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공학자들의 교묘한 설계, 이중구속

안양수 병의협·미의포 고문
발행날짜: 2026-02-05 05:10:00
  • 안양수 대한병원의사협의회 고문
    미래의료포럼 정책고문

1. 이중구속(Double Bind)과 조현병

원래 '이중구속'은 정신의학에서 조현병(정신분열증)의 발생 원인을 설명할 때 쓰이는 이론이다.

부모나 권위자가 자녀에게 상충하는 두 가지 메시지를 동시에 보내서, 아이가 어느 쪽을 선택해도 처벌을 피할 수 없게 만드는 치명적인 심리적 덫을 말한다. 이 모순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아이는 결국 논리적 사고 체계가 붕괴되고 정신적으로 파괴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대한민국 정책공학자들은 이 병리적 기제를 의료 시스템 설계의 핵심 원리로 사용하고 있다.

2. 정책공학자의 시각: 시스템을 유지하는 '정교한 덫'

정책공학자들에게 의사는 '치료하는 지성'이 아니라 '관리해야 할 비용'이다. 그들은 시스템의 효율적 통제를 위해 다음과 같은 이중구속의 장치를 곳곳에 배치했다.

장치 1: 사법적 '최선'과 행정적 '최저'의 충돌

설계: 법원 판결은 '의학적 교과서'를 기준으로 의사에게 무한 책임을 묻게 하고, 심평원 심사는 '재정 지침'을 기준으로 최저 비용을 강요한다.

이유: 어느 장단에 춤을 춰도 의사를 '잠재적 범죄자' 혹은 '부당 수익자'의 프레임에 가둘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불확실성이야말로 의사를 위축시키고 국가의 통제권을 강화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장치 2: 룰을 감춘 깜깜이 심사 (Black-box)

설계: 심사 기준과 전산 필터링 로직을 '영업비밀'이라며 감춘다.

이유: 룰이 투명하면 의사들이 그에 맞춰 진료를 최적화(Optimization)하고 이는 곧 지출 증가로 이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의사가 삭감이 두려워 스스로 몸을 사리게 만드는 '공포 마케팅'이 그들의 설계 목적이다.

3. 전문가의 지성을 말살하는 '행정적 조현병'

이 시스템은 참담하다. 이것은 단순한 행정 편의를 넘어선, 전문가 집단에 대한 '심리적 거세'다.

정책공학자들은 의사가 개별 환자의 맥락을 읽는 전문적 지성을 발휘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저 삭감이라는 전기 충격에 반응하는 '파블로프의 개'이자, 주는 먹이(수가)와 가해지는 벌(삭감)에 길들여진 앵무새를 원할 뿐이다.

언젠가 공단 직원이 내뱉은 "환자가 원하면 놔주고, 청구하고, 삭감 당하세요. 억울하면 법을 바꾸든가요"라는 말은 이 설계의 오만함과 잔인함을 증명한다.

바꿀 수 없는 법을 핑계 삼아 의사의 영혼을 갈아 넣는 이 조현병적 환경에서, 의사는 소신을 삭감당하고 환자의 건강권은 숫자의 함정에 빠진다.

결국 이것은 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정교한 폭력이며, 전문가를 지배하려는 저급한 갑질일 뿐이다.

이중구속의 덫을 걷어내지 않는 한, 대한민국 의료에 '최선의 진료'란 허구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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