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 예방접종 혼란 속 또다른 복병 '예진표'

이양덕
발행날짜: 2020-10-26 09:36:02
  • 이양덕 대전이양덕내과 원장

|칼럼|이양덕 대전 이양덕내과 원장

2020년 올해는 독감백신 안전성에 대한 논란 속에서 발생한 독감백신 접종 후 사망사례로 환자와 의료진 모두가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개원가는 백신냉장고의 보관온도 유지에 더욱 철저할 뿐만 아니라 독감 예방접종 예진표 작성에 좀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만 62세이상 무료 독감 예방접종에서 개원가의 업무를 가중시키는 것 중 하나가 예진표 작성일 것이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반이상의 접종대상자가 예진표 작성을 의료기관에 와서 직원과 함께 하고 있으며 고령일수록 시력, 청력 저하로 작성에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

예진표를 보면 개인정보 처리에 대한 동의사항 2개를 제외하고도 접종대상자에 대한 10개의 설문이 더 있다. 질문이 많다보니 집중도도 저하되고 글씨가 작아 읽기가 어렵다. 마지막의 임신 여부에 대한 질문을 할머니에게 할 때는"원장님이 나 웃기려고 하시네!"라며 함박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10개의 설문을 마치고 나면 '예'라고 답변한 것에 따른 백신접종 시행여부에 대한 지침이 없다. 즉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지만 적격여부에 대한 사용설명서가 없는 예진표이다. 이에 대해 여러 교수님들에게 문의를 하였지만 해답을 구하지 못 했고 '그래도 충실히 작성해야 한다'라는 답변을 들었다.

'만 62세이상 독감 예방접종 예진표' 10개의 설문 문항을 간략하게 쓰면 다음과 같다

가. 오늘 아픈 곳이 있습니까? 아픈 증상을 적어주십시오.
나. 약이나 음식물(계란 포함) 혹은 백신접종으로 두드러기 또는 발진 등의 알레르기 증상을 보인 적이 있습니까?
다. 과거에 예방접종 후 이상반응이 생긴 일이 있습니까?
라. 선천성 기형, 천식 및 폐질환, 심장질환, 신장질환, 간질환, 당뇨 및 내분비 질환, 혈액질환이 있습니까?
마. 경련을 한적이 있거나 기타 뇌신경계 질환(길랭-바레 증후군 포함)이 있습니까?
바. 암, 백혈병 혹은 면역계 질환이 있습니까?
사. 3개월 이내에 스테로이드제, 항암제, 방사선 치료를 받은 적이 있습니까?
아. 1년 동안 수혈을 받았거나 면역글로블린을 투여받은 적이 있습니까?
자. 1개월 이내에 예방접종을 한 일이 있습니까?
차. 현재 임신 중이거나 한 달 안에 임신할 가능성이 있습니까?

필자의 개인적 의견임을 밝히며 좋은 설문지인지를 하나씩 점검해 보고자 한다.

1. 질문이 꼭 필요한 내용인가?

라.의 기저질환에 대한 질문과 차.의 임신여부에 대한 질문은 우선적 접종대상이므로 굳이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또한 필자는 만 62세 이상에서 임신한 경우를 보지 못 했다.

가, 나, 다, 마 질문은 필요하고 접종을 미루거나 하지 말아야할지 결정을 내리는 데 중요하다. 그러나 그 외의 질문은 고령의 환자에게 쉬운 단어로 간결, 명료하게 표현되었다고 보기 어렵고 응답을 정확히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2. 질문의 내용이 중복되지 않는가?

나와 다의 백신접종과 예방접종은 중복으로 볼 수 있고 질문이 각각 독립적이지 않다. '라'의 기저질환과 '바'의 암, 백혈병, 면역계 질환의 질문도 비슷한 내용이다.

3. 응답을 하는데 노력이 많이 들지 않을까?

설문조사를 하다보면 너무 많은 질문은 응답자의 무성의한 답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청력이 저하된 고령 환자의 인적사항과 함께 총 12개 문항의 예진표를 문진을 통해 작성하는 것은 의료기관 접종업무에 부하가 가중되어 밀집된 환경을 만들고 체류시간 연장으로 이어진다.

반면, 10년전 미국 메이요 클리닉 연수시 작성했던 독감예방접종 동의서(consent form)는 4개의 필수질문만을 포함하고 있었다.
미국의 독감백신 동의서(immunization action coalition, www.immunize.org)

A. Is the person to be vaccinated sick today?
B. Does the person to be vaccinated have an allergy to a component of the vaccine?
C. Has the person to be vaccinated ever had a serious reaction to influenza vaccine in the past?
D. Has the person to be vaccinated ever had Guillain-Barre syndrome?

또한 우리나라의 예진표와 달리 동의서라는 단어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접종 후 부작용에 대해 의료진에게 의혹과 책임추궁을 하기 보다는 환자 본인이 스스로 진료를 받을 것을 동의한다(I release HealthWorks and its affiliates from responsibility of any reaction resulting from the injection, and I take full responsibility to seek medical attention should more severe symptoms occur).

이는 예측할 수 없는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으로 의료기관이 예방접종사업 참여를 꺼리는 것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19로 지치고 힘든 국민에게 독감백신마저 불안감을 주는 현사태가 안타깝고 접종 후 사망 사례에 인과관계를 떠나 깊은 애도를 표한다. 이를 계기로 대한민국의 예방접종사업이 더욱 안전해지고 신뢰를 회복해 환자와 의료진이 모두 안심하고 참여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예방접종동의서에 대한 필자의 작은 생각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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