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돈 안받는 착한 손, 뒤로는 리베이트

안창욱
발행날짜: 2011-10-05 06:50:25
  • 자선 빙자 불법행위 만연 "합동 기획수사만이 근절책"

최근 부산에 분원을 개원한 H요양병원. 이 병원 A원장은 요즘 깊은 고민에 빠졌다. 오는 환자마다 당연한 듯 본인부담금을 깍아달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A원장이 더욱 놀란 것은 주변 요양병원들이 하나 같이 본인부담금 할인 경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월 30만~40만원을 받는 요양병원이 태반이었고, 심지어 본인부담금을 한 푼도 받지 않는 곳도 있었다.

일부 의료급여환자들은 식대까지 면제하면 입원하겠다고 흥정을 할 정도다. A원장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복병을 만난 것이다.

A원장은 "본인부담금을 적정하게 받지 않는다는 것은 환자들에게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 그냥 눕혀만 놓겠다는 것인데 무작정 깎아달라고 요구해 깜짝 놀랐다"고 토로했다.

H요양병원은 이런 지역에서 만연한 본인부담금 할인 요구에 굴하지 않을 작정이지만 끝까지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의료기관들이 환자들을 유치하기 위해 불법으로 본인부담금 할인 경쟁을 편 결과 환자 보호자들이 진료비 깎기를 당연시하고 있는 것이다.

건강보험법, 의료급여법 상 본인부담금을 면제, 할인하거나 금품 등을 제공하는 방법으로 환자를 알선, 유인할 수 없다.

물론 자치단체에서 인정하지 않은 환자에게 교통편의를 제공하는 것 역시 환자 유인 알선에 해당한다.

지난해 적발된 S의료재단의 범죄 개념도
인공신장실은 요양병원보다 상황이 더 심각하다.

지난 8월 부산지방경찰청은 본인부담금을 면제해 주는 수법으로 혈액투석환자들을 유치한 8개 신장내과를 적발하고, 민모 씨 등 의사 6명을 의료법 위반으로 입건했다.

이들은 환자 당 2300만~1억 7700만원 상당을 면제했고, 총액이 6억 1천여만원에 이른다.

부산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이들 병원은 기본적으로 환자들에게 교통 편의, 본인부담금 면제 등을 해 왔고, 심지어 환자들에게 매달 20만원에서 30만원을 주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본인부담금 10%를 받지 않아도 병원을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까.

그는 "본인부담금을 면제해도 진료비의 90%가 공단 부담금이기 때문에 환자 100명만 모으면 어마어마한 돈이 되고, 일부 환자에게 돈을 주더라도 수입에는 지장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혈액투석 1회 진료비는 15만원 선이다.

이중 본인부담금 약 1만 5천원을 받지 않더라도 100명의 환자가 1주일에 3번씩 한달 혈액투석 치료를 하면 1억 6천여만원의 공단부담금을 받을 수 있다.

자선을 빙자해 환자 불법 유인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적발된 일부 인공신장실은 제약사 리베이트까지 챙기는 수법으로 더 큰 이익을 취했다.

본인부담금을 면제하는 수법으로 더 많은 환자들을 유인하고, 제약사는 조혈제 등을 계속 사용해 달라며 리베이트를 건낸 것이다.

신장내과 의료인 송모 씨를 포함한 5명은 최고 1억 5천만원의 리베이트를 받다가 이번에 덜미가 잡혔다.

부산지방경찰청에 따르면 부산지역 혈액투석환자는 약 3천명이지만 인공신장실은 45개에 달한다.

따라서 일부 인공신장실이 불법으로 수백명의 환자들을 싹쓸이한 결과 정상적인 의료기관들은 점차 설자리를 잃고 도태될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불법행태가 학습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부산지방경찰청은 만성신부전환자들을 유치하기 위해 환자들에게 30만원에서 50만원의 금품을 제공하고,
제약사로부터 26억원 상당의 리베이트를 받은 S재단 이사장 정모 씨를 구속했다.

S재단 산하 부산, 서울, 노원병원장 등 7명은 불구속 입건됐다.

올해 부산지역 일부 신장내과들이 환자들에게는 본인부담금을 면제하거나 되레 돈을 주고, 뒤로는 리베이트를 챙긴 수법과 유사하다.

특히 이런 의료기관들이 지역사회에서 점점 더 영향력을 발휘하고, 영역을 확장시키고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지난해 적발된 S재단은 인공신장실뿐만 아니라 요양병원, 재활병원, 한방병원까지 설립하는 등 사업을 확장했다는 것만 보더라도 솜방망이 처벌의 단면을 볼 수 있다.

여기에다 S재단은 지금도 환자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투석치료비 및 약값을 지원한다며 광고하고 있는 실정이다.

S재단 관계자는 "진료비 지원은 환자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직접 대면상담을 해야 한다"면서 "건강보험 환자라 하더라도 최대한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한다"고 떳떳하게 설명했다.

대한투석전문의협회 손승환 부회장은 "협회 차원에서 지금까지 이번 불법행위를 하는 의료기관 50여개를 고발했지만 단 한 곳도 처벌 받지 않았다"고 환기시켰다.

이어 그는 "오히려 이런 의료기관들은 지역사회에서 훌륭한 일을 하는 것처럼 포장돼 있다"며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 때문에 이런 의료기관들을 근절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강력한 합동 기획수사 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손승환 부회장은 "불법의료행위와 연관된 인공신장실은 매출액이 상당해 보험 재정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불법 유형이 다양하면서도 비슷해 수사 의지만 있으면 불법을 증명할 수 있다"고 못 박았다.

그는 "복지부, 심평원, 공단, 보건소, 검찰, 의협, 학회가 합동 수사팀을 만들어 수사 대상을 정해 적극적인 기획수사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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