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석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 "엉성한 모형, 정권마다 사업 단절"
복지부 공직 15년, 원격의료 설계자 "보건정책 연구 해보고 싶었다"
"지난 20년간 진행된 정부의 원격의료 시범사업은 효과 검증이 부실했고, 정권마다 단절된 사실상 속빈 강정에 불과하다."
연세대 보건대학원 김유석 연구교수(54)는 최근 메디칼타임즈와 만나 보건복지부가 서둘러 추진하는 비대면 진료(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제도화의 우려감을 이 같이 표현했다.
그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복지부에서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설계해 추진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김 교수(1969년생)는 연세의대 졸업(1997년)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2006년 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 보건사무관으로 입사한 의사 공무원이다.
복지부 보건의료정보과와 건강정책과, 보험약제과, 보건의료기술개발과 그리고 원격의료추진단 시범사업 팀장 및 국가정신건강센터 기획홍보팀장을 거쳐 2020년 2월 부이사관으로 15년 간의 공직 생활을 마감했다.
2020년 3월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로 자리를 옮겨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의료정책과 원격의료를 포함한 디지털 헬스케어 강의를 하고 있다.
잘 나가던 의사 공무원이 모교 교수로 이직한 이유가 궁금했다. 김 교수는 잠시 생각하다 "다른 질문부터 하시죠"라며 말을 돌렸다.
그는 복지부에 재직하면서 보건소와 심사평가원으로 이원화된 의료기관 인력과 장비 신고 일원화와 보건소 통합 건강증진사업, 정신건강 포탈 구축 등 보건의료 정책과 사업을 주도했다.
■공직 15년 마감, 보건대학원 교수로 변신 “자유로운 비판과 연구 장점”
공무원과 교수의 장·단점은 무엇일까.
김 교수는 "복지부 공무원은 보건 정책을 수립하고 사업을 추진해 국민건강 증진을 위한 성과를 도출했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공무원 생활을 뒤돌아보면 '이게 최선인가'라는 물음을 던질 때가 적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어 "교수는 누구의 지시가 아닌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정책을 자문하고, 연구가 가능하다. 공무원과 같이 9 to 5(9시 출근, 5시 퇴근)에 구애 받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교수들은 보건의료 정책을 강하게 비판하지만 대안을 제시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반면, 공무원은 대안까지 마련해 정책과 사업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법을 마련하는 책임감을 갖고 있다"며 공무원들의 책임의식을 높게 평가했다.
공무원 생활 중 가장 아쉬웠던 정책은 EMR(전자의무기록) 표준화.
2007년 당시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 등 일부 병원만 EMR을 구축했을 뿐 대다수 의료기관은 OCS(처방 전달 시스템)에 의존했다.
의료기관간 호환 가능한 EMR 표준화 사업을 추진했지만 정부의 통제를 거부한 의료단체 반대와 정권 교체 등으로 사업이 좌초됐다.
김 교수는 "지금은 대학병원과 중소병원, 의원급까지 각기 다른 EMR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어 표준화 자체가 불가능하다. 호환 가능한 프로그램까지 개발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좀 더 의료계를 설득하고 못한 부분이 아쉽다"고 회상했다.
의료계 핫 이슈인 비대면 진료로 명명된 원격의료로 얘기가 옮겨지자 목소리에 단호함이 느껴졌다.
그는 박근혜 정부 시절 원격의료 추진단 시범사업 팀장으로 정책 설계와 진행을 총괄했다.
"원격의료는 DJ정부부터 참여정부, MB정부,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 모두 드라이브를 걸었던 사업이다. 복지부가 20년 간 추진한 시범사업이라고 하나, 안을 들여다보면 효과성 검증이 부실했고, 정부마다 단절된 속빈 강정에 불과했다"고 단언했다.
김 교수는 "박근혜 정부에서 원격의료 시범사업 모형을 심플했다. 고혈압과 당뇨병 등 만성질환자를 대상으로 3개월 기간을 정해 처음 2개월은 원격진료, 나머지 1개월은 대면진료이다. 이것으로 어떻게 효과성을 검증할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대조군 없는 엉성한 원격의료 모형 "제도화 이전 의료계와 컨센서스 필요"
이어 "국민 안전성 확보를 위해 대조군을 설정하고 효과성과 비용 검증을 철저히 해야 한다. 오랜 시범사업에 불구하고 의료계에서 논란이 되는 이유"라며 "제대로 된 시범사업을 준비해야 한다. 엉성한 모델과 20년 시범사업으로 '수가'가 나올 수 있겠나"라고 되물었다.
의사협회가 원격의료 모형 협의에 참여 의사를 표명하고, 원격의료 플랫폼으로 대표되는 업체들은 초진 허용을 주장하는 등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보건의료 변화 바람이 거세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김 교수는 "원격의료 제도화에 급급해 하지 말고, 의료계와 컨센서스를 이뤄야 한다. 보건정책은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만큼 효과성과 안전성, 비용성 등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유석 교수는 "원격진료 적용 질환과 화질 해상도에 따른 수가, 오진 발생 시 책임 소재 등을 시범사업에 담아야 한다. 대면수가보다 높은 수가를 책정하기 위해서는 시간 투입 대비한 효과성이 분명해야 한다"면서 "효과성 검증없는 제도화는 자칫 원격의료 비급여로 이어져 사문화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복지부 공무원 재직 시 조용히 업무에 치중한 그가 보건 정책에 대한 가감 없는 비판과 소신을 겸비한 보건대학원 교수로 변신한 셈이다.
김 교수는 인터뷰 마무리 단계에서 "첫 질문에 답하겠다. 공무원으로 보람도 있었지만 대학 교수라는 좀 더 큰 틀에서 보건의료 정책을 연구하고 사업을 직접 해보고 싶었다"며 "양적인 의료제도에서 환자안전과 의료 질을 담보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어 보겠다"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