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 변호사(법무법인 문장)

최근 대법원이 내린 판결은 약국 개설을 둘러싼 분쟁에서 기존 약국 운영자들의 권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약사법 해석 문제를 넘어, 의료기관 인근에서의 약국 개설이 가지는 사회적·경제적 함의를 다시금 환기시켰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한 지역에서 기존 약국을 운영하던 약사는, 인근에 새로운 약국이 들어서자 해당 등록처분의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핵심 쟁점은 기존 약국 운영자가 '신규 약국 개설등록처분의 취소를 구할 원고적격'이 있는지 여부였다. 1심은 이를 인정했으나, 2심은 원고적격을 부정하며 소를 각하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최종적으로 원심을 파기하고, 원고적격을 인정하며 사건을 환송했다.
대법원은 약사법 제20조 제5항의 입법 취지에 주목했다. 이 조항은 의료기관과 약국의 결탁이나 특정 약국으로의 조제 기회 집중을 막아 약국 운영의 공정성과 다양성을 보장하려는 목적을 가진다. 따라서 인근에 신규 약국이 개설되면 기존 약국은 조제 기회를 상실할 수 있고, 이는 충분히 예측 가능한 손해이므로 원고적격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료기관의 처방약 조제 기회를 공정하게 배분받을 기존 약국개설자의 이익'을 약사법 등 관련 법령에 의하여 보호되는 개별적·직접적·구체적 이익이라고 본 점이 핵심이다. 즉 의약분업제도가 효율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함과 동시에 조제 기회의 공정한 배분을 통하여 의료기관으로부터 독립하여 조제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인근 약국개설자의 경제적 기반을 보호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대법원은 원고적격 판단 시 고려해야 할 요소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거리, 접근성, 약국의 위치와 규모, 운영 형태, 주변 약국의 분포 등이 모두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처럼 종합적·구체적인 검토를 통해서만 원고적격 여부를 공정하게 가릴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이번 판결은 기존 약국 개설자에게도 제3자 원고적격을 폭넓게 인정한 첫 대법원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이는 향후 유사한 분쟁에서 중요한 기준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또한 법원이 경제적 이해관계를 단순한 경쟁의 문제로 치부하지 않고, 법률이 보호하려는 제도의 목적과 공익적 함의를 함께 고려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원고적격이 인정되었다고 해서 곧바로 처분이 위법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급심은 다시 사건을 심리하여 실제로 약사법 위반이 있었는지를 따져야 한다. 결국 이번 판결은 문을 열어둔 것일 뿐, 최종적인 해법은 후속 심리와 입법적 보완에 달려 있다.
의료기관과 약국의 관계는 단순한 시장 경쟁을 넘어 국민 보건과 직결된다. 이번 판례를 계기로 약국 개설 제도의 본래 취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법적·제도적 장치가 정비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