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 의대 본과 2학년 강지민
지난 여름 개봉한 영화 <탈주>에서 남한으로의 탈주를 감행하는 북한군 병사 규남(이제훈 분)은 그를 만류하는 상관 현상(구교환 분)에게 이렇게 말한다.
"실패는 할 수 있지 않갔습니까? 해보고 싶은 걸 하다 실패하고… 죽어도 내가 죽고… 살아도 내가 산다"
쇼펜하우어는 일찍이 "인생은 고통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라고 말하며 고통의 불가피성을 주창한 바 있다. 발생학적으로도 인간은 태어나서 첫 숨을 내쉬는 그 순간부터 고통이 시작된다. 태아는 안온한 모체 속에서 탯줄을 통해 편안하게 산소를 공급받는다.
그러나 출생을 기점으로, 양수로 가득 차 있던 태아의 폐는 양수를 밀어낸 후 허파 표면활성제에 의해 펴지게 되어 산소를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이어 병원균이 가득하고 따가운 외부의 공기를 만나 주체적으로 호흡하기 시작하는데, 첫 숨을 내쉬기까지의 지난한 고통을 방증하는 것이 바로 아기의 첫울음이다.
비단 호흡뿐만이 아니다.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걷는 사람도, 평생토록 한 문제도 틀리지 않는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필연적으로, 실패하고 좌절하며 때로는 방황하며 성장한다. 실패 없는 성공은 존재하지 않기에, 오히려 마음껏 실패할 수 있는 권리는 일종의 특권과도 같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점점 성공만을 종용한다. 21세기 대한민국에는 정해진 삶의 '성공 공식'이 있다. 학생들에게는 남들보다 조금 더 빠르게, 조금 더 높은 수준의 학업적 성취를 이룰 것이 요구되고 이는 곧 SKY로 위시되는 명문대, 혹은 의치한의 특수대학 진학으로 귀결된다.
더 구체적으로는 '특정 학원을 다니며 특정 문제집을 풀어야 목표로 하는 학교에 진학할 수 있다'거나, '명문대 합격을 위해서는 고등학교 입학 전 대입 수준의 영어는 안정적인 1등급이 나와야한다'와 같이 세부적인 마스터플랜이 존재한다. 대학 진학 이후에도 끝나지 않는다.
소위 '9대 스펙'(학벌, 학점, 토익, 어학연수, 자격증, 공모전 입상, 인턴경험, 사회봉사, NCS)이라는 말이 존재하듯 대학 재학 내내 수많은 스펙을 쌓아서 너무 늦지 않은 나이에 졸업하고, 대기업 혹은 공기업에 다니는 번듯한 사무직이 되어야 한다. 결혼과 출산을 비롯한 인생의 여러 과업 역시도 수행해야 하는 시기와 방법이 대략적으로 정해져 있다.
'성공 공식'에 스스로를 맞춰나갈수록, 필연적으로 사람들은 실패를 더욱 두려워하게 되었다. 점점 학부를 4년 만에 졸업하는 학생을 찾아보기 어려워지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일반대학의 학사학위취득 유예생은 2019년 1만3241명에서 겨우 2년만인 2021년도에 1만9016명으로 가파르게 증가하였다.
4년제 대졸자의 평균 졸업 소요 기간도 남녀 모두 증가세에 있다. 학계는 그 이유를 어려워진 취업시장 여건에서 찾고 있다. 우리 사회는 성공 공식에서 벗어난 '공백'에 대해 박하다. 우리의 성공 공식에는 대학 졸업과 취직 사이에 비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 후 곧장 구직이 되지 않을 수도 있고, 단순히 쉬는 시간을 조금 가질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은 졸업 후의 공백이 구직에 악영향을 미친 경험이 있다고 말한다. 그 시간을 보낸 합당한 이유나, 이를 통해 무엇을 얻었는지를 면접 등에서 까다롭게 물어본다는 것이다.
의과대학을 비롯한 전문대학(치과대학, 한의과대학, 약학대학, 수의과대학)의 입시 강세가 수년째 심화해만 가는 상황도 실패를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드러낸다. 이과에는 의치한약수가 있다면, 문과에는 로스쿨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바로 전문직종을 양성한다는 것이다. 멀쩡히 졸업만 하면 라이센스가 주어지며, 어느 정도 안정적인 수입을 달성할 수 있다. 특히 가장 중요한 점은 하방 소득이 높다는 점, 즉 실패할 가능성이 적다는 점이다.
1995년 안철수 현 국회의원이 AhnLab을 창립하며 벤처 붐이 일어났다. 이어 여전히 국내 부동의 1위 포털사이트인 네이버의 소유주 NHN(창립자 이해진), 온라인 게임 '리니지'를 히트시킨 NC소프트(창립자 이택진) 등이 뒤를 이으며 90년대 한국에는 IT 벤처 신화가 펼쳐졌다.
이들 기업은 IMF 사태를 극복하고, 이제는 더 이상 벤처기업이 아닌 국내 IT 시장을 주름잡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새천년이 밝았는데도, 이들을 뒤이을 벤처 신화는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다. 미국의 실리콘밸리에서는 구글의 탄생 이후에도 수많은 벤처기업이 탄생하고 있는 것과는 너무나 다른 상황이다.
물론 미국과 한국의 사례를 완벽히 동일한 시각에서 비교할 수는 없으나, 필자는 한국에서 창업이 상대적으로 고려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로 실패할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를 꼽고 싶다.
대학 진학 중 페이스북을 설립한 마크 저커버그, 대학을 중퇴하고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한 빌 게이츠, 그리고 아예 대학 진학조차도 하지 않은 스티브 잡스의 신화가 2024년 대한민국에서도 가능할까?
이러한 사회 풍조는 단순한 개인의 성장에 영향을 주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실패하지 않을 것을 강요당하며 자란 아이들이 이제 부모가 되어, 바로 그들의 자녀에게도 실패하지 않을 것을 바란다는 점이다. 오히려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이들이 '꽃길'만 걸을 수 있도록, 위험 요소를 제거하려 적극적으로 나선다.
모정이라면 모정이고 부정이라면 부정이겠으나, 안타깝게도 그 병폐가 점점 드러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해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투신 사건으로 인해 초등학교의 민원 폭탄 실태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요즈음의 초등학교 모습은 올해 스물네 살인 필자가 경험했던 학교와 많이 다르다.
'정서적 학대'라는 명목하에 초등학생들은 더 이상 나머지 공부도, 숙제도, 심지어는 칠판에 나가 문제 푸는 것조차 학생의 자신감을 깎는다는 민원이 들어와 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물론, 같은 반 친구들 앞에서 수학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실수가 있었거나 손도 대지 못했다면 마음에 상처를 입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이 기폭제가 되어 수학 공부에 전념하게 될 수도 있으며, 문제를 직접 풀고 설명하는 것은 그 자체로 학생에게 굉장히 훌륭한, 검증된 학습법이다. 실패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실패할 기회를 빼앗아버리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학생이 성장할 기회를 강탈하는, 또 다른 종류의 학대로 기능할 가능성도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기원전 1700년 수메르 점토판에도 '요즘 애들은 이상하다'는 내용이 담겨있듯이 세대 갈등은 인류의 오랜 논쟁거리이며 반복되는 역사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특징적으로, 민원이 영유아를 상대하던 직종에서 초등학생, 이제는 중학생과 고등학생이 주 고객인 직종에서까지 나오고 있다는 점은 단순히 어느 시대에나 있던 갈등으로 치부하고 가벼이 넘겨서는 안 될 것이다. 언젠가는 이 아이들이 우리 사회의 허리를 구성하고, 든든한 대들보로 기능해야 할 것이기 떄문이다.
대한민국 사회는 유달리 패자에게 가혹하다. 한 번 낙오하면 다시는 주류에 편입하기 힘들고, 그 주류도 일관된 성공 공식을 따라가기에 바쁘며 남들보다 조금 더 공식에 부합한 사람이 되고자 경쟁한다. 바람직한 사회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큰 과제 중 하나가 '패자부활이 가능한 사회'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 속 신세계는 약물 '소마'를 통해 모든 구성원의 행복과 안녕을 추구한다. 그 누구도 힘들거나 아프지 않기에, 겉으로 보기에 완벽해 보이는 이 세계에 '야만인'이 들어오며 기존 구성원들과 충돌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야만인'은 고통받지 않는 신세계 속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고통받을 권리를 거세당했음을 지적한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누가 되어야 하는가? 고통은 그저 나쁘기만 하고, 제거되어야 하는 것인가? 점점 고통이 사라지고 있는 우리의 사회는, 과연 '야만인'이 살던 것보다 발전한 모습인가? 혹은 고통받지 않는 길을 위해, 스스로 마땅히 감내해야 할 고통을 타인에게 전가하고, 동시에 이를 자양분 삼아 성장할 기회를 포기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 의문에 답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숙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