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다루는 의사로서 한 해를 보내며

선경
발행날짜: 2014-12-29 12:01:10
  • 고려대학교병원 흉부외과 선경 교수

성수대교 위를 달리는 택시에서 운전기사 분이 갑자기 통곡을 시작한다. 정말 큰 소리로… 오열과 함께 쏟아지는 눈물을 연신 닦아낸다. 속도계는 90km/h를 가리키고 있다.

외아들을 간암으로 잃고 엊그제 49제를 마쳤다고 한다. 정신줄을 놓고 지내다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다시 운전대를 잡고 나왔다가, 아들이 입원했던 고대병원에 차를 세우고 병실을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고 한다.

약속에 늦어 급하게 택시를 잡아탔다. 중년의 운전기사 분이 근육으로 다져진 건장한 체격에 머리까지 삭발 면도한 모습에 포스가 느껴졌다. 마침 나이도 같고 세상 살아가는 관점도 비슷해서 이전 저런 얘기를 시작했다. 손자들 자랑까지 한창 얘기가 즐겁던 중에, 고대병원 의사라는 말에 잠시 멈칫하더니 '실은 우리 아들이…' 하다가 갑자기 통곡을 시작한 것이다. 정말 갑자기.

그토록 폐부를 찌르는 울음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본인 스스로 못 배운 한에 외아들에게 공부 공부해서 박사과정까지 마쳤는데, 그 때문에 건강을 해친 건 아닌지, 청상으로 남겨진 며늘아이는 어찌할지, 갓 태어난 유복자 손자까지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지는 것이다.

진단받고 8개월 만에 세상을 떴다고 한다. 아들 곁에서 마지막까지 수발을 들면서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실감났다고 한다. 내 새끼가 죽어 가는데도 나중에는 한 순간 한 순간 정말 몸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을 정도였기에.

처음에 병을 찾아내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준 고대병원 엄순호 교수님을 꼭 찾아뵙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해야 하는데, 차마 병원 안으로 들어갈 용기가 안 나서 죄송하다고 한다. 대신 전해드리기로 하고, 우리 다 같이 손자들을 위해서 건강히 열심히 살자고 약속하고 내렸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하늘이 무너졌다고 한다(天崩). 자식이 먼저 세상을 뜨면 부모는 슬픔을 평생 가슴에 품고 산다(慘慽). 그래서 부모는 산에 묻고,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고 한다. 천붕의 아픔보다 참척의 슬픔이 훨씬 아프고 견디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밤을 새우며 열심히 치료한 환자가 사망을 하면 의사들에게 남겨진 마지막 임무는 가족들을 위로하는 것이다. 환자가 돌아가셨을 때 가족들에게 남는 것은 그냥 '슬픔'일까. 혹시 '한'이나 '죄책감' 같은 것은 아닐까. 언젠가 누구에게나 닥칠 일, 조금이라도 덜하도록 지금부터 주변을 잘 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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