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보청기 팔면 끝? 사후관리 구멍…의료적 보조기기로 관리 중요
고령화로 난청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보청기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지만, '구매'와 '사용' 사이의 간극은 여전히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보청기를 구입하고도 서랍에 넣어둔 채 사용하지 않거나, 불편함 때문에 착용을 중단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전문가들은 그 핵심 원인으로 '피팅(적합)과 사후관리 체계의 부재'를 지목한다. 제도가 보급에만 초점을 맞추고, 실제 효과를 좌우하는 관리의 질을 담보하지 못하고 있어 전문가를 통한 적합 관리 과정이 뒤따라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메디칼타임즈는 28일 '난청 보청기 급여화가 왜 필요한가'를 주제로 좌담회를 열고 보청기 보급 이후 관리의 질 담보 방안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었다.이날 좌담회에는 대한이과학회 이동희 정책위원장, 대한이비인후과의사회 박상호 서울지회장, 동산보청기 최범용 총괄이사, 보건복지부 유정민 과장이 참석했다.■팔면 끝난다? "보청기는 전자제품 아냐"보청기는 단순한 음향 기기가 아닌, 개인의 청력 특성에 맞춘 의료적 보조기기다. 같은 난청이라 하더라도 손상된 주파수 대역과 정도가 다르고, 좌우 청력 차이, 인지 상태, 생활 환경에 따라서도 조정값은 달라져야 한다. 이 때문에 보청기 착용 후 반복적인 피팅과 미세 조정, 청력 재평가, 사용 교육이 필수적이다.박상호 대한이비인후과의사회 부회장환자가 실제로 보청기를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 즉 초기 상담과 피팅, 사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보청기의 보급 효과가 크게 떨어질 수 있지만 국내 현실은 이 과정을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박상호 대한이비인후과의사회 부회장은 "환자가 보청기를 시작조차 못하는 이유는 경제적 부담이 가장 크다"며 "시작 후 많은 환자가 중도 포기하는 이유는 보청기를 잘 맞추고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검사와 추적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그는 "유럽 기반 조사 자료인 유로 트랙(EuroTrak)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타났다"며 "안경은 한 번 맞추면 바로 잘 보이지만, 보청기는 기존에 듣지 못했던 소리까지 들리게 되기 때문에 초기 적응 과정에서 조절이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 싱크대 물 틀어놓는 소리, 설거지 소리 등 일상 소음이 새로 들리면서 불편을 느낄 수 있고 적절한 조절이 이뤄지지 않은채 이 과정이 지속되면 오히려 불편함을 느껴 사용을 포기하게 된다는 것.난청 보청기에 대한 지원이 이뤄지고 지원에 대한 비용-효과를 담보하기 위해선 적어도 보청기를 유지할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는 뜻이다.박 부회장은 이어 "환자에게 보청기를 권하면 종종 '내 친구들이 보청기는 소용없다고 해서 안 했다'는 답을 듣는다"며 "이 역시 적합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효과를 체감하지 못한 경험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보청기 실패 가장 큰 이유는 적합 관리 부족…유인책 필요동산보청기 최범용 총괄이사 역시 보청기 시장의 운영 문제를 지적했다.동산보청기 최범용 총괄이사 그는 "관련 과 졸업 후 매장을 열어 단순 판매만 하고, 적절한 피팅이나 사후 관리를 하지 않는 사례가 많다. 일부는 폐점 후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도 해 병원 중심의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이어 "보청기는 단순한 성능뿐 아니라, 이를 조절하고 환자에 맞게 맞춤 피팅할 수 있는 전문가가 가장 중요하다"며 "교수나 의사들이 있는 병원에서 체계적인 장비와 시스템 안에서 피팅이 이뤄져야 하는데, 현재는 자격증도 없는 상태라 제대로 구별이 어렵다"고 지적했다.병원 중심의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이 필요하고 그 일환으로 국가 자격증과 같은 틀이 있었으면 한다는 것.이에 이동희 대한이과학회 정책위원장은 "보청기는 초기 도입 당시 신고제 기반으로 판매돼 국민에게 전자기기처럼 인식됐다. 현재는 전문적인 피팅과 처방을 위한 자격 정리가 필요하지만, 전문성을 유지하면서 장벽이 되지 않도록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밝혔다.보청기 상담과 적합 과정에서 수가 부재도 문제로 지목됐다.박상호 대한이비인후과의사회 부회장은 "보청기를 처방하고 적합을 확인하는 과정에는 최소 20분 이상의 상담 시간이 필요하지만, 현재 검사 수가만 있고 적합 비용은 별도로 산정되지 않아 의사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이어 그는 "수가가 제대로 산정된다면 개원의들도 시간을 들여 상담과 처방에 참여할 유인이 생길 것"이라며 "이는 보청기를 중도 포기하는 환자를 줄인다는 점에서 환자에게도 혜택"이라고 했다.현재 건강보험 체계에는 보청기 적합, 재조정, 장기 추적 관리 등에 대한 별도의 수가가 없다. 의료진이 지속적으로 시간을 들여 관리를 해도 보상은 따르지 않는 구조로 인해 의료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할 유인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일단 판매가 이뤄지면 이후 관리나 책임은 사실상 사라지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 현장의 공통된 지적이다.이동희 대한이과학회 정책위원장(오른쪽)이동희 대한이과학회 정책위원장은 "보청기는 의료기기이지만, 현장에선 일반 가전제품처럼 판매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전문 인력, 장비, 적절한 환경에서 피팅이 이뤄지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도 소용이 없고 이로 인해 '보청기는 효과 없다'는 인식이 생겨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우려했다.■"비용 지원만으론 부족…관리까지 포함하는 시스템 필요"국내 보청기 급여제도에서는 초기 구매 비용과 사후 관리 비용이 분리돼 있지만, 의료기관과 환자 간 청구 과정의 불편함 때문에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대한이과학회 이동희 정책위원장은 보청기 가격 고시제 도입과 제도 정비 과정에서 사후 관리의 중요성이 반영됐지만 미흡하다는 반응이다.그는 "보청기 급여정책은 사후 관리가 지속적으로 이뤄지도록 초기 구매 비용과 별도로 후기 적합 비용을 5년 간 나눠 지급하는 방식으로 설계됐다"며 "문제는 초기 구매 후 매년 나눠 지급하는 후기 비용의 경우, 실제로는 1년에 여러 차례 보청기 수리나 점검을 받는 경우가 많고, 중도 포기 및 청구 과정의 번거로움으로 원 취지대로 작동하지 않는 일이 많다는 것"이라고 했다.유정민 복지부 과장행정 절차도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 환자가 직접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지원금을 직접 청구해야 한다. 고령 환자에게는 이 과정 자체가 큰 부담이다. 서류 준비, 방문, 온라인 절차 등이 어렵고 복잡해 중간에 포기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동산보청기 최범용 총괄이사는 "환자가 직접 공단에 청구해야 하는 불편함 때문에 참여가 저조하다. 병원과 공단이 바로 연계되는 시스템이 마련된다면 환자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유정민 복지부 과장은 "초기 적합 관리 20만 원, 후기 적합 관리 5만 원씩 4회로 지원하고 있으나, 의료기관 내 진찰료 체계와 연계가 필요하다"며 "충분한 상담과 관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적정 보상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좌담회에서 전문가들은 보청기 급여 정책을 두고 '급여 중심의 제도화'가 아니라 '관리까지 포함하는 시스템 설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단순히 기기를 지원하는 수준을 넘어서, 전문 인력 기준, 적합 관리 의무화, 정기 평가 시스템 등을 법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는 것이다.특히 현행 개별 사업 방식이 아니라, 난청을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는 통합 법률 제정 필요성도 제기됐다. 이른바 '난청관리법'이다. 출생부터 노년까지 생애 전 주기에 걸쳐 청력을 관리하고, 예방·진단·치료·재활까지 이어지는 구조를 법적으로 구축하자는 제안이다.이동희 대한이과학회 정책위원장은 "난청은 생애 전주기에 걸쳐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고 단순한 노화 현상이 아니라 평생 관리해야 할 건강 문제"라며 "보청기 급여화 논의도 결국 그 일부일 뿐이다. 전문 인력 양성, 자격 관리, 사후관리 기준, 불법 판매 단속, 대상자 데이터 구축 등 종합적인 정책 틀이 마련돼야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보청기는 '사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관리하느냐'의 문제라는 지적이다. 인구 고령화의 흐름 속에서 난청 관리 역시 새로운 공중보건 과제로 떠오른 지금, 숫자와 예산을 넘어선 '질 관리' 중심의 접근이 요구되고 있다.이날 전문가들은 보청기 급여화와 관련해서는 전문가 체계, 적합 관리, 수가 산정, 법적 기반 마련 등 여러 과제가 동시에 해결돼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단순한 가격 보조를 넘어, 환자가 실제로 보청기를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종합적 관리 체계를 그 핵심으로 제시했다.이날 전문가들은 보청기 급여화와 관련해서는 전문가 체계, 적합 관리, 수가 산정, 법적 기반 마련 등 여러 과제가 동시에 해결돼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