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스페인으로 간다
천년의 고도 톨레도(1)
긴 여행에서 그저 점하나 찍듯 잠시 머문 콘수에그라 풍차마을 이야기에 2회를 할애한 것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가 스페인 여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마을을 포위하고 있는 안개를 뚫고 콘수에그라를 탈출하여 톨레도로 향한다.
톨레도는 카스티야라만차( Castilla-La Mancha) 자치지역에 포함되는 톨레도주의 주도로 232제곱킬로미터의 면적에 2012년 기준으로 8만4000명이 살고 있다. 톨레도는 서고트족이 이베리아반도를 점령하고 수도로 삼은 이래 이베리아 반도의 중심이었다.
8세기 경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한 무어인이 코로도바로 수도를 옮겼지만, 1085년 국토회복운동(레콘키스타)으로 톨레도를 수복한 알폰소6세가 톨레도를 다시 수도로 정하였고, 1561년 펠리페2세가 수도를 마드리드로 옮길 때까지 카스티야 왕국의 수도였다.
비록 행정수도는 마드리드로 옮겼지만, 종교적으로는 여전히 스페인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톨레도 대성당이 스페인의 대주교좌 성당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경주에 비유할 수 있는 도시로 수많은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인재들을 배출해온 도시라고 하겠다.
콘수에그라에서 톨레도까지는 잠깐이었다. 이윽고 버스는 타호강이 흐르는 협곡 너머에 있는 성채도시 톨레도를 조망하기에 안성맞춤인 장소에서 우리를 내려주었다. 자크 아탈리의 '깨어있는 자들의 나라'에서도 알모라비데왕조를 무너뜨리고 코르도바에 들어선 알모아데 왕조가 유대인들을 핍박하자, 마이문 가족은 우선 톨레도로 이주한다. 사흘 밤낮을 숨어서 이동한 끝에 나흘 째 여명에 마이문 가족이 도착한 장소가 바로 이곳이었을 것이다.
"카시오페아 별자리가 흐릿해지고 태양의 붉은 빛이 감돌기 시작한 새벽녘에 그들은 타호 강 줄기 계곡에 자리 잡은 웅장한 성채 도시 톨레도에 도착했다. 해가 완전히 뜨자 강 건너편에 높다란 성벽과 철통같은 여덟 개의 문이 보였다."
비시고트왕국이래 톨레도를 수도로 삼은 것은 아무래도 외적의 침입을 방어하기에는 천혜의 요새였기 때문일 것이다. 타호강이 흐르는 깊은 협곡이 도시의 삼면을 감싸고 있어 한쪽에만 집중해서 방어하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지형은 수비하는데 어느 정도 장점은 있지만, 적이 강할 때는 도망칠 곳이 없다는 것이 단점이다. 타호강 건너에서 톨레도의 성채를 바라보면서 백마강 건너 낙화암 절벽을 배경으로 도읍을 정했던 백제의 수도 부여가 떠오른다. 그리고 절벽에서 흩어지듯 떨어져 내렸을 삼천궁녀의 비극도…
◀엘그레코의 '톨레도 풍경' <출처:위키피디아>(클릭시 관련 페이지 이동)
엘그레코는 '톨레도 풍경'을 이 곳 어디쯤에서 그렸을 것 같은데, 시대가 다르다고 해도 차이가 있어 보인다. 뉴욕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는 '톨레도 풍경'을 보면, 녹색의 언덕 위에 세워진 회색빛 건물들은 하늘 가득 뒤덮고 있는 검은 구름에 눌려 숨이 막힐 듯하면서도 오히려 의연한 느낌이 든다. 엘그레코는 대성당과 알카사르 등 톨레도 시가의 건축물과 타호강을 재배치함으로써 톨레도의 풍경을 모사하는 수준에 머물지 않고 톨레도의 정신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고 한다.
스페인 사람들은 타호강에서 비시고트왕국의 몰락을 초래한 마지막 왕, 돈 로드리고의 전설을 떠올린다고 한다. 비시고트왕국은 왕권을 강화하고 귀족들을 견제하기 위하여 귀족들의 자녀를 수도 톨레도에 데려다 놓게 하였다는데, 그 가운데는 북아프리카 지역을 다스리는 베르베르족 태생의 돈 훌리앙백작의 딸 마리아도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타로강에서 멱을 감고 있는 마리아를 발견한 돈 로드리고 국왕은 성적 충동이 일어 그녀를 겁탈하고 말았다. 딸로부터 이 사실을 고해받은 돈 훌리앙백작은 무어인들을 안내하여 톨레도로 쳐들어오고, 국왕은 무어인들을 피해 동굴로 숨어 있다가 독사에 물려 죽음으로써 비시고트왕국이 멸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7개의 로만세로 구성된 '플로린다 다 까바의 신화'로 전해지기도 하는데, 시장이나 광장, 그리고 축제 때 부르는 로만세는 중세시대 영웅들의 무훈을 노래하는 중세 무용 찬가에서 비롯된 것이고 한다.
'플로린다 다 까바의 신화'의 일부를 소개하면, "스페인의 상실의 불길함이 고개를 들었다. 그것은 한 처녀의 무모함과 그녀에게 굴복해버린 한 남자 때문이었다. 플로린다는 꽃이 꺾였고, 왕은 벌을 받았다: 그녀는 그가 강제로 그녀를 범했다고 했고 그는 그녀가 원해서 했다고 했다. 만약 그 둘 중에서 누가 죄가 크냐고 묻는다면 사람들은 이야기할 것이다: 남성들은 까바, 여성들은 로드리고라고.(지중해지역원 지음. 지중해의 신화 197쪽, 이담북스 펴냄, 2013년)"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들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언덕에 서서 타호강을 건너 톨레도의 구시가를 건너다보면서 자크 아탈리가 에서 적고 있는 물시계가 어디쯤 있었을까 짐작해본다. 1062년에 알자칼리(Al-Zarqali; 1029-1087)가 타호강의 강둑에 설치했다는 물시계는 달이 차고 기우는 것에 따라 채워지고 비워지는 두 개의 대야로 구성되었는데, 1133년까지 작동되었다고 한다. 알폰소 7세왕은 시계가 어떻게 작동되는지 궁금했기 때문에 이븐 자하라에게 명하여 해체하도록 했지만 그는 다시 조립해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물시계의 고장에 대하여 자크 아탈리의 기록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물시계는 알폰소7세 왕이 죽고 얼마 후 어린 손자 알폰소 8세가 왕위에 오른 뒤에 있었던 지진의 영향으로 기계장치가 망가지고 밸브가 터져 물이 말랐다는 것이다.
수리를 맡았던 유대인 다비드 벤로페즈 톨레다노가 시계장치를 뜯어보니 6,253개의 부속품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았지만, 막상 조립을 해서 물을 흘려보냈을 때 여전히 작동하지 않았고, 결국 그는 바르셀로나에서 부속을 구해 와야 한다면서 달아나버렸다고 한다. 커다란 청동장치에 들어있는 톱니바퀴를 돌이는 물의 규칙적인 순환이 멀리 타호강의 커다란 수문을 열고 닫을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는 것인데,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다시 버스를 타고 타호강을 따라 내려가 톨레도 시가지로 들어간다. 주차장에서 버스를 내려 언덕을 올라가는데 코끼리열차 같이 생긴 소코트랜(zocotren)이 올라간다. 소코도베르광장을 출발해서 알카사르, 타호강, 성벽, San Juan de los Reyes, 엘 그레코 박물관, 성당, 대주교궁(the Archbishop’s Palace), 톨레도의 주요 유적과 시가지는 물론 우리가 처음 버스를 내렸던 장소에서 톨레도의 원경을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소코트렌을 타고 도는데 45분이 걸린다고 하니 일정에 쫓기는 우리 일행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결국 우리는 가팔라 보이는 언덕을 씩씩하게 걸어올라 톨레도 대성당을 보러 갔다.
김희곤 교수는 '스페인은 건축이다'에서 톨레도 대성당을 이렇게 표현했다. "톨레도의 좁은 미로 같은 길은 나무뿌리처럼 서로 얽혀서 대성당으로 모아진다. 모든 길이 대성당을 정점으로 이어지는 톨레도는 하늘과 맞닿은 거대한 가톨릭의 나무다. 톨레도는 중세의 두 가지 무기인 칼과 성경을 품고 있는 산성도시다. 칼은 알카사르, 성경은 톨레도 대성당이다. 어느 골목에서나 성당의 첨탑을 볼 수 있도록 길과 건물은 좁은 길에 면해 살짝 얼굴만 들이대고는 이내 달아나 버린다."
정말 그랬다. 성당 아래서는 당연히 전체를 볼 수 없었고, 성당에서 멀어지면 길가에 들어선 건물들에 가려 성당의 전체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긴 여행에서 그저 점하나 찍듯 잠시 머문 콘수에그라 풍차마을 이야기에 2회를 할애한 것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가 스페인 여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마을을 포위하고 있는 안개를 뚫고 콘수에그라를 탈출하여 톨레도로 향한다.
톨레도는 카스티야라만차( Castilla-La Mancha) 자치지역에 포함되는 톨레도주의 주도로 232제곱킬로미터의 면적에 2012년 기준으로 8만4000명이 살고 있다. 톨레도는 서고트족이 이베리아반도를 점령하고 수도로 삼은 이래 이베리아 반도의 중심이었다.
8세기 경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한 무어인이 코로도바로 수도를 옮겼지만, 1085년 국토회복운동(레콘키스타)으로 톨레도를 수복한 알폰소6세가 톨레도를 다시 수도로 정하였고, 1561년 펠리페2세가 수도를 마드리드로 옮길 때까지 카스티야 왕국의 수도였다.
비록 행정수도는 마드리드로 옮겼지만, 종교적으로는 여전히 스페인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톨레도 대성당이 스페인의 대주교좌 성당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경주에 비유할 수 있는 도시로 수많은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인재들을 배출해온 도시라고 하겠다.
콘수에그라에서 톨레도까지는 잠깐이었다. 이윽고 버스는 타호강이 흐르는 협곡 너머에 있는 성채도시 톨레도를 조망하기에 안성맞춤인 장소에서 우리를 내려주었다. 자크 아탈리의 '깨어있는 자들의 나라'에서도 알모라비데왕조를 무너뜨리고 코르도바에 들어선 알모아데 왕조가 유대인들을 핍박하자, 마이문 가족은 우선 톨레도로 이주한다. 사흘 밤낮을 숨어서 이동한 끝에 나흘 째 여명에 마이문 가족이 도착한 장소가 바로 이곳이었을 것이다.
"카시오페아 별자리가 흐릿해지고 태양의 붉은 빛이 감돌기 시작한 새벽녘에 그들은 타호 강 줄기 계곡에 자리 잡은 웅장한 성채 도시 톨레도에 도착했다. 해가 완전히 뜨자 강 건너편에 높다란 성벽과 철통같은 여덟 개의 문이 보였다."
비시고트왕국이래 톨레도를 수도로 삼은 것은 아무래도 외적의 침입을 방어하기에는 천혜의 요새였기 때문일 것이다. 타호강이 흐르는 깊은 협곡이 도시의 삼면을 감싸고 있어 한쪽에만 집중해서 방어하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지형은 수비하는데 어느 정도 장점은 있지만, 적이 강할 때는 도망칠 곳이 없다는 것이 단점이다. 타호강 건너에서 톨레도의 성채를 바라보면서 백마강 건너 낙화암 절벽을 배경으로 도읍을 정했던 백제의 수도 부여가 떠오른다. 그리고 절벽에서 흩어지듯 떨어져 내렸을 삼천궁녀의 비극도…
◀엘그레코의 '톨레도 풍경' <출처:위키피디아>(클릭시 관련 페이지 이동)
엘그레코는 '톨레도 풍경'을 이 곳 어디쯤에서 그렸을 것 같은데, 시대가 다르다고 해도 차이가 있어 보인다. 뉴욕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는 '톨레도 풍경'을 보면, 녹색의 언덕 위에 세워진 회색빛 건물들은 하늘 가득 뒤덮고 있는 검은 구름에 눌려 숨이 막힐 듯하면서도 오히려 의연한 느낌이 든다. 엘그레코는 대성당과 알카사르 등 톨레도 시가의 건축물과 타호강을 재배치함으로써 톨레도의 풍경을 모사하는 수준에 머물지 않고 톨레도의 정신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고 한다.
스페인 사람들은 타호강에서 비시고트왕국의 몰락을 초래한 마지막 왕, 돈 로드리고의 전설을 떠올린다고 한다. 비시고트왕국은 왕권을 강화하고 귀족들을 견제하기 위하여 귀족들의 자녀를 수도 톨레도에 데려다 놓게 하였다는데, 그 가운데는 북아프리카 지역을 다스리는 베르베르족 태생의 돈 훌리앙백작의 딸 마리아도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타로강에서 멱을 감고 있는 마리아를 발견한 돈 로드리고 국왕은 성적 충동이 일어 그녀를 겁탈하고 말았다. 딸로부터 이 사실을 고해받은 돈 훌리앙백작은 무어인들을 안내하여 톨레도로 쳐들어오고, 국왕은 무어인들을 피해 동굴로 숨어 있다가 독사에 물려 죽음으로써 비시고트왕국이 멸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7개의 로만세로 구성된 '플로린다 다 까바의 신화'로 전해지기도 하는데, 시장이나 광장, 그리고 축제 때 부르는 로만세는 중세시대 영웅들의 무훈을 노래하는 중세 무용 찬가에서 비롯된 것이고 한다.
'플로린다 다 까바의 신화'의 일부를 소개하면, "스페인의 상실의 불길함이 고개를 들었다. 그것은 한 처녀의 무모함과 그녀에게 굴복해버린 한 남자 때문이었다. 플로린다는 꽃이 꺾였고, 왕은 벌을 받았다: 그녀는 그가 강제로 그녀를 범했다고 했고 그는 그녀가 원해서 했다고 했다. 만약 그 둘 중에서 누가 죄가 크냐고 묻는다면 사람들은 이야기할 것이다: 남성들은 까바, 여성들은 로드리고라고.(지중해지역원 지음. 지중해의 신화 197쪽, 이담북스 펴냄, 2013년)"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들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언덕에 서서 타호강을 건너 톨레도의 구시가를 건너다보면서 자크 아탈리가 에서 적고 있는 물시계가 어디쯤 있었을까 짐작해본다. 1062년에 알자칼리(Al-Zarqali; 1029-1087)가 타호강의 강둑에 설치했다는 물시계는 달이 차고 기우는 것에 따라 채워지고 비워지는 두 개의 대야로 구성되었는데, 1133년까지 작동되었다고 한다. 알폰소 7세왕은 시계가 어떻게 작동되는지 궁금했기 때문에 이븐 자하라에게 명하여 해체하도록 했지만 그는 다시 조립해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물시계의 고장에 대하여 자크 아탈리의 기록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물시계는 알폰소7세 왕이 죽고 얼마 후 어린 손자 알폰소 8세가 왕위에 오른 뒤에 있었던 지진의 영향으로 기계장치가 망가지고 밸브가 터져 물이 말랐다는 것이다.
수리를 맡았던 유대인 다비드 벤로페즈 톨레다노가 시계장치를 뜯어보니 6,253개의 부속품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았지만, 막상 조립을 해서 물을 흘려보냈을 때 여전히 작동하지 않았고, 결국 그는 바르셀로나에서 부속을 구해 와야 한다면서 달아나버렸다고 한다. 커다란 청동장치에 들어있는 톱니바퀴를 돌이는 물의 규칙적인 순환이 멀리 타호강의 커다란 수문을 열고 닫을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는 것인데,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다시 버스를 타고 타호강을 따라 내려가 톨레도 시가지로 들어간다. 주차장에서 버스를 내려 언덕을 올라가는데 코끼리열차 같이 생긴 소코트랜(zocotren)이 올라간다. 소코도베르광장을 출발해서 알카사르, 타호강, 성벽, San Juan de los Reyes, 엘 그레코 박물관, 성당, 대주교궁(the Archbishop’s Palace), 톨레도의 주요 유적과 시가지는 물론 우리가 처음 버스를 내렸던 장소에서 톨레도의 원경을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소코트렌을 타고 도는데 45분이 걸린다고 하니 일정에 쫓기는 우리 일행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결국 우리는 가팔라 보이는 언덕을 씩씩하게 걸어올라 톨레도 대성당을 보러 갔다.
김희곤 교수는 '스페인은 건축이다'에서 톨레도 대성당을 이렇게 표현했다. "톨레도의 좁은 미로 같은 길은 나무뿌리처럼 서로 얽혀서 대성당으로 모아진다. 모든 길이 대성당을 정점으로 이어지는 톨레도는 하늘과 맞닿은 거대한 가톨릭의 나무다. 톨레도는 중세의 두 가지 무기인 칼과 성경을 품고 있는 산성도시다. 칼은 알카사르, 성경은 톨레도 대성당이다. 어느 골목에서나 성당의 첨탑을 볼 수 있도록 길과 건물은 좁은 길에 면해 살짝 얼굴만 들이대고는 이내 달아나 버린다."
정말 그랬다. 성당 아래서는 당연히 전체를 볼 수 없었고, 성당에서 멀어지면 길가에 들어선 건물들에 가려 성당의 전체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