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 영입 갈등 등 불안감 팽배...정부 "대책 없다"
|특별기획|대형병원 암전쟁, 약인가 독인가"전문인력 확보" vs "키워 써라"
국내 대형병원들이 잇따라 암센터 건립에 나서고 있다. 여기에다 국립대병원들도 지역암센터를 속속 개원하면서 암 경쟁력 강화론과 병원 과잉공급과 중대형병원 경쟁력 하락으로 인한 위기론이 맞서고 있는 실정이다. 대형병원의 암센터 확충과 문제점, 공존 대안은 없는가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대형병원 암전쟁, 그들만의 잔치
2.떨고 있는 중대형병원과 암전문의
3.의료체계 정상화, 상생의 길은 있다
대형병원과 지방 국립대병원의 암센터 건립 전쟁이 본격화되자 이들 병원을 제외한 대학병원들은 우려와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국립암센터가 설립되기 이전 원자력의학원은 암전문병원으로 명성을 날렸지만 이후 삼성서울병원과 서울아산병원 등 대형병원까지 가세하면서 ‘정체성’ 위기에 직면했다.
무엇보다 원자력의학원은 이들 병원에게 수십년간 자리를 지키던 암전문의들을 빼앗긴(?) 가슴 아픈 기억이 채 가시지 않아 제2의 ‘영입 태풍’이 강타하지 않을까 걱정이 적지 않다.
원자력의학원의 의사 이직률은 89년 3%, 94년 6%, 2000년 10%를 기록했는데 이는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국립암센터가 개원한 시점과 일치한다.
이들 병원이 대대적인 암전문의 영입전에 나서면서 원자력의학원은 인재를 내줄 수밖에 없었고, 또다시 대형병원 암센터 개원 시점이 점점 다가오면서 집안단속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원자력의학원이 지난해 비전선포식을 연 것도 암전문의들의 이탈을 두고 보진 않겠다는 의지도 내포된 것으로 보인다.
원자력의학원 고위관계자는 “암센터를 만든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게 아니라 중요한 것은 암전문가를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렸다”면서 “재벌병원들은 전문인력을 영입해 만들었는데 이게 문제”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교육과 인력 양성에 투자하지 않고, 다른 병원의 인력을 무차별 빼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고, 자체 육성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그러나 여러가지 여건상 전문의료인력의 대형병원 선호현상은 현재진행형이다.
삼성서울병원이 지난 8월 암센터 전문의를 모집하자 60여명이 원서를 냈고, 이중 12명을 최종 선발, 내년 상반기 해외연수를 보낼 예정이다.
삼성서울병원 암센터 관계자는 “세계 수준의 암전문의를 확보하기 위해 주력하고 있다”며 “국내외를 망론하고 우수의료진 영입을 추진해 나갈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우수 의료진 확보가 삼성서울병원만의 관심사가 아니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어 앞으로 암전문의 확보 경쟁과 이를 사수하려는 측의 신경전이 불가피하다.
일부 대학병원 경쟁력 상실 우려
대형병원들이 암센터를 건립하고 나면 서울의 몇몇 대학병원들은 전공의 수련에 차질을 빚거나 아예 경쟁력을 상실하게 될 것이란 예상도 내놓고 있다.
상계백병원의 한 교수는 “병상 과잉공급 경쟁이 심화되면 시장경제원리에 따라 대형병원에 환자가 더 집중될 것”이라면서 “이렇게 되면 상당수 대학병원들은 암 수술을 하지 못하고 맹장수술만 하거나 최악의 경우 도태되는 상황도 올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지방 사립대병원의 걱정은 이보다 더하다. 서울대병원에 따르면 KTX가 개통된 이후 매일 대구에서 암 외래치료를 받기 위해 상경하는 환자도 있을 정도로 교통여건의 개선은 환자의 서울 집중현상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여기에다 서울 대형병원에 이어 지방 국립대병원까지 암센터를 개원하면서 지방 사립대병원들의 입지는 그야말로 사면초가 상태다.
있으나마나 한 법, 밀림의 법칙만 작동
일부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의료전달체계가 제 기능을 상실한 상황에서 병원 대형화가 어떤 문제를 촉발할지 주목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암센터 허대석 소장은 “환자들은 최선의 치료를 원하고, 보장성이 높아진데다 교통수단이 발달해 대형병원으로 몰리고 있지만 1,2차병원들은 환자가 없어 비만이나 미용 등에 눈을 돌리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허 소장은 “연간 국내 암환자가 11만명인데 대형병원 암센터가 증축되면 빅5에서 다 소화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3시간 대기, 5분진료가 심화돼 의료의 질은 떨어지게 된다”면서 “인위적인 환자 편중은 위험하며, 거주지 중심의 1,2차병원에서 환자를 케어할 수 있는 연계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국내 과잉공급상태인 급성기병상 증설을 억제하기 위해 재정건전화특별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복지부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급성기 병상, 무엇보다 서울지역이 계속 늘고 있어 우려되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현행법으로 병상을 늘리는 것을 규제할 수단이 없다”고 털어놨다.
그렇다고 암센터 건립에 나선 대형병원만 탓할 수도 없다.
절박한 환자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유명 병원과 전문의로부터 치료를 받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또한 의료시장 개방과 경제자유구역내 외국병원 설립 등 의료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병원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일 뿐만 아니라 저수가로 인한 병원 경영여건의 악화를 정면 돌파하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대형병원 암센터 소장은 “암센터 대형화가 병원간 격차를 심화시키고, 부작용을 일으킬 소지가 있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항변했다.
이에 따라 의료전달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국내 여건상 대형병원의 암센터 증축경쟁은 밀림의 제왕이 뽑힐 때까지 시장원리(?)에 내맡겨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