라도 해야 겠다는 마음으로 개인적으로 여러 활동을 해왔는데, 최근 한 유튜브 채널에 출현하고 누적 조회수 100만과 몇천 개의 댓글을 받았다"며 "사관학교형 의대에 동의한다는 내용이 많았는데 좋은 의견이라면 국민도 수용하기 마련"이라고 설명했다.그는 현재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은 구조조정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지금의 필수의료 문제는 날씨의 변화가 아니라 기후의 변화라는 설명이다. 실제 우리나라 GDP는 1~2%대에 머무르고 있다는 반면, 의료비 증가율은 7.8%로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라는 것. 재정을 늘리거나 사람을 더 투입해 문제가 해결될 시기는 이미 지나갔다는 진단이다.윤 전 기획이사는 10년 뒤 본격적인 위기가 도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재는 필수의료에 자부심을 가진 50대 초반 의사들이 겨우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들에게 수련받아야 할 젊은 의사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명맥이 끊길 위기라는 설명이다.대한의사협회 윤인모 전 기획이사가 집필한 '사관학교형 의대' 관련 서적그는 "진짜 위기는 병원에 갔는데 치료해 줄 사람이 없는 것이다. 현재는 50대 초반 의사를 주축으로 시스템이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들이 10년 뒤 동시다발적으로 퇴직하면 후임이 없다"며 "사람이 사라지면 전문성도 같이 증발한다. 나중엔 배우고 싶어도 배울 곳이 없는 악순환이 고착화되는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이 같은 필수의료 기피 현상의 원인으로 저수가 구조를 이용하는 대형병원의 행태를 지목했다. 필수의료는 수가가 낮다 보니 병원에서 찬밥 신세가 되기 일쑤기 때문이다. 더욱이 필수의료는 당직과 의료분쟁이 수반되는 고된 분야인데, 이를 버티고 교수가 될 동기가 떨어진다는 것.윤 전 기획이사는 실제 필수의료에 종사하던 40대 의사들이 피부·미용으로 대거 전환하고 있다고 전했다. 젊은 의사들이 공중보건의사나 군의관으로 지원하지 않고 사병으로 빨리 전역하려는 것도 이 같은 구조의 문제에서 파생됐다는 설명이다.그는 이처럼 명맥이 끊길 위기에 놓인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선 적어도 1000명 이상의 의사가 필요하다고 봤다. 모두 필수의료를 기피한다면, 이를 국가가 강제하며 충분한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보상만 충분하다면 공공의료라고 해도 충분한 질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 의사를 확보하는 방안이 굳이 의대 증원일 필요는 없다고 봤다. 기존 자원으로 활용하는 학제 개편이 더 빠르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관련 현안이 의대 증원에만 매몰돼 진척되지 않고 있는데, 논점이 1000명의 필수의료 의사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와 관련 윤 전 기획이사는 "이제 의료는 지원과 독려의 대상이 아니라 구조조정 대상이다. 그냥 놔두면 공멸이고 정부는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다수 증원은 의료계가 받아들일 수 없으니 결국 사태는 악화된다"며 "의료계가 먼저 구조조정을 제안하지 않으면 결국 당할 수밖에 없다. 알을 깨고 나가면 병아리가 되고 깨지면 프라이가 된다"고 설명했다.이어 "공무원 의사라고 월급 적게 주는 게 아니라 필요한 분야인 만큼 더 대우를 해줘야 한다. 공공의료가 나쁘다고만 생각하는데 싱가포르처럼 수준이 높은 곳도 있다"며 "이런 국가를 벤치마킹해야 한다. 이를 전제로 하지 않고 공공의대나 지역의사제부터 논하니 부화뇌동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이 같은 주장이 의료계 내부 반발을 사 의협 기획이사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던 일은 다소 씁쓸하다는 반응이었다. 다만 이는 의협을 생각한 본인의 선택이었다며 집행부의 압력은 전혀 없었다고 강조했다.또 지금은 필수의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료계 내부 단결과 정부와의 협력이 필요한 시기라며 뜻을 모아줄 것을 촉구했다.그는 "의협은 대국민 메시지를 전해야 할 리더 그룹이다. 의사만 위하는 메시지 대신 국민도 의사도 함께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해야 문제를 풀어갈 수 있다"며 "국민과의 괴리를 부추기는 메시지는 결국 전쟁으로 가고 그렇게 된다면 피해복구가 굉장히 어려워진다. 의협이 현미경이 아닌 망원경으로 현안을 풀어나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많이 읽은 뉴스

약관을 동의해주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