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아무때나 먹으라던 혈압약…복용 시기 논란 재점화되나

유럽심장학회 등 학회들이 혈압약 복용 시기를 두고 '시간대 보다는 편의성'에 맞출 것을 골자로한 진료지침을 개정하면서 사실상 논쟁 종식을 선언한 가운데, 최근 저명한 논문에 이를 반박한 논문이 게재되면서 강압제 복용 시점 논란이 재점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수십 년간 반복돼 온 아침 복용과 저녁 복용의 우열 논쟁은 2022년 발표된 대규모 무작위 임상시험인 TIME 연구나 BedMed 등의 RCT 결과와 이를 종합한 메타분석에 의해 "편한 때 복용해도 된다"로 수렴된 바 있다.시점에 상관없이 그 효용의 크기가 크지 않아 "복용 시점보다 복약 순응도가 더 중요하다"는 방향으로 임상적 컨센서스가 형성된 것. 시점에 매몰돼 혈압약 복용 시기를 놓치기보다는 '잊지 않고 꾸준히 먹는 것'이 핵심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그러나 이 같은 흐름에 재차 변곡점을 만든 연구가 등장했다. 이달 9일 JAMA Network Open에 발표된 'OMAN 연구'는 복용 시간에 따라 야간 혈압과 일주기 리듬 회복에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하며, 혈압약 복용 시점의 의미를 재조명했다(doi:10.1001/jamanetworkopen.2025.19354).논란이 지속되면서 항고혈압제 복용 시간 중요성의 과장 여부나 연구에 따라 결과가 뒤바뀔 수 있는 등 임상 설계의 구조적 결함 가능성에도 이목이 쏠린다. 그간 수행된 주요 임상 결과 및 최신 연구 결과의 의의에 대해 정리했다.■지속된 복약 시간 논쟁…아침 대 저녁 결과는?"고혈압 치료에서 항고혈압제 복용 시간은 과연 중요한가?"란 질문은 최근 수년간 여러 임상시험과 메타분석을 통해 지속적으로 다뤄져 왔다. 본격적으로 복용 시기의 효과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 초중반부터.2010년 스페인의 Hermida 박사 연구팀은 2000여 명의 고혈압 환자를 대상으로 한 무작위 연구에서, 취침 전 복용군이 아침 복용군보다 24시간 혈압 조절은 물론 심혈관 사건 발생률까지 낮다는 결과를 발표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하지만 이 연구는 단일 연구기관에서 수행됐고, 일부 결과 해석에 논란이 제기되면서 재현 가능성과 일반화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됐다.이후 2020년에 발표된 "Hygia Chronotherapy Trial"은 이전 연구를 확장한 것으로 약 1만 9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대규모 임상시험이었다.연구진은 취침 전 복용이 주요 심혈관 사건 발생률을 45%까지 줄인다고 보고했지만, 동료 평가 과정에서 수차례 의문이 제기됐고, 일부 데이터 처리 방식과 결과의 비현실적 크기 때문에 국제 학계는 이 연구를 공식적으로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미국 심장학회(AHA)와 유럽심장학회(ESC) 모두 Hygia 연구 결과를 근거로 권고안을 수정하지 않았다.시계의학적 접근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이를 객관적이고 실용적인 기준에서 검증하려는 시도가 이어졌고, 그 결정판이 2022년 영국에서 발표된 'TIME Study' 연구다(DOI: 10.1016/S0140-6736(22)01786-X).TIME 연구는 온라인 등록과 전자 건강기록을 활용한 무작위 배정 방식으로 2만 1000여 명의 고혈압 환자를 아침 복용군과 저녁 복용군으로 나눠 평균 5년간 추적했다.주요 평가 변수는 심근경색, 뇌졸중, 심혈관 질환으로 인한 사망으로 설정했고 결과적으로 두 군 간 사건 발생률에 유의미한 차이는 없었다.이 연구는 복용 시간보다 복약 순응도가 중요하다는 현실적 결론을 제시하면서, 기존 복약 시간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었다.2024년 ESC에서 새로 공개된 BedMed, BedMed-Frail 임상은 쐐기를 찍었다.각각 2017년 3월부터 2023년 12월까지 캐나다 전역의 436개 의료기관 내 3357명, 2020년 5월부터 2024년 2월까지 캐나다 앨버타에서 지속적 치료를 받는 776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에서 취침 시간 또는 아침 복약을 달리해도 급성 관상동맥 증후군, 뇌졸중 또는 심부전으로 인한 사망 또는 입원에서 별다른 차이가 없었던 것.ESC의 2024년 개정 진료지침. 항고혈압약제 복용 시기와 관련해 편한 시간대에 복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권고했다.ESC는 2024년 개정 진료지침에서도 이같은 내용을 반영하며 논쟁 종식 의지를 피력했다.항고혈압약제 치료의 시기 항목 관련 ESC는 "현재 증거는 혈압을 낮추는 약물 투여 타이밍이 주요 심혈관 사건 결과에 이점이 있음을 보여주지 않는다"며 "약물은 복약순응도를 개선하기 위해 하루 중 가장 편한 시간에 복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시했다.이어 "환자는 또한 복약순응도를 보장하기 위해 매일 같은 시간에 일관된 환경에서 약물을 복용하도록 권장해야 한다"고 권고했다.■OMAN 연구서 야간 혈압 추가 하락 확인…"한계도 명확"이달 공개된 OMAN 연구는 중국 15개 병원에서 무작위배정 임상시험 방식으로 진행됐다.기존의 연구들이 주로 사망이나 심근경색, 뇌졸중, 급성 관상동맥 증후군과 같은 실질적인 건강 사건 지표에 초점을 맞췄지만 OMAN 연구는 야간 혈압 조절과 일주기 리듬 회복이라는 생리적 지표에 초점을 맞췄다.연구 대상은 항고혈압제를 처음 시작하거나 2주 이상 중단했던 환자 720명으로, 아침 복용군(352명)과 취침 전 복용군(368명)으로 무작위 배정됐다.모든 환자는 올메사르탄 20mg과 암로디핀 5mg이 결합된 복합제를 하루 1회 12주 동안 복용했으며, 4주차와 8주차에 24시간 활동 혈압과 진료실 혈압을 측정해 용량을 조정했다.1차 평가 변수는 야간 수축기 혈압의 변화였고, 2차 평가는 일주기 리듬 정상화, 야간 목표 혈압 달성률, 주간 및 24시간 평균 혈압, 진료실 혈압 변화 등이었다.분석 결과 취침 전 복용군은 야간 수축기 혈압이 평균 3.0mmHg 더 감소했고, 야간 이완기 혈압도 1.4mmHg 더 낮게 조절됐다.목표 혈압 범위(수축기 120~135mmHg)에 도달한 환자 비율도 취침 전 복용군이 79.0%로, 아침 복용군의 69.8%보다 유의하게 높았다(P=0.01).주간 혈압이나 24시간 평균 혈압, 야간 저혈압 발생률은 두 군 간 차이가 없었다는 점은 한계로 남았다.야간 혈압 상승이 심혈관 사건 발생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는 다수의 역학적 근거를 고려하면, 고위험 환자에서는 복용 시점 조절이 실제 예후 개선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이를 증명하진 못한 것.고혈압학회 관계자는 "고혈압 치료의 목표가 단순히 평균 혈압 수치 관리에서 벗어나 시간대별 혈압 패턴 조절로 확장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OMAN 연구가 의의를 지닌다"며 "다만 이를 실제 예후 개선으로 이를 입증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그는 "사르탄 성분들도 여러가지가 있어 올메사르탄 단일 성분으로 시행한 임상이 실제 다양한 약제를 복용하는 환자들의 환경을 반영했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야간 혈압 추가 강하의 이점이 있었던만큼 장기간으로 지속됐을 때 어떤 예후 변화가 있을지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이어 "TIME 연구도 온라인 자가 보고 방식에 기반했기 때문에 실제 복용 시간이 정확히 지켜졌는지 확인이 어렵고, 약물 복용 시점이 생리적 혈압 패턴과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에 대해선 알려주지 않는다"며 "정밀한 웨어러블 방식의 24시간 혈압계가 개발돼 널리 보급된다면 야간 혈압 관리에 대한 임상적 함의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을까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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