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준 변호사(액시스)

[메디칼타임즈=오승준 변호사]최근 우리 법무법인은 사소한 의료분쟁을 빌미로 의료진을 압박하고, 병원 측 과실이 명확하지 않음에도 시위, 온라인 게시글, 폭언 등을 통해 합의금을 요구한 사건을 방어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환자 측은 진료 예약이 원활하지 않다는 사정까지 들어 진료거부 고소를 문제 삼았다. 의료법상 진료거부 금지 규정이 의료기관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된 전형적인 사례다.
이 정도까지 극단적이지 않더라도, 개원한 의사라면 누구나 한 번쯤 비슷한 상황을 마주할 수 있다. 진료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폭언을 쏟아내는 환자, 지난 진료 결과에 불만을 품고 허위 민원을 반복하는 보호자. 문제는 이런 환자에 대해서도 의사가 진료를 거부하거나 중단하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현행 의료법 제15조는 의료인이 진료 요청을 받으면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고, 의료인에게는 1개월 면허정지 행정처분까지 예정되어 있다.
문제는 정작 '정당한 사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법이 자세히 설명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응급의료 영역에서는 2024년 보건복지부 지침을 통해 폭행, 협박, 장비 손상, 인력 부족 등이 진료거부의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있는 경우로 예시되었다. 그러나 일반 외래진료나 선택적 시술 영역에서는 아직 판례와 행정해석이 충분히 정리되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의료법상 진료거부가 가능한 정당한 사유
그렇다고 해서 의료인이 언제나 진료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의료법 제15조에 따르면 진료거부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으면서도,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진료를 거부하거나 중단할 수 있다. 판례와 행정해석을 종합하면, 정당한 사유로 인정되거나 적어도 인정될 수 있는 상황은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가장 명확한 경우는 병원 내 폭행, 협박, 기물손상 등으로 인해 정상적인 의료행위 자체가 불가능해진 경우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의료인의 안전뿐만 아니라 다른 환자의 진료권, 의료기관의 정상적인 운영도 함께 침해된다. CCTV 영상, 경찰 신고 기록, 직원 진술서 등 객관적인 자료가 갖추어져 있다면, 진료를 거부하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해당 의료기관의 인력, 시설, 장비만으로는 적절한 진료 제공이 객관적으로 불가능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의료기관은 자신이 보유한 인력과 장비의 범위 안에서 진료를 제공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해당 의료기관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중증도, 전문성, 장비 필요성이 있는 경우에는 다른 의료기관으로 전원하거나 의뢰하는 것이 오히려 환자의 안전을 위한 조치가 될 수 있다. 응급의료법 제7조 역시 비응급환자를 다른 기관으로 의뢰하거나 이송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
대법원 2009다17417 전원합의체 판결은 다소 다른 각도에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의료인은 환자의 상태, 당시의 의료수준, 자신의 지식과 경험에 따라 적절한 진료방법을 선택할 상당한 재량을 가진다. 환자가 특정 치료방법만을 일방적으로 요구하거나 강요할 수는 없다. 이 법리는 환자가 의학적으로 부적합한 특정 시술이나 방식만을 고집하는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다. 의사가 해당 시술이 환자에게 유익하지 않거나 부적절하다고 판단한다면, 다른 치료방법을 제안하거나 시술 자체를 시행하지 않을 수 있다는 해석의 근거가 된다.
2023년 비대면진료 지침도 같은 맥락에 있다. 의사가 비대면진료만으로는 적절한 진료가 어렵거나 의학적으로 부적합하다고 판단하여 대면진료를 요구하는 것은 의료법상 진료거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명시하였다. 결국 진료거부의 문제는 단순히 환자가 요구했는지 여부가 아니라, 의료인이 의학적 판단에 따라 적절한 진료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지의 문제와 연결된다.
과거의 모욕죄, 명예훼손죄, 폭행죄, 업무방해죄 등으로 인해 의료인의 판단 하에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다고 보는 경우에 대해서는 조금 더 유연한 보건복지부 유권해석도 존재한다. 환자로 인해 위해 발생 우려가 있고, 당장 진료하지 않더라도 환자에게 중대한 위해가 발생하지 않으며, 다른 의료기관을 안내하는 경우라면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있다는 취지다.
법이 침묵하는 영역 — '진상 환자'와 미용시술
문제는 의사에 대한 보호가 취약한 아래 두 가지 케이스가 오히려 실무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점이다.
첫째는 반복적 허위민원과 관계파탄 환자다. 소위 진상환자라 할 수 있다. 일부 환자들은 의료인이 진료거부 금지 규정 때문에 쉽게 진료를 거절하지 못한다는 점을 사실상 약점으로 삼아, 민원 제기, 고소 예고, 온라인 게시글 작성 등을 반복하며 의료기관을 압박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은 폭행이나 협박처럼 형사법적으로 명확하게 포착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결국 의료기관은 분쟁 위험이 계속 커지고 있음을 알면서도, 뚜렷한 법적 근거 없이 사실상 '버티는 것' 외에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서두에서 소개한 사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범죄 전과도 많고 불량한 행동을 일삼는 환자 측이 병원 앞 시위를 이어가고, 진료 과정에서도 의료진을 지속적으로 압박한 사안이었다. 병원 측 시술에 명확한 과실이 확인된 것도 아니고, 의료기관이 추가로 취할 수 있는 조치도 마땅치 않았다. 그럼에도 환자 측은 계속 내원하며 진료를 요구했고, 진료 예약이 원활하지 않다는 사정까지 들어 진료거부 문제를 제기하였다.
물론 이러한 환자에 대한 진료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고소를 당하더라도, 수사 과정이나 재판 절차를 통해 합리적인 무혐의 처분 또는 무죄 판단을 이끌어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법령이나 고시 차원의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다는 데 있다. 일단 고소가 제기되면 의료기관과 의료인은 복잡한 법률적 방어 절차에 들어갈 수밖에 없고,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부담을 지게 된다.
둘째는 치료 목적 없는 미용시술이다. 보톡스, 필러, 레이저 토닝, 리프팅과 같은 외모 개선 중심의 시술은 분명 의료행위에 해당한다. 다만 전통적인 의미의 치료 목적성과 긴급성은 상대적으로 약하고, 환자의 주관적 심미 만족과 강한 영리성이 결합된 특수한 영역이기도 하다. 환자가 의학적 설명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기대하는 결과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거나, 부작용 위험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특정 시술만을 요구한다면, 시술을 진행하는 것 자체가 분쟁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현행 의료법은 이러한 미용시술 역시 일률적인 진료거부 금지 규정의 적용대상에 그대로 두고 있다. 환자의 기대가 비현실적이거나, 의료진의 설명을 받아들이지 않는 환자에게 시술을 하지 않으려는 경우에도 의료인은 여전히 진료거부 금지 조항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진료거부 해외사례: 응급진료와 미용시술은 다르게 본다
외국의 법제와 직업윤리 규범을 살펴보면, 세부적인 규율 방식은 나라마다 다르지만 공통된 방향은 비교적 분명하다. 응급진료와 필수진료는 최대한 보장하되, 비응급·비필수·비유익한 의료서비스에 대해서는 의료인의 제한적 거부권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유사하게 의사의 응소의무를 두고 있지만, 비응급 상황에서는 환자의 상태, 의료기관의 전문성, 진료능력, 대체 의료기관의 존재, 환자와 의료기관 사이의 신뢰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수 있다고 본다.
미국과 프랑스의 태도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 의료윤리는 응급상황에서의 진료 의무를 강조하면서도, 의학적 적응증이 없거나 임상적 이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처치까지 의사가 제공할 의무는 없다고 본다. 프랑스 역시 응급상황과 인도적 의무에 반하지 않는 범위에서는 의사의 진료거부를 인정하되, 환자에게 이를 알리고 필요한 경우 진료 계속을 위한 조치를 취하도록 한다.
진료거부 입법 개선 방향: 정당한 사유 명문화와 미용시술 예외
진료거부 금지 원칙은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이지, 의료인에게 위험하거나 부적절한 진료를 강제하기 위한 제도는 아니다. 특히 미용시술처럼 치료 목적성과 긴급성이 약하고 환자의 주관적 만족이 강하게 작용하는 영역에서는, 의사가 시술을 거절하는 것이 단순한 진료거부가 아니라 환자 안전과 의학적 적정성을 위한 판단일 수 있다.
결국 현행 제도의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개선이 되어야 한다.
첫째, 의료법에 진료거부의 정당한 사유를 예시하는 조항을 명문화해야 한다. 폭행, 협박, 반복적 허위민원, 스토킹성 접근, 성희롱으로 인한 위해 우려, 시설·인력의 객관적 한계, 의학적 비적응증, 신뢰관계의 중대한 파탄 등을 조문에 예시하는 것만으로도 현장 의료인의 예측가능성은 크게 높아질 수 있다.
둘째, 치료 목적 없는 미용시술에 대해서는 한정적 예외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 외상, 질환, 재건, 기능회복 목적의 시술은 당연히 진료거부 금지 원칙의 보호범위에 남겨두어야 하겠으나, 외모 개선만을 목적으로 하는 자유진료 미용시술에 대해서는, 의사가 의학적으로 부적절하다고 판단할 경우 시술을 거절할 수 있는 명시적 근거를 둘 필요가 있다.
셋째, 절차적 안전장치를 함께 두어야 한다. 진료를 거부하거나 진료관계를 종료할 때에는 그 사유를 설명하고, 가능한 범위에서 다른 의료기관을 안내하며, 응급상황이나 중대한 악화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최소한의 안정화 조치를 취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요건을 이행한 경우에는 의료법 제15조 위반으로 보지 않는다는 규정을 함께 둔다면, 진료거부의 자의적 남용은 막으면서도 의료인의 정당한 방어권은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