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색은 정부가, 희생은 의료계가?

손의식
발행날짜: 2015-08-10 05:35:52
정부의 생색내기가 공사(公私)의 경계가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는 모양새다.

정부는 광복절 전날인 14일을 임시공휴일로 정하고 전국 고속도로를 무료로 개방키로 했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국민에게 활기를 불어넣겠다는 의도에서다.

국토교통부가 추정하는 14일 고속도로 통행량은 지난해 추석 당일과 비슷한 500만대로, 도로공사의 고속도로 통행료만 따져도 149억원의 통행료가 면제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강동원 의원(남원·순창)은 "정부가 광복 7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국민 사기진작과 내수 활성화를 그럴듯한 명분으로 14일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계획을 발표했으나 이는 구시대적 발상이자, 추락한 민심달래기 차원으로 사전에 충분한 검토없이 급조한 생색내기 조치"라고 비난했다.

공공시설을 이용한 선심성 행정에조차 비난의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정부는 민간의료기관에까지 희생까지 요구하고 있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의협과 병협 등 의료인단체에 14일 임시공휴일 진료할 때 사전 예약환자나 불가피한 응급진료 환자 등에 대해서는 환자의 본인부담 진료비를 평일과 같은 수준으로 받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국민 부담을 줄이려는 의도는 좋다. 그런데 여기엔 크게 세가지의 잘못이 있다.

첫 번째 잘못은 해당 보도대로라면 복지부가 나서서 의료기관들로 하여금 의료법 위반을 독려하고 있다는 점이다. 의료법 제27조 제3항에 따르면 '누구든지 국민건강보험법이나 의료급여법에 따른 본인부담금을 면제하거나 할인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관공서 공휴일 규정'에 따르면 임시공휴은 법정 공휴일에 해당한다. 따라서 오는 14일에 문을 여는 의료기관과 약국 등은 진찰료, 조제료에 30%를 더하는 휴일 가산을 적용 받는다. 복지부 보험평가과 관계자도 메디칼타임즈와의 취재에서 "오는 14일 진료 청구분에 대해선 휴일가산이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지부는 국민으로부터 환심을 사기 위해 의료기관들로 하여금 법정 공휴일에 환자 본인부담금을 할인하라는 의료법 위반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선심성 행정에 눈이 멀어 법을 무시한 처사라고 비난하지 않을 수 없다.

두 번째 잘못은 민간의료기관은 말 그대로 '민간'의 재화라는 점을 망각하고 있다는, 아니 어쩌면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급작스레 14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면서 자연적으로 당일 진료분에 대해선 환자 본인부담금이 발생하게 됐다. 그에 대한 국민의 부담이 염려된다면 공휴일로 지정한 당사자인 정부가 공단부담금을 올리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의료기관으로 하여금 환자 본인부담금 가산분을 받지 말라는 것은 의료법 위반을 떠나 정부가 공사(公私)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민간과 정부의 역할을 구분하지 않은 채 생색내기에만 혈안이 돼 있는 것이다. 만일 그것이 아니라면 민간 의료기관을 복지부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기고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생색은 정부가 낼테니 민간의료기관이 뒤치다꺼리를 하라는 것이다.

마지막 문제는 의료는 선심성 행정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차상위계층 등 의료취약계층에 대한 적극적인 의료서비스 제공은 당연한 정부의 역할이다. 민간 의료기관도 이들에 대해선 많은 관심과 적극적 협조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임시공휴일에 환자 본인부담금을 할인하겠다는 생각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14일 본인부담금 인상에 대한 국민의 불만은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공휴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설득하지 못할 문제는 아니다. 그리고 당연히 그 설득의 주체는 의료기관이 아닌 정부가 돼야 한다. 그게 자신 없다면 공휴일로 지정하지 말았어야 한다.

의료의 공공적 성격은 '퍼주기'가 아닌 필요한 이들에게 적정진료를 제대로 제공하는 것에 근간을 두고 있어야 한다. 정부가 의료를 선심성 행정의 도구로 여긴다면 의료는 공공재적 서비스가 아닌 포퓰리즘의 무기로 전락해 국민과 의료기관 모두에게 큰 혼란과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삼사일언(三思一言)이라는 말이 있다. 세 번 신중히 생각하고, 한 번 조심히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복지부의 한 마디는 세 번의 신중한 생각이 아닌 세가지의 고민만 만들어 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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