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특별법 행정처분 능사 아냐…융통성 필요하다"

발행날짜: 2019-02-15 05:30:47
  • 복지부 수련평가 결과에 깊은 한숨 "수련병원 문닫을 셈인가"

보건복지부가 수련환경 평가를 통해 전국 수련병원에 무더기로 행정처분을 내리자 해당 병원들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융통성을 당부하고 나섰다.

의료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 법으로 수련병원 대다수를 궁지로 몰고 있다는 것. 지키고 싶어도 도저히 이를 맞출 수 없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같이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전공의 특별법)에 따라 수련환경 평가를 진행하고 14일 그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상급종합병원은 42곳 중 76.2%에 달하는 32곳에서 특별법을 위반해 처분을 받았고 나머지 대학병원 등 수련병원들도 총 94개 병원에서 위반이 적발됐다.

이에 따라 복지부는 해당 병원들에 과태료와 시정명령 등 행정처분을 내린 뒤 이에 대한 전수 점검을 실시하겠다는 방침이다.

만약 행정처분을 받은 수련병원이 정당한 사유를 대지 못한 채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수련병원 지정이 취소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

이에 대해 처분을 받아 든 수련병원들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일들을 무조건 맞추라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하소연이다.

A수련병원 교육수련부장은 "전공의 특별법 시행 이후부터 꼼꼼하게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이에 대한 대책회의도 수차례 열며 이를 준수하려 노력해 왔다"며 "전공의들과도 계속해서 논의를 진행하며 머리를 맞대온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도저히 좁혀지지 않는 괴리가 있었고 전공의들도 이러한 부분에 대해 답답해하며 아쉬워했다"며 "헌데 이제와서 이렇게 처분을 받으니 답답할 따름"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상당수 수련병원들도 같은 의견을 내고 있다. 내과계 등은 그나마 이에 대한 조정이 쉽지만 외과계는 업무 특성상 일정 부분의 융통성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B수련병원 부원장은 "나도 외과의사지만 외과는 환자가 들어오는 즉시 일이 시작되고 환자가 나가야 일이 끝나는 숙명"이라며 "응급환자가 들어왔는데 근무시간이 끝났다고 무책임하게 수술방에서 나갈 수는 없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이어 그는 "특히나 상급종합병원은 당장 바이탈이 흔들리는 응급 환자들이 많고 수술이 끝난 뒤에도 중환자로 남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그런 상황속에서도 어떻게든 80시간에 맞춰 주려고 노력했는데 몇 번 이 시간이 넘어갔다고 행정처분을 내리는 것은 가혹한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실제로 이 병원은 만약 전공의가 특수한 상황으로 100시간을 근무했을 경우 다음 주나 그 다음 주 수련시간을 70시간 정도로 줄여준 것으로 파악됐다.

이 부원장은 "피치 못해 80시간을 넘겼을 경우 어떻게든 그 시간에 대해 보상을 주려 노력했는데 그러한 노력들은 아무 것도 인정되지 않았다"며 "적어도 외과계에 이러한 법을 들이대려면 에버리지(평균값)라도 인정해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처럼 전공의 특별법 위반 사례가 외과계에 집중되면서 관련 학회들도 답답한 한숨을 쉬고 있다. 적어도 이러한 원인이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

무조건 법에 맞춰라고 강요할 것이 아니라 법의 취지에 맞게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과 환자의 안전, 치료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외과학회 노성훈 회장(연세의대)은 "어느 병원에 가보고 만나봐도 적어도 상급종합병원들은 전공의 특별법을 지키려 최대한으로 노력하고 있다"며 "하지만 외과계는 응급수술과 중환자 관리, 합병증 위험 등에 노출된 환자 비율이 많다는 점에서 교수와 전공의 모두 책임감과 의무감에 피치 못하게 법을 위반하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고 풀이했다.

이어 그는 "전공의 특별법에 대해 교수들도 알고 전공의들도 알지만 당직을 서며 지켰던 자기 환자의 상태가 나빠졌는데 이를 외면하고 집에 갈 수 있는 의사는 없다"며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일부 시간이 오버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적어도 고의로 법을 위반하는 행위와 피치 못할 상황 정도는 구분해 처분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 학회의 의견이다.

또한 정부 입장에서도 법 위반 사례를 적발하는데 힘을 쏟기 보다는 외과학회 등 전문가 단체들과 머리를 맞대고 이를 풀수 있는 방안들을 찾아 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 회장은 "물론 법은 지키라고 만들어진 것이지만 이렇게 계속해서 문제가 생겨난다면 이에 대한 고심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며 "현상만 자꾸 이아기 하며 모두가 진흙탕에 발을 담그고 옴짝달싹하기 보다는 모두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그는 "현재 외과학회에서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입원전담전문의가 대표적으로 방안으로 좀 더 광범위하게 제도가 확산되면 전공의 근무시간 준수는 자연스레 문제가 풀려갈 것"이라며 "상식에 어긋난 규정 위반이 있다면 당연히 철퇴를 가해야 겠지만 구조적 문제가 있는 것이라면 정부 입장에서 이를 풀어가는 방안에 힘을 보태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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