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수' 둔 복지부·심평원…요양병원계 "인증 거부"

안창욱
발행날짜: 2012-10-24 06:52:55
  • 의무 인증제 앞두고 적정성평가 항목 슬그머니 포함 공분

보건복지부와 심평원이 내년부터 요양병원에 대해 의무 인증제를 시행할 예정인 가운데 적정성평가 중 구조지표 항목을 인증평가에 포함시키겠다고 발표하자 요양병원계가 발칵 뒤집혔다.

복지부와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은 22일 부산시청에서 '요양병원 인증제 설명회'를 열었다.

이날 복지부 곽순헌 의료기관정책과장은 "의료법 상 요양병원은 의무 인증 대상"이라면서 "인증 신청을 하지 않을 경우 시정명령 등 행정처분과 수가 제재를 병행하고, 요양급여적정성평가 가감 적용, 인력가산 대상에서 배제할 예정"이라고 못 박았다.

또 곽 과장은 "내년 1~2월까지 전체 요양병원을 대상으로 인증 신청을 독려하고, 내년부터 신규 개설 요양병원은 개설 후 3개월 이내에 의료기관 인증 신청을 하도록 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곽 과장은 "요양병원은 의료기관 인증조사와 적정성평가 대상에 모두 해당된다"면서 "평가 중복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평가 통합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고 환기시켰다.

이에 따라 복지부는 적정성평가 중 구조지표 17개 항목에 대해서는 인증조사와 병행해 수행하고, 인증 결과와 적정성평가 결과를 통합해 수가를 가감지급하겠다는 입장이다.

요양병원 적정성평가 중 구조지표에는 병상당 적정 면적 충족률, 적정 욕실 유무, 환자용 편의시설 구비율, 적정 엘리베이트 설치 유무, 화장실이 있는 병상 비율, 100병상 당 산소공급장비, 심전도 모니터, 산소포화도 감시장비 보유대수 등을 포함하고 있다.

심평원은 적정성평가 결과 하위 20%를 받은 요양병원에 대해서는 의사인력 및 간호인력 확보 수준에 따른 입원료 가산, 필요인력 확보에 따른 별도보상 적용 대상에게 제외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 수가 불이익을 받은 하위 20% 요양병원들이 행정소송을 제기하면서 불거졌다.

심평원이 전국의 요양병원 중 10% 가량만 현장방문조사를 하고, 나머지는 서류심사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형평에 맞지 않은 평가를 토대로 수가 불이익을 주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7월 "일부는 요양병원 스스로 작성한 웹조사표에 근거한 점수를, 다른 일부는 현장방문조사에 근거한 점수를 기준으로 평가점수를 산출한 것은 평가의 신뢰성을 담보할 수 없다"면서 수가 불이익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현재 심평원 인력으로는 모든 요양병원을 방문조사할 수 없는 상황.

이렇게 되자 복지부와 심평원은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이 의료기관 인증 심사를 위해 요양병원을 방문할 때 적정성평가 중 구조지표까지 조사하도록 하는 '꼼수'를 생각해 낸 것이다.

논란거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적정성평가는 전체 지표항목을 평가해 1~6등급으로 구분하기 때문에 일부 항목이 미비하더라도 등급이 낮아지는 것 외에 불이익이 없다. 의료기관 인증제와 같이 인증, 조건부 인증, 불인증으로 분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구조지표가 인증평가에 포함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의료기관 인증제 평가 항목 중 '필수' 문항은 말 그대로 필수적으로 충족해야 하는 조사항목이어서 상, 중, 하 중 '하'를 받거나 유, 무 중 '무'를 받으면 인증을 통과할 수 없다.

그런데 복지부와 인증원 자료에 따르면 적정성평가 중 구조지표 17개 항목은 모두 '필수' 항목으로 분류하고 있다.

예들 들어 요양병원이 적정한 기준의 엘리베이트를 갖추지 않고 있다고 치자. 그러면 적정성평가에서는 등급만 떨어지면 그만이지만 인증평가에 포함되면 '불인정'이 될 수밖에 없고, 해당 요양병원들은 수가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서는 수억원을 투입해서라도 17개 항목 기준에 맞춰야 한다.

그것도 복지부는 노인요양병원협회와 사전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이같은 방침을 정했다.

그러자 요양병원계가 발끈하고 나섰다.

대한노인요양병원협회 손덕현 부회장은 "협회와 사전 협의 없이 구조지표를 인증 기준에 포함시키는 것은 독소조항"이라면서 "만약 복지부와 심평원이 이를 강행한다면 인증을 전면 거부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의료기관평가인증원 입장에서도 인증조사를 하면서 구조지표를 평가하는 게 달갑지 않다. 인증평가와 적정성평가는 평가 원리, 취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인증원 관계자는 "복지부가 인증평가를 할 때 구조지표까지 했으면 좋겠다고 정책적으로 결정했다"면서 "인증은 4년 주기로 하지만 적정성평가는 매년 하는 것이어서 평가주기도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구조지표를 인증평가에 포함시키느냐가 매우 중요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복지부는 이날 설명회에서 구조지표 평가방법에 대해 전혀 설명조차 하지 않았고, 곽순헌 과장은 질의 응답도 받지 않고 먼저 자리를 떠나 요양병원들의 원성을 샀다.

모 요양병원 원장은 "이런 중요한 사안을 다루는 설명회에서 복지부의 책임 있는 답변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겠다는 의도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고 맹비난했다.

요양병원과 정신병원에 대해서만 의무인증을 하는 것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았다.

모 요양병원 원장은 "114개 병상으로 개원한지 1년도 채 되지 않았고, 직원이 50명에 불과한데 대형병원에서나 가능한 인증제를 강제로 시행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면서 "가뜩이나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데 누가 이혼하는 꼴을 보려고 하느냐"고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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