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이사슬의 고리에 갇힌 서남의대 사태

최혜란
발행날짜: 2014-08-21 11:13:43
  • 조선대 의전원 4학년 최혜란 씨

지난 6월, 서울행정법원은 서남학원이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낸 감사 결과 통고처분 취소소송에서 서남학원의 손을 들어줬다. 이 판결로 서남의대 폐지를 주장하던 재학생들은 법원이 학생들의 피교육권보다 서남학원 재단에 유리한 판결을 내렸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하지만 법원이 이 판결에서 교육부의 손을 들어줬다면 일부 학생들의 학점이 취소되어 졸업이 연기되고 이미 서남의대를 졸업한 학생들의 의사면허까지 취소될 수 있으므로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사실, 서남의대의 부실 운영 문제는 하루아침에 불거진 것이 아니다. 학교 측의 부실한 교육을 체감하고 있던 교수 및 학생들은 12년 전인 2000년부터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해왔다. 수업거부, 1인 시위, 진정서 제출까지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학교 측의 비리와 터무니없이 열악한 교육환경을 바로 잡기 위한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묵살되었고, 2012년 복지부가 서남의대 부속 병원인 남광병원의 수련병원지정 취소를 하기에 이르자 곪았던 문제가 터져버렸다.

교육부는 뒤늦게 서남학원에 대한 감사를 수행하고, 부실교육이 이뤄졌음을 밝혔지만 그로 인해 되려 학생들이 피해를 입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서남학원은 이에 불복하여 행정소송을 냈고 이에 승소하기에 이르렀다. 서남의대 졸업 후 의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한숨 돌리게 된 판결이었지만, 현재 재학생들은 복사기도 없고 인터넷 연결 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학교에 남아 암울한 시간이 빨리 흐르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 문제를 곰곰이 들여다보면 역시 그동안 학생과 교수들의 요구를 제대로 들어주지 않은 교육부에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으로는 옳지 않은 방법으로 서남재단을 운영한 이사진과, 그것이 가능하도록 법적 근거를 제공한 이들에게서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국내의 사학재단들은 자율적인 교육권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오랜 시간 동안 자의적인 운영을 일삼아 왔고 이는 한국 내에서 공공연하게 발생하는 병폐로 손꼽혀왔다. 이사장 일가에 휘둘리는 운영을 막기 위해 교수, 학부모 등이 참여하는 학교운영위가 추천하는 이사를 일정 비율 이상 선임하도록 하는 개방형 이사제가 도입되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당대표로 재임하던 2007년 재개정하여 학교운영위의 개방이사 추천권이 절반으로 줄었고 그에 따라 사학비리가 다시 기승을 부리게 됐다. 최근 불거진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의 누나인 용문학원 김문희 이사장 사태, 서울 진명여고 매입 과정에서 학교 돈 140억원 가량을 횡령한 이사장 형제를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다.

헌데, 사학비리 근절에 제동을 건 당사자가 현재 국가의 수장이 되어 있으니, 서남대 사태의 해결이 요원함은 불 보듯 뻔한 일이 아닌가. 처음 서남대 사태에 대한 소식을 접하고 남일 같지 않다고 느꼈던 것은 내가 속한 학교 역시 그러한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립학교이고, 실제로 조선대도 이사 선임 문제로 매년 학교운영위와 이사진들 사이에 갈등이 터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개 최종적인 피해는 가장 약자가 짊어지게 하고 봉합하는 게 그동안 익숙하게 보아왔던 풍경이다. 따라서 이러한 일이 반복될수록 사회 구성원들은 근본적인 해결책, 그리고 더 많은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먹이사슬의 최종 포식자가 되는 것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생존방법이라고 믿게 된다.

서남대 사태도 원래대로라면 가장 먼저 책임을 져야할 사람은 불법적으로 재단을 운영한 이사장 일가와 사학비리가 가능하도록 빌미를 제공한 입법자들이다. 둘째로, 10년 넘는 시간 동안 학생과 교수들의 서남학원 감사 요구를 묵살해온 교육부의 책임도 결코 가볍다고 할 수 없다. 만일 학생들에게 책임을 물으려거든 더 큰 잘못을 저지른 이들에 대한 처벌이 먼저 이뤄져야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순서가 뒤바뀌어 있는 모양새다.

결국 이는 먹이사슬의 상위단계에 있는 포식자가 피식자를 잡아먹는다는 약육강식의 논리가 서남대 사태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생존을 위해, 정말로 힘이 센 포식자가 되는 것 외에는 아무런 답이 없는 것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인류의 문명이 발전해온 까닭은 짐승들에게는 없는 이성의 힘 덕분이었다. 또한 그 이성이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남을 기만하는데 쓰이는 것이 아니라 좀 더 공평무사한 선(善)을 위해 쓰일 때 다 같이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갈 수 있었다. 서남의대 사태에서도 더 이상 책임자들의 처벌을 미루지 말고 합리적인 해결책으로 학생들의 교육권이 실현될 수 있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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