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응급실 의료인 폭력을 해결해 보자

이형민 응급의학의사회장
발행날짜: 2022-07-04 05:30:00
  • 이형민 응급의학의사회장(한림대성심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지켜야 할 규칙이 법이다. 대부분의 국가가 어떠한 형태로든 이것을 가지고 있고, 국가기관이나 공권력은 이 법을 이용하여 사회질서를 유지한다. 여기에 더해서 법이 아니어도 지켜야 할 사회적인 동의들이 있다면 그건 예절, 도덕, 윤리 등 일 것이다.

이형민 응급의학의사회장.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보면, '응급의료를 방해' 하면 안 되기 때문에 폭행 상해한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1억원의 벌금에 처한다고 되어 있고, 응급의료를 방해하거나 의료용 시설 등을 파괴, 손상 또는 점거한 사람에게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 일반적인 폭력의 처벌보다 2배 이상 강력하다.

이 처벌 조항은 6차례에 걸쳐 개정되었고 차츰 강화되어 오늘날에 이르렀다. 응급의료를 방해하면 안 되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다. 하지만 이 상식이 지켜지지 않아 법이 생기고 또 생각한 것만큼 효과가 없다 보니 다시 강화, 반복 되다보니 지금에 이르렀다. 이쯤 되면, 이방법이 현실적으로 효과가 없을 것 이라는 것을 알만도 하지만 여전히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또 다시 처벌의 강화를 논의하고 있다.

술에 취해 응급실에서 난동을 피우고, 또 분이 풀리지 않아 휘발유를 들고 와서 병원에 불을 지른 사람에게 과연 어떤 처벌이 내려질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원인이 무엇이고 재발방지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 지 생각해 보자.

가장 먼저 환자와 보호자 모두 술에 취해 응급실에 내원했다는 점이다. 이들이 응급실에서 소리 지르며 난동을 피우기 시작한 상황에서 응급실은 이미 마비인 것이다. 다른 환자를 봐야 할 의료진은 말도 안 통하는 그 부부를 상대 하느라 진땀을 뺏을 것이고, 주변의 다른 환자들은 치료가 늦어졌을 것이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만취한 음주자들은 응급실에 들어올 수조차 없다. 심지어는 다른 사람에 해를 끼칠 정도로 만취 한 사람에 대해서는 설령 사망에 이르더라도 유치장에 구금하는 것이 당연한 나라도 있다.

경찰이 출동을 했지만 잘 타일러서 집에 돌려보냈다고 한다. 아마도 그 환자나 보호자를 구속하거나 처벌해야 한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응급의료를 방해하면 징역이나 처벌을 해야 함에도 적용하지 않은 이유는, 굳이 경찰서에 데려가 봤자 다친 사람도 없는데(또는 경미한데) 정식 사건으로 입건 내지 기소될 가능성도 전무하고, 그래도 환자인데 치료는 받아야할 것 같기도 하고, 환자치료가 지연되어 그랬다면 보호자로써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을 것이다.

경찰의 입장에서는 잘 타일러 현장에서 집에 데려다 줬으니 할 일 다 했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 보호자는 왜 분이 풀리지 않았을까? 아마도 병원이 자신을 제대로 대접해 주지 않고 치료해 주지 않았으니 본인이 피해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보험료를 내고, 또 응급실에 가도 돈을 내니 당연히 나는 고객이고 응급실은 내 불편함을 가장 먼저 친절하게 해결해 줘야 함에도 그렇지 않은 것에 화가 났었을 것이다.

과거의 모든 응급실 폭력사건을 관통하는 이러한 문제의 흐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예측 가능한 초기 징후와 안전요원 부재, 경찰의 적절하지 못한 처리, 이어지는 심각한 2차 가해라는 공식이 성립한다.

거기에 더하여 검찰의 주취 감경과 정상참작이 더해지면 비로소 의료진 좌절의 완성형이 되어 버린다. 무엇이 응급의료의 방해인가 명확하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

폭력을 사용하는 것만 이 방해가 아니라 다른 응급환자의 치료를 어렵게 만드는 사소한 폭언이나 난동이라 하더라도 이 모든 것을 폭넓게 응급의료의 방해로 인정하여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처벌하여야 한다. 양형기준이 높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작더라도 처벌하는 것을강제 할 수 있는 법제화가 필요한 것이다.

외국의 경우 의료진에 대한 폭력은 국가공무원이나 공권력에 대한 폭력과 동일하게 취급한다고 한다. 미국에서 경찰에게 멱살 잡고 침을 뱉고 따귀를 때린다면 100% 수갑을 차게 될 것이다. 이것이 병원에도 동일하게 적용 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국회의원에게 이렇게 한다면 100% 구속일 것이지만 의료인에게 이렇게 했다고 지금껏 구속된 사람을 본 적은 없다. 강력한 처벌이 아닌 강력한 적용만이 관련 법의 취지를 가장 잘 살리는 길 일 것이다.

초기 징후를 보일 때 강력한 처벌과 격리, 구속을 시킨다면 이후에 일어나는 2차적인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제대로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이후의 다른 어떠한 조치들도 의미가 없어지는 상황인 것이다.

지금 우리 응급의료 현장에서 경미한 폭언과 폭력들을 포함하면도 대체 얼마나 어떻게 발생하는 지 아무도 알수 없다. 신고하지 않는 수많은 일들을 더한다면 실로 어마어마한 숫자일 것이다. 우리는 아주 오래 전부터 응급의료 현장의 심층 실태조사와 원인분석이 필요하다 주장해왔다.

정확한 상황 인식과 개별사안의 분석만이 올바른 해결책을 마련하는 데 기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오롯이 홀로 충격을 감수해야 하는 피해 의료진에 대한 대책이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 욕을 먹어도 폭행을 당해도 아무런 조치 없이 다음날 출근해야만 하는 의료진들이 과연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줄 수 있겠는가?

예방 가능한 폭력을 줄이기 위하여 우선순위를 매겨야 한다. 병원의 환경을 안전 디자인으로 변경하고 안전요원을 확보하여 폭력을 줄일 수 있는 확실한 안전판들을 하나 씩 확보해 나가야 한다.

더 이상 공허한 토론과 보여주기 식의 대책으로는 이 문제 해결에 조금도 나아갈 수 없다. 응급의료기관의 폭력은 타인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 살인 미수와 동일하다. 결국 이 모든 책임은 관리당국과 정부에 있고 피해는 의료진과 응급환자들이 받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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