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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Language)

묻지 않으면 말하지 않는다

가톨릭 관동의대 1학년 배지섭
발행날짜: 2026-08-03 05:00:00
  • 가톨릭관동대학교 본과 2학년 배지섭

8분이었다. 몇 주 전 자교 포트폴리오 경진대회의 발표 시간. 방학 동안 나간 대회들과 지난 몇 년간의 활동을 슬라이드에 얹어보니 도저히 8분에 들어가지 않았다. 처음에는 분량 문제라고 생각했다. 문장을 다듬고 슬라이드를 합쳤다. 그래도 넘쳤다.

그제야 알았다. 나열해서는 8분이 아니라 80분을 줘도 안 되는 것이었다. 무엇을 남길지 정하려면 먼저 "이것들을 관통하는 게 무엇인가"에 답해야 했는데, 나는 그 질문에 바로 답하지 못했다. 발표 준비를 하다 말고 며칠을 그 질문에 붙들려 있었다.

자유를 찾겠다며, 또 심사받는 곳으로 갔다

이번 방학에 하고 싶었던 건 분명했다.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듯, 나는 내 언어가 의대 밖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이번 목표는 하나였다. 의료적 타당성 말고 다른 언어로도 내 생각을 끝까지 설명해내는 것. 팀 안에서 "그건 의학적으로 맞습니다"만 말하고 물러나는 사람이 되지 않는 것.

그래서 고른 것이 외부 대회였다. 해커톤 두 번, 그리고 연구 아이디어를 사업화하는 챌린지. 신청서를 넣을 때는 스스로 꽤 능동적이라고 여겼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고, 학점도 나오지 않고, 오히려 시험 공부 시간을 깎아먹는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이상하다. 나는 왜 하필 '대회'를 골랐을까. 대회에는 마감이 있고, 심사위원이 있고, 등수가 있다. 정해진 커리큘럼에서 벗어나겠다고 하면서 내가 고른 것은 또 하나의 평가받는 구조였다. 솔직히 말하면, 마감이 없었다면 나는 이번 여름에 아무것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신청서를 다 써놓고도 며칠을 미뤘다. 시험 일정 때문도, 학점 때문도 아니었다. 지난번처럼 개발 이야기가 시작되면 또 고개만 끄덕이고 있을 것 같아서였다. 코드를 짤 줄 모르는 내가 팀에 들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여전히 잘 그려지지 않았다.

막상 팀을 꾸리고 보니 답은 어렵지 않게 나왔다. 개발은 팀원들이 나보다 훨씬 잘했다. 대신 왜 이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를 정하고 그것을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하는 일은 내가 잘하는 것이었다. 두 해커톤에서 팀 대표를 맡은 건 그래서였다. 앞에 서면 모르는 걸 감출 필요가 없어진다. 모르는 부분을 팀원들에게 묻고 정리하며 중심을 잡는 것이 대표의 역할이니까.

세 개의 발표 대본이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포트폴리오 발표 자료를 만들며 세 대회의 대본을 한 화면에 띄워놓고 있었다. 그러다 한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CODE:MEDI라는 해커톤에서 만든 것은 CPX 연습용 AI 표준화환자였다. 개발하면서 가장 신경 쓴 건 기능이 아니라 원칙 하나였다. 학생이 묻지 않은 정보는 환자가 먼저 말하지 않는다. 시중의 다른 서비스들은 학생이 가만히 있어도 과거력과 약물력을 알아서 알려줬는데, 우리는 그걸 결함으로 봤다.

능동적으로 묻는 훈련을 시켜야 할 도구가 묻기 전에 답을 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채점도 점수만 주지 않고 "여행력을 확인하지 않아 감염성 발열의 감별 단서가 부족했다"는 식으로, 무엇을 왜 놓쳤는지를 학생이 실제로 한 말과 함께 돌려주게 만들었다.

RISE 해커톤에서 만든 CareNest는 새벽에 아이가 열이 나는데 병원에 가야 할지 판단하지 못하는 양육자 및 아이의 성장·발달 체크를 어려워하는 돌봄취약 계층을 위한 것이었다. 여기서도 우리는 선을 하나 그었다. 진단하지 않는다. 대신 판단을 곁에서 돕는다. 답을 대신 내려주는 서비스는 만들지 않기로 했다.

기술사업화 챌린지에서 준비 중인 '늘봄'은 치매 전단계의 인지 변화를 조기에 포착하는 플랫폼이다. 핵심 설계는 이것이었다. 남들의 평균과 비교하지 않는다. 그 사람의 평소와 비교한다. 기존 선별검사가 한 시점의 단면을 찍는다면, 우리는 개인의 기준선 대비 변화의 궤적을 본다.

셋을 나란히 놓고서야 보였다. 세 번 다 나는 결과를 판정하는 장치를 만들지 않았다. 과정을 드러내는 장치를 만들고 있었다.

내가 만든 것은, 내가 받지 못한 교육이었다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CPX 에이전트 기획서에 내가 쓴 문장 중에 이런 게 있다. 학생은 몇 점을 받았는지는 알아도 무엇을 왜 놓쳤는지는 끝내 모른 채 다음 연습으로 넘어간다고. 발표를 준비하며 그 문장을 다시 읽는데, 문득 이게 CPX 얘기가 아니라 내 얘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과에 들어와 나는 수십 번의 시험을 봤다. 점수는 매번 나왔다. 그런데 내가 무엇을 왜 틀렸는지 앉아서 확인한 적은 거의 없다. 시험이 끝나면 다음 과목이 시작됐고, 틀린 문제를 붙들고 있을 시간에 다음 과목의 진도를 나가는 편이 합리적이었다.

기존 서비스가 학생이 묻지 않은 것까지 먼저 알려주는 걸 우리는 결함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강의실에서 나는 늘 묻기 전에 답을 받는 쪽이었다. 무엇이 중요한지는 강의에서 짚어주고, 어디가 나오는지는 구독한 AI가 정리해주고, 학생은 그 안에서 외운다. 능동적으로 묻는 훈련을 받은 기억이 없다. 그러면서 나는 능동 문진을 훈련시키는 도구를 만들고 있었다.

세 번 연속으로 같은 형태의 것을 만든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받지 못한 교육의 모양을, 도구를 빌려 간접적으로 반복해서 그리고 있었다. 그걸 알아차리는 데 세 번이 걸렸고, 발표 시간 8분에 쫓기지 않았다면 그마저도 몰랐을 것이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의지가 아니라 구조였다

여기서 한 가지를 더 짚고 가야 한다.

세 개 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보자고 만든 것들이다. 그런데 정작 그 여름의 나를 움직인 것은 마감과 심사였다. 마감이 없었다면 시작하지 않았고, 심사가 없었다면 끝까지 다듬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에는 이것이 모순처럼 보였다. 지금은 오히려 중요한 관찰이었다고 본다.

사람은 의지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구조가 있어야 움직인다. 나는 그 구조를 학교 밖에서 스스로 찾아 나섰기 때문에 무언가를 만들 수 있었다. 그렇다면 물어야 할 질문은 "왜 학생들은 능동적이지 않은가"가 아니다. "지금 학생을 움직이는 구조는 무엇을 남기는가"여야 한다.

지금의 구조가 남기는 것은 대체로 결과다. 점수, 등수, 이수 여부. 과정은 남지 않는다. 내가 무엇을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는 시험이 끝나는 순간 함께 사라진다. 세 번의 대회에서 내가 반복해 만든 것이 하필 그 사라지는 부분을 붙잡아두는 장치였다. 그 반복에는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지난 글에서 내가 놓친 절반

지난번 이 지면에서 나는 학생들이 외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그 경험을 학점으로 인정하자고 제안했다. 지금도 그 방향이 틀렸다고 보지 않는다. 다만 이번 여름을 지나며 그것이 절반짜리 제안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학점은 참여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참여가 곧 성찰은 아니다. 학점이 붙는 순간 그것은 이수해야 할 항목이 되고, 학생은 다시 결과를 향해 달린다. 내가 대회를 향해 달렸듯이. 참여를 만드는 장치와 과정을 남기는 장치는 같은 것이 아니며, 지난 글의 나는 앞의 절반만 이야기했다.

나머지 절반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생이 무엇을 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가 기록으로 남고, 무엇보다 본인이 그것을 다시 볼 수 있어야 한다. 앞서 말한 CPX 에이전트에는 학생이 손소독을 빠뜨리거나 진찰 순서를 어기면 그 위반이 타임라인에 그대로 남는 기능이 있다. 점수를 깎으려고 만든 장치가 아니었다. 자기가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를 눈으로 보게 하려고 만든 것이다. 나 역시 세 개의 대본을 나란히 놓고 나서야 내가 무엇을 반복해왔는지 알았다.

그래서 지금부터 풀어야 할 것들
방향은 잡혔지만, 그대로 두면 작동하지 않을 지점들이 보인다. 세 가지다.

첫째, 기록이 또 하나의 평가가 되는 순간 이 구조는 무너진다. 성찰일지를 제출물로 만들면 학생은 채점자가 원할 법한 문장을 쓴다. 나라도 그렇게 쓸 것이다. 그래서 제출하는 기록과 본인만 보는 기록을 처음부터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평가에 쓰지 않겠다는 약속이 실제로 지켜지는지가 이 방식의 성패를 가른다.

둘째, 과정을 되짚어주는 일에는 사람이 많이 든다. 교수 한 명이 학생 100명의 문진 과정을 일일이 돌려주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내가 AI 쪽으로 간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이 반드시 해야 하는 판단과 기계가 대신할 수 있는 반복을 나누는 일. 다만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것은, 우리가 만든 도구가 답의 전부가 아니라 한 조각이라는 점이다. 기계는 학생이 무엇을 묻지 않았는지 알려줄 수 있다. 그러나 왜 그 자리에서 묻지 못했는지는 사람만이 되물을 수 있다.

셋째, 나는 아직 학생이고 현장의 제약을 충분히 알지 못한다. 학사 일정, 인증 기준, 교원의 부담, 예산. 밖에서 보면 간단해 보이는 제안이 안에서는 왜 어려운지를 나는 아직 다 듣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둘이다. 하나는 여러 학교의 사정을 직접 듣는 자리에 계속 서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만든 것을 실제 교육 현장에서 작은 규모로라도 돌려보며 결과를 남기는 것이다. 주장으로 설득할 생각은 없다. 해보고 남은 기록으로 이야기하고 싶다.

마치며

지난 글에서 나는 의대생의 교육에 관여하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썼다. 이번 여름에 알게 된 것은, 내가 그리고 싶은 교육의 모양이 이미 내가 만든 것들 안에 녹아 들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세 번을 만들고 나서야 그것을 알아봤다.

내가 만든 모의환자는 학생이 묻지 않으면 말해주지 않는다. 그렇게 설계한 이유는 분명하다. 답을 먼저 주는 교육은 편하지만, 묻는 법을 남기지 못한다. 나는 그 원칙을 도구 안에만 두고 싶지 않다. 앞으로 하려는 일은 묻지 않으면 말해주지 않는 자리를 학생 곁에 만들어두고, 학생이 물었을 때 그 과정이 사라지지 않고 남게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물어야 할 사람은 나다. 현장에 계신 분들에게 무엇이 왜 어려운지 묻는 일부터 시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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