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된 재정 둘러싸고 가입자-공급자 밀당 "변수 많다"
코로나 2년차, 진료비 상승률 달라졌다 "치밀한 설득 논리 필요"
의료기관의 한해 살림살이를 좌우할 수가협상 시즌이 약 두 달 앞으로 돌아왔다.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5월 마지막 날까지 수가협상을 완료해야 하는 만큼 협상 당사자인 건강보험공단과 병원, 의원, 한의원, 치과의원, 약국 등 각 유형을 대표하는 단체들은 협상단을 구성하며 일찌감치 논리 만들기에 돌입했다.
코로나19 대유행이 3년째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재정을 아끼려는 가입자와 풀려는 공급자 사이 밀고 당기기가 어느 때보다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한정된 재정을 나눠야 하는 상황에서 공급자 단체 사이 눈치 보기도 여전히 이어질 예정이다.
코로나19 정국 속에서 5월에 진행될 유형별 수가협상 전 주요 쟁점을 들여다봤다.
사상 최대 건강보험 재정 흑자 20조원…기대감 상승
코로나19는 변이를 일으키며 여전히 유행 중이다. 지난해와 달라진 상황은 건강보험 재정이 20조에 달하는 흑자라는 상황이다.
건보공단은 지난 2월 문재인 케어라고 불리는 보장성 강화 정책 말기 현금흐름 기준 건강보험 재정 누적 적립금이 20조2410억원에 달한다고 공개했다.
문재인 케어 초기만 해도 건보재정이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보란 듯이 최대치의 흑자를 기록했다. 코로나 대유행으로 의료 이용률이 감소하면서 건보재정 지출이 줄었고, 반대로 보험료 수입은 전년보다 더 늘었기 때문이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서 "문재인 케어를 추진하며 지출을 대폭 확대했는데도 건보 재정 상황은 오히려 양호해졌다"라며 자화자찬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공급자 단체 역시 수가협상에 투입할 전체 재정 확대를 기대하는 모습이다.
한 공급자단체 관계자는 "이번 수가 협상은 어느 때보다 변수가 많다. 사실 문재인 케어 때문에 건보재정이 감소할 줄 알았는데 예상치보다도 더 적게 감소했다"라며 "충분히 수가인상에 여력이 있다는 소리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하지만 건강보험료를 내는 가입자와 재정을 관리하는 건보공단이 '20조원의 흑자'를 바라보는 시각은 정반대다.
수가협상 절차를 보면 건강보험 재정 운영을 관장하는 재정운영위원회가 각 유형이 나눠 가질 전체 재정(밴딩)을 정한다. 건보공단은 재정위가 정한 밴딩을 무기로 각 유형과 협상을 한다.
통상 수가협상에서 재정위와 건보공단의 입장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건보재정을 보수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같기 때문이다.
재정운영위에 참여하는 한 인사는 "코로나19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의 소득이 나아지고 있다는 희망적인 지표가 아직까지는 없다"라며 "가입자 시각은 공급자가 기대하는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건보공단 역시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 코로나 이후 의료이용률 증가 등이 예측되는 상황에서 재정이 아무리 흑자라도 아껴야 한다는 입장이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하반기 예정된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으로 보험료 수입은 연간 2조원 정도 줄어들 것으로 본인다"라며 "정권 말기 보장성 강화 항목인 척추 MRI 및 두경부 초음파 급여화 등의 재정 소요액도 무시 못 한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건강보험 보장률 70%가 목표인데 이 수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1년에 3조~4조원은 나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라며 "오미크론 환자 급증에 따른 재택치료비 지원, 동네병의원 신속항원검사 시행 등으로 코로나19 대응비용도 계속 증가할 예정이며 고령화 대비 등 예정된 지출 금액이 상당하다"라고 덧붙였다.
건보공단과 재정운영위는 재정을 아껴야 한다는 공감대 형성을 보다 공고히 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건보공단은 수가협상에 활용할 연구용역을 지난해 9월부터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맡겨 진행하고 있으며 중간 결과를 이달 초 재정운영위 등에 공개할 예정이다. 통상 연초에 진행하던 것보다는 더 빨리 일정을 진행하면서 수가협상 과정에서 진통을 줄인다는 계획이다.
진료비 증가율 상승세 전환, 의료계 악재 되나
올해 수가협상에서도 공급자 단체는 코로나19에 따른 손실을 수가에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을 어김없이 할 예정이다. 하지만 코로나 대유행 상황에서도 지난해 진료비 증가폭이 전년도보다 크기 때문에 치밀한 설득 논리가 필요하다.
건강보험공단이 최근 발표한 '2021 건강보험 주요통계'를 보면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 개원가 진료비 증가율이 심상치 않다. 지난해 상급종병 진료비 증가율은 전년대비 7.7%였고 종합병원은 11.3%, 의원은 10% 였다. 치과의원도 7% 늘었다.
전년도만 해도 진료비 증가율이 0%대를 기록했던 것과 비교하면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한 공급자 단체 관계자는 "건보공단이 대외적으로 발표하는 진료비 통계는 법과 제도의 변화를 반영하지 않은 결과"라며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서 정부 정책 이행을 하면서 인건비 등이 증가했다"고 반박했다.
또 "보장성 강화가 이뤄진 만큼 비급여가 급여권에 진입했으니 진료비 증가율이 더 늘어나는 착시 효과"라며 "의료기관의 경영이 더 좋아졌다고 해석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수가협상에서 코로나19에 따른 정부의 손실 보상을 이야기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또 다른 공급자 단체 관계자는 "정부가 코로나19에 따른 정책을 만들면서 새로운 수가를 만들어 적용했지만 일부 소수 병원과 의원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라며 "충분한 수가 인상이 없으면 사느냐 죽느냐 기로에 놓인 의료기관이 대다수"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