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건비도 안 돼, 현실성 없다"…소청과의사회, 타개책 마련에 골몰
[기획] 달빛어린이병원의 허와 실지금으로부터 약 4년 전, 대한약사회는 정부의 일반약 슈퍼 판매를 막기 위해 '당번약국 활성화' 카드를 내놨다. 그러나 강제성이 없는데다 약사 회원들의 희생이 전제돼야 하기 때문에 참여를 이끌어 내는 데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민의 안전과 편의성'이라는 대승적인 목적과 업무 강도의 증가 사이에서 약사들이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정부는 올해 약 40억원의 예산을 투자해 달빛어린이병원을 20개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개원가 붕괴를 가속화 시키는 정책이라며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메디칼타임즈는 달빛어린이병원 정책에 참여하는 의원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고 대안을 생각해 봤다.|편집자 주|
<상> 달빛어린이병원 참여 의원의 고백-제주 연동365의원
<하> 딜레마에 빠진 소청과
소아청소년과 의사들도 딜레마에 빠졌다. 소아 환자로 인한 응급실 과밀화 문제를 놓고 '환자 안전'이라는 의사로서의 사명감과 업무 강도 증가, 경제적 손실 사이에서 말이다.
4년 전 일반약 슈퍼 판매와 다른 점은 당사자들이 문제에 대해 스스로 고민할 겨를도 없이 정부가 '달빛어린이병원' 정책을 시범사업 형태로 추진해 버린 것이다.
정부는 현재 경증 소아환자의 응급실 과밀화 방지를 위해 1차 의료기관의 야간진료를 독려하고 있다.
2013년 330여억원을 투입해 저녁 8시 이후 소아 환자 진료에 대한 가산료를 100% 인상했다. 지난해는 1년 365일 자정까지 외래 진료를 보도록 하는 '달빛어린이병원'을 지정했다. 예산은 지자체와 일대일 매칭으로 40억원 이상이 들어간다.
그러나 제도를 바라보는 소청과 전문의 눈길은 차갑다. 특히 원장 혼자 운영하는 소청과의원의 경우 현실적으로 '야간진료' 참여가 어렵다는 불만이 높다.
평일 진료시간이 7시인 A의원이 달빛어린이병원 지정을 받기 위해서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를 2명 더 뽑아야 하고, 주간과 야간에 교대로 근무할 직원도 충원해야 한다. 야간에 일하는 직원에게는 야간수당을 더 줘야 한다.
정부가 달빛어린이병원에 지원하는 금액은 한 달에 1500만원 수준. 인건비도 안되는 금액이다. 실제로 지난달 달빛어린이병원 지정을 받은 제주 연동365의원에 따르면 한 달에 인건비만 8000만원 이상이 들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달빛어린이병원에 투입한 40억원의 예산을 소아 야간 가산으로 돌려보면 어떨까.
현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야간진료를 한다고 등록된 의원은 309곳. 단순 계산해봤을 때 의원 한 곳당 1년에 약 1300만원이 돌아간다.
서울 Y소청과의원 원장은 "한 달에 100만원도 안되는 금액이다. 인건비도 안된다. 사실 밤 10시가 넘어가면 환자가 오지 않기 때문에 소아 야간 가산도 큰 도움이 되는 게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현실적인지 못한 지원책을 내놓고 의사들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인천의 K소청과의원 원장도 "달빛어린이병원에 지원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원장이 혼자서 24시간 일할 수는 없다. 누군가와 함께 일을 해야 하는데 소청과 전문의 자체가 많지 않은데다가 밤에 로테이션으로 일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밤에 아이들이 응급실에 가면 굉장히 괴롭다. 열만 내리면 되는데도 몇 시간씩 기다리는 일이 다반사다. 제도의 필요성과 취지는 공감하지만 의료체계 전반적인 문제까지 건드려야 한다"고 털어놨다.
"심야 소청과의원, 지역에서 역할 할 수 있도록 지원 필요"
정부의 정책과 소청과 의사들 사이에 괴리가 생기자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해결책을 찾기 위한 고민에 빠져있다. 정부 정책이 실효성은 없다는 판단이지만 현 상황을 타개할 뚜렷한 답은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14일 열린 소청과의사회 대의원 총회에서는 '달빛어린이병원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기로 의결했다.
소청과의사회 관계자는 "개인 의원에서 야간 진료를 하려면 밤 10시까지면 충분하다. 소아 야간 가산은 밤 8시부터 되는데 6~8시는 공백이다. 야간 가산을 받기 위해서 공백 시간에 들어가는 추가 근로에 대해서도 정부는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신 규모가 큰 의원들 중 달빛어린이병원 지정 여부와 상관없이 365일, 밤늦은 시각까지 진료에 나서는 의원들이 있다. 정부는 이런 의원들이 지역에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