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문호 정형외과 전문의 · 칼럼위원

[메디칼타임즈=박상준 기자]정부가 탈모 치료의 건강보험 적용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2026년 하반기 중점 추진과제에 탈모 치료 건강보험 급여 확대를 포함했고, 국민 200명이 참여하는 공론화 절차와 토론회를 통해 사회적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도 건강보험 적용 방식과 재정 소요에 대한 실무 검토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탈모가 단순한 외모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특히 청년층에게 탈모는 심리적 위축, 대인관계의 부담, 사회생활의 자신감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원형탈모처럼 질병성이 명확한 경우라면 치료의 필요성도 분명하다. 의료는 몸만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질을 회복하는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건강보험은 무한한 재원이 아니다. 한정된 보험 재정을 어디에 먼저 사용할 것인가, 어떤 질환을 우선 보장할 것인가, 국민 전체가 납부한 보험료를 어떤 기준으로 배분할 것인가가 핵심이다. 탈모 치료가 삶의 질이라는 이름으로 건강보험 논의의 전면에 등장한다면, 우리는 같은 기준으로 다른 질환들도 바라봐야 한다.
허리 통증으로 밤잠을 설치는 환자가 있다. 무릎 통증으로 계단을 오르내리지 못하는 노인이 있다. 어깨 통증으로 옷을 입고 벗는 일상동작조차 어려운 노동자가 있다. 목 통증과 두통으로 하루 종일 진통제를 먹으며 버티는 직장인이 있다. 이들에게 근골격계 통증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다. 일할 권리, 이동할 권리, 잠잘 권리, 노후의 독립성을 좌우하는 기능장애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도수치료는 2026년 7월부터 관리급여로 전환되며 회당 4만3850원대 수가, 본인부담률 95%, 주 2회 이내, 연 15회 제한이라는 기준이 확정됐다. 수술이나 골절 후 관절구축 등 뚜렷한 의학적 사유가 있는 경우에도 연 최대 24회까지로 제한된다.
더 중요한 것은 연간 인정 횟수를 초과한 질환 치료 목적의 도수치료는 비급여로도 청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즉 환자가 자신의 비용으로라도 통증과 기능장애 치료를 이어가고 싶어도 제도적으로 막히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쯤 되면 의료현장은 묻지 않을 수 없다.
탈모는 건강보험이고, 근골격계 통증은 과잉진료인가. 머리카락의 삶의 질은 보장하면서, 걷고 일하고 잠자는 기능의 회복은 왜 규제의 대상인가. 청년의 탈모 스트레스는 사회적 고통이고, 노인의 무릎 통증과 중년 노동자의 허리 통증은 단순한 소비인가.
이 질문은 탈모 치료를 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건강보험의 원칙을 바로 세우자는 것이다. 건강보험이 삶의 질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확장될 수 있다면, 그 첫 번째 기준은 의학적 필요도와 기능장애의 정도여야 한다. 일상생활 수행능력을 떨어뜨리고, 노동능력을 상실하게 만들고, 수술과 장애와 요양으로 이어질 수 있는 질환부터 우선순위를 가져야 한다.
근골격계 질환은 대한민국 의료에서 가장 흔하면서도 가장 과소평가되는 영역이다. 국민 상당수가 허리, 목, 어깨, 무릎, 손목, 발목 통증을 경험한다.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퇴행성 관절질환, 척추질환, 근감소증, 낙상 후 통증과 기능저하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근골격계 진료는 단순한 통증 완화가 아니라 고령사회에서 노인의 독립생활을 유지하고, 노동자의 생산성을 보존하며, 불필요한 수술과 장기요양을 줄이는 사회적 투자다.
그럼에도 정책은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근골격계 초음파와 같은 진단 인프라는 충분히 보장되지 않은 채, 치료 영역은 실손보험 손해율과 과잉진료 프레임 속에서 먼저 규제된다. 통증의 원인을 정확히 진단할 수 있는 도구는 제한되고, 기능 회복을 위한 치료는 횟수와 가격으로 묶인다. 진단은 늦고, 치료는 막히고, 환자는 결국 더 큰 비용을 부담하는 구조로 밀려난다.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도 가볍게 볼 수 없다. 보도에 따르면 국회예산정책처는 의료개혁 1·2차 실행방안을 반영할 경우 향후 10년간 건강보험 재정 누적 적자가 27조8000억원 늘고, 누적 준비금 소진 시점도 2029년으로 앞당겨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급여 항목을 확대하려면 더 엄격한 우선순위 논의가 필요하다.
건강보험은 정치적 선심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인기 있는 질환, 표가 되는 세대, 여론의 반응이 빠른 항목부터 급여화하는 방식은 건강보험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건강보험은 의학적 필요도, 질병 부담, 기능장애, 재정 지속가능성, 치료 효과성을 기준으로 움직여야 한다.
탈모 급여화 논의가 필요하다면 최소한 세 가지 원칙이 전제되어야 한다.
첫째, 질병성 탈모와 미용·노화성 탈모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둘째, 중증질환·필수의료·기능장애 치료보다 앞설 수 없다는 우선순위 원칙을 세워야 한다.
셋째, 근골격계 통증과 기능장애 치료도 같은 삶의 질 기준에서 재평가해야 한다.
청년의 머리카락이 중요하다면, 노인의 무릎도 중요하다.
외모의 자신감이 중요하다면, 걷고 일하고 잠자는 기능도 중요하다.
탈모의 사회적 고통을 인정한다면, 근골격계 통증의 사회경제적 손실도 인정해야 한다.
정형외과 진료실에는 오늘도 머리카락보다 먼저 봐야 할 환자들이 온다. 허리를 붙잡고 들어오는 환자, 무릎을 절며 들어오는 환자, 어깨를 들지 못해 보호자의 도움을 받는 환자들이다. 이들은 미용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걷고, 다시 일하고, 다시 잠들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건강보험이 국민의 삶의 질을 말하려면, 그 삶의 질은 머리카락에서 시작해서는 안 된다. 국민이 서고, 걷고, 일하고, 살아가는 기능에서 시작해야 한다.
탈모는 건강보험이고, 근골격계 통증은 과잉진료인가.
이 질문에 정부가 답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