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청소년 건강, 선언이 아닌 예산이 필요하다

경남의사회 마상혁 공공의료위원장
발행날짜: 2025-10-27 05:00:00
  • 경남의사회 마상혁 공공의료위원장

이재명 정부가 '소아청소년 비만 관리'를 국정과제로 제시했지만, 실제 실행력은 찾아볼 수 없다. 2026년 보건복지부 예산안 어디에도 관련 사업은 반영되지 않았고, 청소년 건강검진 예산조차 빠졌다. 구호는 요란했지만, 정책은 비어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소아청소년 비만은 단순한 체중 문제가 아니다. 이는 향후 당뇨병, 고지혈증, 고혈압 등 만성질환의 출발점이며, 20~30대 젊은 연령층에서 이미 그 후폭풍이 나타나고 있다. 청소년기의 건강문제는 곧 미래 의료비 부담으로 직결된다. 지금의 무관심은 10년 후 국민건강보험 재정 파탄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현행 체계를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현 체계는 사실상 기능하지 않는다. 청소년 건강검진은 형식적 절차로만 존재하고, 검진 이후의 관리 시스템은 부재하다. 검진을 통해 위험군이 확인되더라도 추적관리나 생활습관 개선 프로그램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검진은 '결과 통보'로 끝나고, 데이터는 정책 설계에 활용되지 않는다.

문제의 본질은 '데이터 부재'다. 국가 차원에서 소아청소년의 건강지표가 축적·분석되지 않으니, 정책은 감(感)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검진 체계는 단순히 항목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건강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이를 토대로 맞춤형 관리가 가능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체질량지수(BMI), 혈당, 지질검사 같은 기본 지표 외에도, 식습관·운동습관·정신건강 요소를 함께 평가하는 통합형 검진 체계가 필요하다.

그 다음은 관리 시스템이다. 비만이나 대사질환 위험군으로 분류된 청소년은 보건소, 학교, 1차 의료기관이 연계된 관리망 안에서 추적관리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교육부와 보건복지부, 지방자치단체의 협업이 필수적이다. 현 구조에서는 이들 기관이 따로 움직이며, 책임의 경계만 존재한다. 이런 구조에서는 예방의학이 성립할 수 없다.

정책은 결국 예산이다. 정부가 아무리 좋은 계획을 발표해도, 예산이 없다면 정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소아청소년 비만 관리 예산이 빠진 것은 단순한 행정 실수가 아니라,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가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신호다.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이나 노인 돌봄 정책은 논의되지만, 아이들의 건강 문제는 매번 뒤로 밀린다.

윤석열 정부든 이재명 정부든, 아동·청소년 건강에 대한 근본적 관심은 부재하다. 정권은 바뀌어도 무관심은 그대로다. 의료 전문가 단체 또한 이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 소아청소년 비만과 대사질환은 의료계가 나서야 할 공중보건의 핵심 과제임에도, 사회적 발언은 거의 없다. 전문가의 침묵은 결국 정책 공백을 정당화한다.

소아청소년기의 건강은 미래 국가 경쟁력의 기초다. 건강한 청소년이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하고, 그것이 사회의 생산성과 지속가능성을 결정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선언이 아니라 실천이며, 계획이 아니라 예산이다. 건강검진의 체계적 개편, 데이터 기반의 관리,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예산이 없다면, '비만 관리'라는 국정과제는 또 하나의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

국가의 무관심은 결국 국민의 질병으로 되돌아온다. 지금의 방관은 미래의 의료위기다. 소아청소년 건강정책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국가가 아이들의 건강을 지키지 못한다면, 그 어떤 복지정책도 지속될 수 없다.

관련기사

오피니언 기사

댓글

댓글운영규칙
댓글을 입력해 주세요.
더보기
약관을 동의해주세요.
닫기
댓글운영규칙
댓글은 로그인 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으며 전체 아이디가 노출되지 않습니다.
ex) medi****** 아이디 앞 네자리 표기 이외 * 처리
댓글 삭제기준 다음의 경우 사전 통보없이 삭제하고 아이디 이용정지 또는 영구 가입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1. 저작권・인격권 등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
2. 상용프로그램의 등록과 게재, 배포를 안내하는 게시물
3. 타인 또는 제3자의 저작권 및 기타 권리를 침해한 내용을 담은 게시물
4. 욕설 및 비방, 음란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