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알아야 하는 의료 히스토리

박종훈 한국원자력의학원장
발행날짜: 2022-03-14 05:10:00
  • 박종훈 한국원자력의학원장(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 정권에 바라는 글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새 정권의 그 누가 내 글을 보기나 할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는 하지만 매번 부탁을 거절하지는 않는다. 혹시 그래도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우리의 의료시스템은 수많은 모순을 안고 있다. 한두 가지를 고친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전문가들에 의해 장기적인 플랜 하에 의도적으로 발전되어 온 것이 아니라 위정자들에 의해 그때그때 수정되어 온 터라 오랜 세월이 흐르고 보니 애초에 왜 이런 제도가 만들어졌지? 싶을 정도로 왜곡이 심해져 버렸다.

자, 무엇부터 손을 델까? 많은 사람이 저 수가 체계를 제일 우선으로 손 봐야 할 것으로 지적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내게 1순위는 의료체계다. 물론 저 수가도 황당하지만 말이다.

소위 말하는 의료 전달체계라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다. 분명 1, 2, 3단계로 의료기관이 분류는 되어있고 수가 체계도 연동되게 되어있지만 실제로는 거의 작동하지도 않는다. 무질서하기 그지없다. 그렇다 보니 질환의 난이도에 따른 수가 구조 또한 무력화되어버렸다. 중증질환 중심의 진료를 전제로 가산료가 붙는 3차 상급종합병원이 아직도 경증의 환자들을 끊임없이 빨아들이고 있다.

경증질환의 경우 가산료를 붙이지 않는다고 해도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과잉진료와도 연결된다. 한 마디로 통제되지 않는 소비적인 의료체계다. 이미 과잉진료 문화는 정착된 지 오래다. 병원 경영에 있어 과잉진료는 기본이다. 고민이 없는 끝없는 검사와 인력 부족으로 인한 검사 결과의 미비. 밤새 MRI를 찍어대고 판독은 제때에 나올 수가 없다. 판독 가능한 의사들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검사를 해댄다.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구조가 돼 있다. 이렇게 되면 어느 순간부터 의료 안전은 또다시 뒷전이다.

그 어떠한 실손보험 상품이 나와도 거덜 내버리는 우리의 의료. 대단하다. 이러한 구조는 규모 중심의 의료 시장을 공고히 만들었고 그 덕분에 의료계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심화 되었다. 수도권 소재의 병원이 아니면 그것도 대형병원이 아니면 경영 자체가 어렵다. 환자도 의료 인력도 수도권 대형병원 쏠림현상이 극명하다.

한편 정확하게 기획되지 않았던 의료 인력 양성 체계는 급기야는 수련 받기 쉽고 전문의 취득 후, 아니 전공 필요 없이 돈 벌기 쉬운 분야로의 쏠림현상만 일으켰으니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수십 년간 배출되는 의사 인력은 일체의 증가가 없었는데 병상은 수배가 늘었고, 급기야 수련 전공의 근무시간의 대책 없는 조정으로 인해 아이러니하게도 환자 안전은 더욱더 궁지로 몰렸다.

여러 번 지적한 바 있지만, 다시 한번 지적해보면 제발 차기 정부에서는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의료제도가 무엇인지를 근본적으로 들여다보고 10년 20년 장기 계획을 세우고 천명해줬으면 한다. 도무지 지향점을 모르겠다.

왜냐고? 단 한 번도 그런 설계를 해 본 적이 없으니 본 적이 없을 수밖에. 시장 경제에 기반을 두는 의료를 지향할 것인지, 사회주의적인 의료를 지향할 것인지, 방향을 정하고 의료 인력 교육 체계부터 의료시스템을 어찌할 것인지를 논했으면 한다. 이런 풍토 속에서 기존의 의과대학에서 의과학자를 양성한다?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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