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진료는 '진료' 아냐…코로나에 묻어가지 말아야

메디칼타임즈
발행날짜: 2020-06-16 05:45:50
  • 강윤희 전 식약처 임상심사위원

현재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원격진료는 진료가 아니다. 진료를 할 때 중요한 두가지가 병력 청취(history taking)와 이학적 검사(physical examination)인데 원격진료로는 병력 청취만 가능하고, 이학적 검사를 할 수 없다.

즉, 환자분이 기침을 호소하는데, 정작 흉부 청진은 할 수 없고, 흉부 X-ray 검사도 할 수 없다. 병력 청취만으로 진단을 하고 처방을 할 수는 없다. 그 옛날 허준도 그러지는 않았다. 직접 환자를 보고, 맥도 짚고 그러면서 처방을 했던 것이다.

원격진료에 대한 논의는 약 10여년 전에 시작됐는데 의료기반이 취약한 지역의 환자들이 가까운 병의원이 없어서 제대로 진료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원격진료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여전한데, 예를 들어서 독도에서 근무하는 경찰이 참을 수 없는 복통이 발생했다고 하자. 원격진료로 환자 진료가 가능할까? 절대로 불가능하다! 닥터헬기를 타고 날아가서 환자를 빨리 의료기관으로 이송하는 것이 답이다.

즉, 의료기반이 취약한 지역의 환자들을 위해서 원격진료를 도입하자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원격진료가 아니라 제대로 된 공공의료기반 또는 의료전달체계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해 일부 전화처방이 허용되고 생활치료센터에 대한 원격자문을 하면서 비대면 진료라는 용어가 생기고, 뜻하지 않게 원격진료에 대한 논의가 다시 불붙게 됐다.

마치 전화처방과 원격자문이 가능하니 원격진료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의 흐름인데, 이런 현상을 신경정신과에서는 flight of idea, 즉 사고의 비약이라고 한다. 특수한 상황에서의 전화처방, 원격자문과 원격진료는 같은게 아니다.

또 정부는 원격진료가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 상황에서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얘기하는데 이런 잘못된 추론을 '교란됐다(confounded)'라고 한다. 바른의료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원격진료 선진국인 미국이나 유럽 국가의 코로나 발생율이 원격진료가 활발하지 않는 한국, 대만, 일본 등보다 더 높다.

즉, 원격진료와 코로나19 방역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러니까 사고의 비약, 교란된 추론으로 원격진료를 밀어부친다면 크게 잘못하는 것이다.

다만 이번 코로나19 상황에서 우리는 두가지 새로운 의료시스템을 만들게 됐다. 첫번째는 전화처방을 허용한 것이다. 전화처방 허용을 통해 환자들의 전화처방 만족도가 높다는 것을 확인하게 됐다. 필자의 시아버지도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데, 전화처방을 이용해 약을 처방받았다. 담당 주치의는 전화로 환자의 상태에 대해 확인한 후 두 번은 전화처방을 해주었는데, 다음에는 환자 상태도 직접 확인하고, 필요한 검사도 해야 하니 병원에 꼭 오도록 설명해 주었다.

아마도 꽤 많은 만성질환 환자들이 전화처방을 활용했고, 편안함을 느꼈을 것이다. 90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화처방에 대해서 환자들의 87%가 만족스러웠다고 답했다. 즉, 만성질환자의 경우 건강 상태의 변화가 없다면 늘 규칙적으로 처방받는 약을 전화로 처방받을 때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있다.

두번째는 원거리 생활치료센터에 대한 원격자문이다. 코로나19 판데믹 상황에서 감염내과 전문의들은 거점병원에서도 인력이 모자라는 상황이었다. 그러므로 생활치료센터에는 감염내과 전문의가 파견될 수 없었다.

이에 생활치료센터에는 일반의 또는 타과 전문의가 상주해 환자들을 모니터링하면서, 의학적 자문 또는 결정이 필요한 경우에는 원격으로 거점병원과 논의하는 방식이었다. 이 방식은 코로나19 판데믹 상황에서 매우 효율적이었다.

그러므로 정리를 해보자. 정부가 주장하는 의료기반이 취약한 곳의 사람들에게는 공공의료기반 또는 적절한 의료전달체계가 필요한 것이지 원격진료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도리어 원격진료로 의료취약계층의 의료의 질이 더 낮아지고,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번 코로나19 판데믹 상황에서 잘 조절되고 있는 만성질환의 경우 전화 처방을 허용할 때 환자들의 만족도가 높다는 것이 입증됐으니 이를 코로나19 이후에도 활용하는 것은 바람직하겠다.

이를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경증 질환의 상급종합병원 이용 제한 정책과 맞물려 경증 만성질환의 전화처방을 1,2차 의료기관으로 제한한다면 우리나라의 비정상적인 의료전달체계를 바꾸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지역전염병센터를 구축하려고 할 때 이번 코로나19를 통해 경험한 생활치료센터와 원격자문의 형태를 도입하는 것이 한정적인 의료인 자원을 활용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원격진료는 공공의료기반과 의료전달체계의 기본을 견실히 놓으면서 고민할 문제이지 얼렁뚱땅 코로나19에 묻어갈 일이 아니다.

관련기사

오피니언 기사

댓글

댓글운영규칙
댓글을 입력해 주세요.
더보기
약관을 동의해주세요.
닫기
댓글운영규칙
댓글은 로그인 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으며 전체 아이디가 노출되지 않습니다.
ex) medi****** 아이디 앞 네자리 표기 이외 * 처리
댓글 삭제기준 다음의 경우 사전 통보없이 삭제하고 아이디 이용정지 또는 영구 가입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1. 저작권・인격권 등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
2. 상용프로그램의 등록과 게재, 배포를 안내하는 게시물
3. 타인 또는 제3자의 저작권 및 기타 권리를 침해한 내용을 담은 게시물
4. 욕설 및 비방, 음란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