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카복시 논란…대법원 "의학을 한의학으로 포장"

발행날짜: 2022-07-01 05:10:00 수정: 2022-07-01 09:14:29
  • 1심부터 대법원까지 법원, '카복시=의학적 치료법' 일관된 판단
    한의사의 카복시 비만치료 논란 마침표…시술 부작용 대응도 한계

"의학에 기초한 치료법을 한의학적 원리에 따라 포장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한의사가 비만 치료를 위해 '카복시 시술'을 하는 것을 놓고 사법부가 내린 판단이다.

대법원은 30일 의료행위로 분류되는 카복시테라피를 했다 의료법 위반 혐의로 벌금형을 받은 한의사 P씨의 상고를 기각했다. 벌금 80만원형을 내린 원심 판결을 유지한 것. 2014년 10월 첫 번째 공판 이후 약 8년 만에 나온 결론이다. 1심과 2심은 2년여 만에 결론이 나왔지만 해당 사건은 대법원에서 약 6년 동안 머물러 있었다.

메디칼타임즈는 1심과 2심 판결문을 통해 카복시 시술을 한 한의사 P씨가 내세운 주장과 이를 배척하며 위법하다고 판단한 법원의 결정을 살펴봤다.

서울 서초구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던 한의사 P원장은 2013년 1월부터 2014년 7월까지 불특정 다수의 환자에게 '기복기' 장비를 사용한 일명 카복시 시술을 해왔다.

■카복시 시술이란?

기복기는 최초에는 복강 내 검사를 하거나 시야 확보를 위해 복막에 액체 또는 가스 등을 넣어 확장하는 데 사용하기 위해 제조된 의료기기로 2등급에 해당한다. 복막에 주입되는 물질은 주로 이산화탄소다.

카복시 시술은 체지방 감소 목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산화탄소가 피부에 들어가면 피부 조직의 이산화탄소 분압이 증가해 고탄산혈증을 유발하게 돼 산소 요구량을 증가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증가하면 헤모글로빈 친화도 감소해 같은 산소 분압에서 헤모글로빈으로부터 해리되는 산소 양이 많아지며 조직 안으로 공급되는 산소 양이 늘어나는 등 혈액순환이 증가하고 지방분해가 촉진된다.

카복시 시술은 체내 지방조직이 분해되면서 지방세포가 용해되고, 복부 둘레 및 허벅지 둘레가 의미 있게 감소하는 등 피하지방층에 축적된 체지방을 감소시키는 목적으로 응용되고 있다.

이산화탄소를 이용한 치료법은 1932년 프랑스에서 시작됐다. 직접 피하에 주입된 이산화탄소에 의한 혈관확장과 말초 혈액순환 개선 효과가 알려지면서 이탈리아에서 이용했다. 2001년 경 부분비만치료에 효과 있다는 임상 연구가 발표되면서 비만치료 목적으로 응용되기 시작했다. 지방 감소 효과는 이산화탄소 주입으로 인한 혈류량 증가 및 그로 인한 지방분해 촉진이라는 생리학적 과정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한의사 P원장 "기혈 순환에 가장 효과적인 혈자리 이산화탄소 주입"

카복시 시술 연원과 작용 기전은 한의학계에서 발표된 논문에서도 마찬가지로 기술돼 있고, P원장도 같은 원리에 의해 지방분해 효과가 발생한다고 인정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재판 과정에서 P원장은 기복기 작동원리는 '물리학적' 원리에 기초한 것이지 의학적 원리에 기초한 게 아니라고 하며 한의학 정규과정을 통해 기복기 사용에 대한 교육도 받고 있다고 했다.

그는 "기복기를 한의학적으로 응용한 기침요법 또는 경피기주요법이라는 한방의료행위를 하는 범위에서만 기복기를 사용하고 있다"라고 했다.

기의 개념에는 이산화탄소가 포함되는데 이산화탄소가 대기의 구성 성분이며 조직의 에너지 대사산물이기 때문이다. 기가 가는 곳에 혈이 따라가므로 이산화탄소를 주입해 혈류 순환을 증가시켜 지방분해를 활성화시키는 것은 한의학적 생리기전이라는 설명으로 주장을 뒷받침했다.

P원장은 "환자의 변증유형별로 기혈의 순환에 가장 효과적인 혈자리에 이산화탄소를 주입하는 방법으로 시술했다"라며 "비만 부위에 시술하는 서양의학에 따른 치료법과 차이가 있다"라고도 했다.

■"전통적 한의학 이론이나 원리 기초로 했거나 응용한 행위 아니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모두 P원장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카복시 시술이 한의학적 원리를 따른 게 아니라는 점도 못 박았다. 심지어 P원장은 의사가 하는 카복시 시술 동영상을 확인한 후 자신의 시술법과 일치한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카복시 시술은 이산화탄소의 물리적 특성 및 이산화탄소에 반응하는 인체조직의 생화학적 특성에 근거를 둔 것"이라며 "한의학적으로 응용한 방법으로 카복시를 했더라도 전통적인 한의학 이론이나 원리를 기초로 했거나 응용한 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이산화탄소는 공기 중 0.03%에 불과한데 이를 주입하는 것을 두고 기의 주입이라고 하는 것은 수긍되지 않는다"라며 "이산화탄소 주입 혈자리도 환자가 주로 비만을 호소하는 부위에 집중돼 있다"고 덧붙였다.

■"카복시 합병증 위험, 단순 침술 위험과 다르다"

카복시는 주사를 피부에 꽂아 이산화탄소를 주입하는 시술인 만큼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에 한의사가 대처할 수 없을 것이라고 봤다.

카복시는 시술 부위 통증과 멍이 발생할 수 있고 2차 감염에 의한 심부염증, 두통, 기종도 생길 수 있다. 이산화탄소를 주입하는 데 사용되는 주사기를 깊게 찌르면 피하지방층 이외의 곳에 공기가 쌓일 수 있고, 주사기가 횡격막을 관통하게라도 되면 기흉이나 종격등기종 발생 위험도 있다.

카복시는 지방분해를 통한 비만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침습적인 의료행위라서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상 위험을 발생시킬 우려가 충분히 있다는 것이다.

법원은 "단순히 통상적인 침술에 따른 합병증 위험 정도와 같다고 볼 수 없다"라며 "기흉이나 종격동기종 감별을 위해서는 흉부 엑스레이 촬영이 필요할 수도 있고, 세균감염 증상이 보이면 적절한 항생제 처방도 필요한데 이런 부작용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서는 의학에 기초한 원리에 따른 조치가 필요하다"라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한의사가 이를 적절히 대처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기 어렵다"라고 덧붙이며 "한의학에서는 면허범위 내에 한약의 처방이나 통상적 침술 등을 통한 다양한 종류의 비만치료법이 있다. 보건위생상 위해 가능성을 무시하고 기복기를 사용하는 시술을 허용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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