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안 된 의학교육, 80년대 졸업정원제의 경험

창원파티마병원 마상혁 과장
발행날짜: 2024-03-26 05:30:00 수정: 2024-03-26 10:5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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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3월이었다. 예과 2년을 마치고 본과수업을 위하여 건물에 들어가는 순간의 압박감을 잊을 수 없다. 학업에 대한 부담은 상상을 초월하였다. 그런데 3월 첫 강의시간에, 교실에 들어가니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1984년에 입학할 때는 졸업정원 160명, 여기에 졸업정원제로 10%인 16명을 더 선발하여 176명이 입학하였다. 그러나 그전에 졸업정원제로 30% 추가인원을 선발한 상태이었고, 이중 많은 학생들이 유급을 하여, 1986년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본과 1학년 교실은 160명 정원인데 출석번호는 278번까지 있었다.

그러니 오전 9시 강의시작인데 도착은 8시에 했지만 강의실에는 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뒷 자리 구석진 곳에, 교수님 얼굴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곳에 겨우 자리를 잡아서 첫 수업을 받게 되었다. 칠판도 가려서 잘 안보이고 필기도 제대로 못할 상황이었다. 필기를 하지 못하는 온라인 수업과 같은 상황이었다. 맨 뒤에 자리 잡은 동기들은 글자가 보이지 않으니 망원경을 들고 수업을 듣는 말도 안되는 일도 벌어졌다.

당시 대학졸업 정원제는 대학의 정원보다 많은 신입생을 선발하고 초과 인원을 중도에 강제 탈락시켜 졸업 시에 정원을 맞추는 교육정책이었다. 과열 과외와 재수생 문제에 대한 해소 대책으로 1981년 입학생부터 졸업정원제를 전면 시행하였다. 졸업정원제는 대학 여건에 대한 고려 없이 획일적으로 시행되면서 많은 비판이 따랐고, 1987년에 폐지되었다.

한 마디로 준비안 된 밀어 붙이기식 정책이었다. 당연히 교육 환경은 매우 부실하여 일찍 가지 않으면 강의실에 입장이 안되었고, 해부학 실습은 실습용 카데바가 부족하여 겨울방학 때 겨우 할 수 있었다. 그것도 카데바 1구에 10여명이 달라 붙어서 한 기억이 난다. 이후 임상실습은 학생을 교육하는 교수들의 부족으로 전공의가 교육을 담당하는 경우도 있었고, 어떤 경우는 교수님이 시간이 없어서 오전에 잠깐 실습수업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학생 수가 너무 많아서 제대로 된 실습교육을 받았다는 기억을 할 수가 없다. 준비안 된 정책으로 너무나도 가혹한 환경에서 학교를 다녔다. 지금 과거의 악몽이 반복이 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경험하지 못한 국민들은 이해가 안될 것이지만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학교 다닐 때 부족한 임상교육은 전공의 수련을 하면서 많이 보충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로 말도 안되는 환경에서, 살인적인 근무-주당 120시간 이상 근무-하면서도 공부하고 환자들을 돌보면서 현재까지 이르게 되었다. 전문의 시험을 통과는 했지만 환자들은 예외인 경우가 많았고, 학창시절 교수님이 해주신 '환자는 교과서대로 아파주지 않는다'는 말씀을 되새기며 새로운 치료법에 대한 공부는 계속해야 했다.

전문의를 취득한 후 10년 정도 세월이 지나서야 어느 정도 안정감을 가질 수 있었다. 그 동안 시간은 항상 부족하고, 쫓기듯 이 살면서 매일 의사로서 뭔가를 보충하지 않으면 안되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살았다. 의과대학 입학하고, 의사면허 시험을 통과하고, 공부 열심히 해서 전문의를 취득한다고 하여도 이후의 과정은 매우 험난하다. 따라서 양질의 의사를 기대한다면 의과대학에서 교육 환경을 제대로 준비해야 하고, 의사면허증 취득이후에도 지속적인 교육체계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이런 관리는 공무원들이 아닌 전문가들이 해야 한다.

국민들이 생각하는 의과대학을 졸업 후 경제적인 지위가 보장되려면 상상이상의 초인적인 노력이 필요하게 된다. 이런 노력하지 않고 경제적인 부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은 사람을 속이는 방법밖에 없다.

교육은 시설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교육 내용이다. 의과대학 교수가 학생 수를 나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임상교수인 경우 진료를 빼면 가능할 수도 있다. 전문의가 되고 난 뒤 약 10년이 지나야 환자가 시야에 제대로 들어오는데 교수는 이런 과정보다 더 엄격한 과정을 통과해야 하며, 본인도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 지경인데 보건복지부 차관은 의과대학 교수 1000명 증원이라는 이야기를 너무나 쉽게 이야기 한다. 여기에 졸업정원제를 이미 경험하여 충분히 가능하다고 하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다. 그 시대를 경험하지 못한 공무원들의 오만한 판단을 보여주는 것이다.

국민들은 지금 공무원들과 정치인들에게 속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하향평준화를 생각하고, 교육환경도 제대로 준비안 된 상태에서 학생들을 교육하면, 운이 좋아서 의사국가고시는 합격할지 몰라도 국민들은 양질의 진료는 바라지 말아야 한다. 또한 지금 공무원들과 정치인들이 발표하는 정책을 신뢰를 할 수 없다. 이유는 이전에도 여러 번 정책 발표 후 약속을 지키지 않은 바 있으며, 예산확보, 구체적인 실행방안이 없이 제목만 발표되고 있고, 의료정책에 문외한인 공무원들과 정치인들의 책임 없는 결정이 반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인의 독단적인 결정이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소통을 통한 거버넌스를 통한 정책 결정과 책임 있는 수행이 필요하다. 국민들도 선입견을 버리고 한국의 의료문제만 아니라 인구감소, 지방의 소멸, 교육불평등, 지방과 수도권, 도시와 시골의 삶의 인프라의 불평등, 다문화가정의 문제 등의 다가오는 미래를 심각하게 고민을 함께 해야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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