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괄수가제였다면 아버지를 살릴 수 있었을까요?"

이석준
발행날짜: 2012-06-19 12:35:32
  • 현직의사 아고라에 실제 사례 소개 "소신 진료 못했을 것"

19일 '다음' 아고라에 현직 의사가 쓴 포괄수가제 반대 글이 화제다.

글쓴이가 포괄수가제의 위험을 보호자 입장에서 쓴 글인데, 게시한 지 반나절도 안돼 조회수는 4만건, 댓글은 1100건을 훌쩍 넘어섰다.

글을 올린 아이디 '크리스마스'는 자신을 현직의사라고 밝혔다.

그리고 환자 보호자 입장에서 자신의 아버지 사례를 소개하며 포괄수가제의 위험성을 1인칭 관점에서 서술해 나갔다.

[아래는 자신을 현직의사로 밝힌 아이디 크리스마스 글 요약]

5년 전 지방에 계신 아버지께서 전화가 왔다. 한달 째 기침이 계속된다는 이유에서다. 나는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고 동네 병원 진찰을 권했다.

일주일후 아버지로부터 다시 전화를 받았다. 동네병원에서 X-ray와 폐 CT를 찍었는데 폐는 깨끗하지만 뭔가 애매한 부분이 있다고 대학병원을 가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며칠후 대학병원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결과를 들으러 아버지와 함께 담당 교수를 찾았다. 의사는 환자의 폐는 깨끗하지만 간 암덩어리가 발견됐다고 했다. 하지만 수술은 어렵고 1년을 넘기지 못한다고 했다.

하늘이 노래지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당시 아버지의 허망한 표정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아버지를 그대로 놓아 보낼 수 없어 간암 최고 권위자가 있는 서울의 큰 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결과는 더 나빴다. 간암은 물론 위암도 발견됐다는 청천병력같은 소리를 들었다.

의사는 암크기도 워낙 크고 환자 나이도 있어 수술은 어렵지만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했다. 믿었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수술후 3년간 3개월마다 병원에서 CT를 찍었다. 암이 재발하지 않을까해서다. 병원은 3년간 재발이 없자 6개월에 한번씩 찍자고 권유했다. 자식된 입장에서 3개월마다 한번씩 찍고 싶었지만, 병원시스템을 알고 있어 그렇게 했다. 병원도 과잉진료가 두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6개월 후 찾아간 병원에서 아버지 간암이 재발되고 폐에 전이됐다는 진단 결과를 받았다. 그리고 얼마후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그래도 아버지는 기침증상으로 찾아간 동네병원에서 폐 CT를 찍은 덕에 4년이라는 시간을 더 살 수 있었다.

"과잉진료, 최소한 포괄수가제에서 생길 과소진료보다 낫다"

글쓴이는 "이번 사례는 정부에서 말하는 과잉검사, 진료를 병원에서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하고, 과연 정해진 금액 범위에서 해당 질병을 치료하는 포괄수가제에서 이런 일이 가능할지 의문이라는 물음표를 던졌다.

크리스마스는 "치료 금액이 정해져 있는데 과연 의사 소신대로 기침하는 환자에게 간CT를 찍어보자고 할 수 있을지. 간암환자에게 위내시경은 가능할지. 수술이 어려운 환자에게 수술을 권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과연 포괄수가제에서 제 아버지 사례처럼 4년이라는 시간을 더 선물로 받을 수 있겠느냐"고 따져물었다.

그리고 정부가 포괄수가제 빌미로 삼고 있는 과잉진료에 대해 최소한 포괄수가제로 생길 과소진료보다는 낫다며 글을 마무리했다.

이에 한 네티즌은 "의사 아닌 국민으로서 포괄수가제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다니 놀랍다. 이렇게 나쁜 걸 밀어부치려 하다니 정말 어이가 없다"고 의견을 개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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