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의원 인근 약국 개설하면 담합일까…대법원 판단은?
병원 인접 공간에 개설된 약국의 적법성을 둘러싼 분쟁에서, 대법원이 기존 약사들의 소송 제기 자격을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기준을 분명히 했다.대법원은 "의료기관 처방 조제 기회를 공정하게 배분받을 이익은 약사법이 보호하는 법률상 이익"이라며, 이를 제한적으로 본 원심 판단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대법원은 서울 영등포구보건소장이 특정 약사에게 내준 약국개설등록 처분의 취소를 구한 소송에서 원심 판결을 깨고 환송했다.9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대법원은 서울 영등포구보건소장이 특정 약사에게 내준 약국개설등록 처분의 취소를 구한 소송에서, 원고 적격이 없다고 본 원심 판결을 깨고 환송했다.이 사건은 산부인과·피부과 의원이 입주한 건물 4층 일부 공간에 신규 약국이 개설되면서 촉발됐다. 보건소는 2020년 7월, 해당 공간에 대한 약국개설등록 신청을 수리했다.이에 인근 건물에서 약국을 운영하던 약사들은 "병원과 공간적으로 밀접한 약국 개설은 약사법이 금지한 형태"라고 주장하며 등록처분 취소를 요구했다.문제의 핵심은 ▲의료기관 시설 일부를 분할해 약국을 개설한 것인지 ▲병원과 약국 간 담합 가능성이 구조적으로 차단됐는지 ▲이와 같은 약국 개설로 인해 기존 약사들이 보호받아야 할 법률상 이익이 침해되는지 등이였다.앞서 서울행정법원은 2022년 11월 판결에서, 이 약국이 형식상 분리된 것처럼 보일 뿐 실질적으로는 병원 시설 일부를 분할해 개설된 것과 다름없다고 판단했다.법원은 병원 원장이 공간 소유 구조를 자녀 명의로 변경하고, 병원 부속시설처럼 운영된 피부관리실을 사이에 두는 방식으로 약사법상 제한을 우회했다고 봤다.그 결과 해당 약국은 병원 외래환자의 처방 조제를 사실상 독점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약사법 제20조 제5항 제3호 위반을 인정했다. 다만, 소송을 제기한 원고들 가운데 일부는 제소기간 도과 또는 원고적격 부존재를 이유로 각하됐다.하지만 서울고등법원은 다른 판단을 내렸다. 원심은 "원고 약국들이 병원과 다른 건물에 위치해 있고, 병원 처방 조제가 주된 매출원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신규 약국 개설로 인한 실질적 손해가 크지 않다는 이유로 원고적격을 부정했다.결국 본안 판단에 이르지 않고 소송은 각하됐다.대법원은 이러한 판단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약사법 제20조 제5항이 단순히 공익만을 위한 규정이 아니라, 의료기관으로부터 독립해 조제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조제 기회의 공정한 배분'을 보호하는 규정이라고 분명히 했다.특히 "기존 약국의 주된 매출이 해당 의료기관 처방에 기반하지 않았다는 점이나, 매출 감소 폭이 크지 않다는 사정만으로 원고적격을 부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기존 약국이 문제된 의료기관의 처방전을 처분 전후로 실제 조제한 사실이 있다면, 신규 약국 개설로 인해 조제 기회가 줄어들 가능성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고, 이 경우 기존 약사는 취소소송을 제기할 법률상 이익이 있다는 것이다.대법원은 "원심은 약국개설등록처분에 대한 제3자의 원고적격 법리를 오해했다"며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이번 판결로 사건은 다시 서울고등법원으로 돌아가, 약국 개설이 실제로 약사법 제20조 제5항 제2·3·4호를 위반했는지 여부에 대한 본안 판단을 받게 된다.법조계와 약사사회에서는 이번 판결이 병원 인접 약국 분쟁에서 기존 약사의 소송 문턱을 낮춘 결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동안 일부 하급심에서 매출 비중이나 감소 폭을 과도하게 요구해 원고적격을 부정해 온 흐름에 제동을 걸었다는 분석이다.한 약사단체 관계자는 "대법원이 조제 기회 자체를 보호되는 이익으로 명확히 한 만큼, 병원 인접 약국 개설을 둘러싼 분쟁에서 실질 판단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