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100일 당직

박성우
발행날짜: 2018-12-04 12:5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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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당직

최근까지 공공연하게 존재하던 관습 중 하나가 100일 당직이다.

레지던트 입국과 동시에 100일간 당직을 선다. 일이 익숙하기 전까지는 휴식을 취해도 원내에서 쉬라는 의미이다. 원내 감금이나 다름없어 병원 밖을 나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병원 차원에서 정해진 규칙이라기보다 각각의 의국에서 레지던트끼리 정해진 암묵적 규칙이었다.

대놓고 감시하지는 않았지만 제한받는 입장에서는 심리적 압박과 스트레스가 심했다. 당직 기간 동안 새벽 2시가 넘어 24시간 국밥집에 동기와 밥을 먹으러 갈 때면 감옥 탈출이라고 표현할 정도였으니까.

병원마다 편차가 있지만 각 과 의국에는 이런 규칙이 엄연히 존재하고 이 규칙은 레지던트 사회를 지탱한다. 실수 하나가 의료사고나 의료과실로 이어지기 때문에 엄격한 위계질서와 숨 막히는 분위기가 오랫동안 자리 잡았다.

군대만큼 위계질서가 엄격한 곳이 의국이다. 이런 암묵적 규칙도 좋게 자리 잡으면 좋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폭언과 폭력이 당연시되던 과거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었고, 당하는 저연차 레지던트 입장에서는 속수무책인 경우가 더 많다.

2013년부터 활발하게 점화된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에 대한 논의와 법제화 추진은 이런 불건전한 수련환경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100일 당직은 내가 레지던트 1년차 때에도 제법 많은 의국에서 행하고 있었다. 주말이 되어도 집에 못 가고 병원에서 쉬고 있노라면 입이 삐쭉 나온다.

안 그래도 주중 내내 자정이 되도록 끝나지 않는 일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은데 주말까지 병원에 있으라니. 그 시간은 참기 힘든 인내의 시련이었다. 더군다나 입국은 3월에 이루어진다. 이제 막 겨울이 지나고 날씨가 풀리는데 나만 야위어가고 있다.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건 동기들도 나와 똑같이 생명력을 흡수당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사소한 행복에 눈물 짓다

2012년 6월 8일. 100일 당직이 끝나는 날이었다. 제대할 날만 바라보 며 날짜를 손꼽는 병장의 마음이 이러했을까.

100일 당직 내내 한 번도 병원 밖을 나가지 못한 것은 아니다. 몰래 탈출하다 들켰을 때 두려웠던 것은 윗연차 레지던트 선배들이다. 그래서 선배들이 얼추 퇴근하고 잠에 드는 새벽이면 몰래 탈출을 감행했다. 병원 근처에 있던 고기집이나 24시간 순대국밥집이 주요 탈출 장소였다. 그곳에서 국밥 한 그릇에 막걸리 한 잔을 하면 천국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행복에 눈물겨워 하는 내 신세가 너무 서글펐다. 그래도 의사인데! 사람이 자유를 박탈당하면 사소한 것에서 희열을 느낀다. 창문 밖으로만 보던 햇살을 낮에 쬐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

가운만 걸치고 한여름 밤에 한강으로 가면 야경이 무척 아름다워보였다. 익숙한 일상의 맛과 향기, 냄새, 촉감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4년의 수련기간 동안 가 장 기억에 남고 감수성이 풍부했던 시절은 1년차였는지도 모른다.

하루는 영화가 너무 보고 싶었다. 그래서 결전의 날을 정했고 그날은 영화를 보러 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일하는 내내 콧노래가 나올 정도였다. 11시. 모든 일을 끝내고 2시간 선잠을 쇼파 위에서 잔 뒤 새벽 2시에 심야 영화를 보러 나갔다. 분신과 같던 콜폰은 같은 죄수 신세였던 동기가 선뜻 맡아주었다.

가운과 콜폰과 마음속 책임마저 병원에 두고 영화를 보는데 그렇게 뭉클했던 적이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다. 100일 당직의 시작은 3월 1일이지만 사실상 레지던트 합격자 발표가 난 날부터 각종 일로 불려갔기 때문에 더 오랜 시간 맘 편히 나가지 못했다.

다른 과의 인턴이었고 오프였지만 병원을 나가려면 선배 레지던 트의 허락을 받고 나가야 했다. 전해 12월 중순부터 시작하여 80여일 추가, 족히 180여일, 즉 반년을 오프없이 보낸 것이다.

심지어 100일 당직이 끝난 이후로도 일을 빵꾸냈다는 등 선배에게 건방지게 말대답 했다는 이유로 '벌칙 당직' 소위 '벌당'을 섰고 그해 10월이 되어서야 오프다운 오프를 만끽할 수 있었다. 1년차 해방의 날이었다.

남자들은 군대 시절 추억에 밤새는 줄 모른다고 하지만 레지던트 1년차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흐르면 괴롭고 힘들었던 1년차의 경험은 안주거리가 된다. 하지만 다시 군대를 가라고 하면 절대 안 가듯, 다시 1년차를 하라고 하면 하고 싶지 않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악을 쓰고 버텼기에 버텼지, 알고 나서 하라고 하면 절대 못할 것이다. 그래서 교수님보다 대단한 의사가 레지던트를 2번, 총 8년을 한 복수 전문의라고 하지 않나.

수험생 세계에서는 재수하면 인생을 알고 삼수하면 철학을 안다고 하는데, 1년차를 2번 하면 세상의 진리를 깨우칠 것만 같다.

힘겨웠던 1년차가 끝나던 날, 동기와 함께 약속했다. 우리가 윗연차가 되고 치프가 되면 100일 당직부터 없애자고.

병원에는 정식 휴가를 신청해놓고 의국에 몰래 숨어 강제로 노역했던 시절을 생각하면서 불합리하다 느꼈던 악습들을 우리 선에서 끝내고 싶었다.

그리고 그 약속은 우리가 4년차를 졸업하던 날까지 지켰다. 이제는 전공의 수련 환경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근무 시간 상한선이 법제화되고 있기에 100일 당직은 옛 일로만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법이 그럴지라도 레지던트들이 자신이 당했던 것을 그대로 후배들에게 물려줄 생각을 한다면 근무 환경은 개선될 리 만무하다. 비록 '우리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한들 말이다.

뻔한 얘기지만 수련 환경을 개선하려면 당사자인 레지던트부터 조금씩 양보하며 생각과 태도를 바꿔야 할 것이다.

※본문에 나오는 의학 용어들은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실제 에이티피컬 병원에서 사용되는 외래어 발음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 글은 박성우 의사의 동의를 통해 그의 저서 '성형외과 노트'에서 발췌했으며 해당 도서에서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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