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직 노무사(노무법인 해닮)
|노무칼럼|이동직 노무사(노무법인 해닮)
2021년 4월 29일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됐습니다. 노동관계법이 수시로 개정되긴 하지만, 산업현장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조항이 바뀌는 경우는 흔치 않아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동종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어느 지인의 카톡을 받아보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빠르게 스마트폰 자판을 눌렀습니다. "정말 이게 통과됐다고?"
이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 공포 후 6개월이 경과한 날부터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임금명세서를 서면으로 교부해야 합니다. 근로기준법 제17조 제2항에서 근로조건이 명시된 서면(근로계약서)을 근로자에게 교부해야 하고,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벌칙조항이 있긴 했지만, 임금명세서 교부와 관련해선 근록기준법에 어떠한 규정도 두고 있지 않았습니다.
물론 근로기준법 제48조에서 사용자가 임금을 지급할 때마다 임금대장을 작성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근로자에게 임금과 관련된 사항을 알려줘야 한다거나 서면으로 교부해야 한다는 취지는 아니었기 때문에 근로기준법 제48조가 임금과 관련한 노사간 다툼을 해결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됐던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근로자에게 임금명세서를 서면으로 교부해야 한다면, 얘기가 전혀 달라집니다.
앞으로 사용자는 임금을 지급할 때마다 근로자에게 임금의 구성항목・계산방법, 공제내역 등을 기재한 임금명세서를 서면으로 교부해야 합니다. 물론 이는 앞서 말씀드렸듯이 근로기준법 제17조 제2항에 따라 근로계약서에 반드시 기재해야 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근로계약서상 임금 조항은 특수한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 채 일반적인 내용만 담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컨대 임금 산정기간은 매월 초일부터 말일까지이고, 임금 지급일은 임금 산정기간의 익월 10일이며, 임금의 구성항목엔 기본급・연장수당・야간수당 등이 있으며, 시간외 근로시 기본급의 50%를 가산해 지급한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어찌 보면 근로자에게 가장 중요한 대목이긴 한데, 회사마다 큰 차이가 있진 않기에 곁눈질하고 무심코 넘어가는 조항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매월 상세한 근태내역이 반영된, 구체적인 임금항목이 기재된 임금명세서를 작성한 후 이를 근로자에게 교부해야 한다면 임금을 정확히 계산해 지급해야 하는 병원이나, 자신의 근로 대가를 빠짐없이 받아가야 하는 근로자나 모두 각 잡고 임금지급명세서를 바라볼 게 틀림없습니다.
쉬운 예를 들어 볼까요? 만약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업무처리를 위해 근로시간이 급격히 늘어났다면, 연장근로시간을 계산해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해야 할 겁니다. 임금명세서엔 당연히 연장근로시간과 이에 따른 연장근로수당을 기재해야 하고요.
첫 번째 문제는 연장근로시간에 대한 입장이 병원과 근로자간에 다르다는 점입니다. 병원은 정해진 근로시간에 충분히 할 수 있었던 업무를 처리하지 못했다고 생각해 연장근로시간을 보수적으로 책정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근로자는 정해진 근로시간에 처리하기엔 업무량이 워낙 많다고 여겨 자신의 연장근로시간을 과신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병원과 근로자가 어렵사리 연장근로시간에 대한 절충점을 찾았다 하더라도, 이제 계산방법을 두고 옥신각신을 해야 합니다.
연장근로수당(= 연장근로시간*시급*1.5배)을 계산하기 위해선 먼저 시급(=기본급 / 한달 근로시간)을 산출해야 하는데, 시급 산출의 대상인 기본급(고정급)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병원은 매달 고정적으로 지급되는 임금항목이 몇 개 안된다고 주장할 테고(기본급이 줄어 시급이 낮아짐), 근로자는 일정 요건이 충족되면 제가끔 지급되는 임금항목도 고정성이 있다고 항변할 겁니다(기본급이 늘어 시급이 높아짐). 임금명세서가 교부되기 전엔 볼 수 없었던 풍경이지요.
체불임금액만 한해 1조원에 이르는 나라에서 노사간 시시비비를 명확하게 가릴 수 있는 수단의 하나로 사용자에게 임금명세서 교부 의무를 지우는 법안의 입법은 오래 전부터 검토돼 왔습니다. 그리고 그 첫발을 뗀 것이고요. 병원 원장님뿐 아니라 사업을 영위하는 모든 사업주, 전체 근로자 분들에게 일대 격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를 두고 긁어 부스럼이라며 피해가려고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순리대로 차근차근 준비하는 방법만이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임을 아시시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