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과시절 첫 경험, '땡시험'을 기억하십니까

이창진
발행날짜: 2007-02-07 06:52:22
  • 의대생의 최대 특권 '해부실습'...긴장감서 경이감으로

<특별기획>의사에게 해부학을 질문한다

어느해보다 따뜻한 올 겨울. 달콤한 동면기에 젖어있던 의대생들이 3월 개강의 시작종을 준비하며 기지개를 펴고 있다. 특히 예과를 마친 학생들은(의학전문대학원 1년차 해당) 의사가 되기 위한 본격적인 과정에 입문하는 4년간의 고행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이중 본과 교육의 첫 과정인 ‘해부학’(Anatomy)은 매년 그랬듯이 예비의사에게 커다란 산으로 다가가고 있다. 모든 의사에게 잊을 수 없는 과정이자 지워지지 않은 불안감과 긴장, 희열을 가져다 준 학문인 ‘해부학’이 의학계에 던지는 질문은 무엇일까. 의대생을 가르치는 교수들의 시간여행을 통해 의사에게 각인되어 있는 해부학의 의미와 중요성 그리고 풀어야할 과제를 고민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지워지지 않은 추억 '해부학'
②해부실습 현장에 가다...동행취재
③진화중인 해부학, 교육론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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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에게 학생시절 해부실습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최근 들어 TV 드라마로 의학소재의 메디컬드라마가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모든 드라마나 영화에 빠지는 않은 의사가 기존 엑스트라에서 주인공으로 국민들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과거 의학드라마가 응급실과 앰블런스에 불과한 소품 수준에 불과했다면 현재 방영중인 드라마는 거대하고 섬세한 수술장의 모습과 의사의 땀방울, 여기에 의사사회의 이면을 대학병원이라는 웅장한 스케일 속에서 인간미를 가미해 녹여내고 있다.

그러나 방송사들의 이같은 새로운 시도에 일반 시청자들은 탄성을 보낼지 모르나 의사들은 드라마 소재로 의사가 채택됐다는데 위안을 삼으면서도 브라운관에 비친 자신들의 모습이 의사의 참모습을 담아내는 ‘오마주’(hommage, ‘존경’의 프랑스어)로 거듭나기를 간절히 바랄지도 모른다.

의사의 모습이 과거 선망의 대상에서 일반 직업명으로 회자되고 있는 오늘날, 모든 의사들에게 잊혀지지 않은 본과생 시절 교육과정은 단연 '해부학'(Anatomy)일 것이다.

내과부터 외과, 영상의학과 등 모든 임상의사에게 해부학은 어떤 의미로 기억되고 있을까.

실습대에 놓여진 카데바(cadaver, 실습용시신)의 모습과 포르말린 냄새로 상징되는 해부학은 시니어 교수에게도 선명히 기억되는 예비의사로의 첫 걸음이다.

이대 동대문병원 신경외과 박동빈 교수(62, 고려의대졸)는 “해부학요? 당연히 ‘땡 시험’이죠”라며 기자에게는 생소한 단어인 ‘땡시험’을 설명했다.

해부학 실습시간은 많은 의사들에게 인체의 신비와 경외감을 느끼게 했다. 사진은 신체 모형도.
의사되기 위한 '필수과정'

땡 시험은 해부학 실습시험을 일컫는 의대생간 용어로 실습대에 놓여진 각 인체 부위별 50가지 구조물의 명칭과 기능을 30초마다 ‘땡’ 소리와 함께 이동하며 풀어야 해서 붙여진 별칭이라는 것.

박동빈 교수는 “본과 1학년인 1968년 유신시절, 한일회담으로 학생들의 잇따른 집회가 이어지면서 11월에 실시될 해부 실습시험이 연기돼 (눈이 많이 내린)그해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서울의대 해부 실습실(현 서울의대본관)에서 땡 시험을 본 기억이 난다”며 “그 때 해부학의 마지막 과정인 브레인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얻어 너무도 기분이 좋아 졸업 후 신경외과를 선택하게 된 것 같다”고 말해 40년전 해부실습의 기억을 또렷하게 그려냈다.

박 교수는 “과거에는 행려환자의 사체가 많아 카데바 4구 중 1구가 행려환자일 정도로 해부 실습에 풍족함(?)을 느낄 정도였다”고 전하고 “시신에 대한 묵념과 함께 팔과 다리를 면도 후 해부에 들어간 첫 실습시간은 여학생과 일부 남학생까지 긴장감과 두려움으로 쓰러지는 일들이 많았다”며 해부학에 대한 추억과 감회를 피력했다.

칼을 들지 않은 진료과 의사에게 해부학이 지닌 추억과 의미는 무엇일까.

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김용태 교수(50)는 “해부학하면 떠오르는 것이 하나로 딱 잡히지는 않는다”고 언급하고 “실습 첫 시간부터 팔, 복부, 다리, 머리 등 실습 과정에서 시험까지 모든 순간이 영화 필름처럼 머릿속에서 한꺼번에 스쳐 지나간다”며 해부학의 느낌을 비유적으로 표현했다.

김용태 교수는 이어 “눈이 시릴 정도의 포르말린 냄새와 사람을 해부해야 한다는 생각에 역하고 힘든 생각이 들지만 실습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학생들이 자연스러워지고 일상생활처럼 느꼈다”며 “나중에는 해부학이 지닌 불안감과 긴장감이 인체에 대한 신비로 이어졌다”고 덧붙였다.

같은 병원 진단방사선과 최병인 교수(58)는 “특별한 종교를 갖고 있지 않으나 본과 1학년 해부실습에서 느낀 점은 인간을 창조해낸 조물주에 대한 경외심 이었다”고 회상하고 “근육과 신경, 뼈, 피부, 장기 등 모든 신체 구조들이 어쩌면 이렇게 섬세하게 만들어질 수 있는지 교수로 성장한 지금 생각해도 첨단과학으로도 풀 수 없는 오묘함이 숨어있다”며 학생시절 실습과정에서 다가온 새로운 세계에 대한 소감을 피력했다.

기증자의 이름과 사연이 적혀있는 서울의대 해부 실습실에 놓여있는 유골의 모습.
"해부학은 의사에게 동반자 역할"

그렇다면, 일반 진료과와 달리 진료현장에서 해부를 통한 치료를 하고 있는 외과계 의사들은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을까.

서울대병원 외과 노동영 교수(52)는 “해부학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실습과정보다 수 천 개의 인체용어를 빠른 시간내 모두 외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다”며 “실습교재와 의학사전을 놓고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암기를 반복했던 기억이 떠올라 그리 유쾌하지는 않다”고 말해 유방암 외과의로 변모한 교수에게 해부학은 긴장감이 아닌 용어암기 과정으로 희석되고 있음을 내비쳤다.

이와 달리 성형외과 민경원 교수(56)는 “해부학이 의사에게 던지는 의미는 교수인 지금도 뗄 수 없는 큰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고 전하고 “의과대학에서 수 십 년째 반복되는 ‘땡 시험’을 이상하게 여길지 모르나 지금도 의사는 환자의 생명을 위해 시간싸움을 하고 있다”며 의사의 정확하고 신속한 판단에 숨은 공로자인 해부학을 높게 평가했다.

인터뷰에 응한 서울대병원 교수진 모두가 해부학의 중요성에는 공감대를 표했으나 진료과에 따라 해부학이 주는 이미지와 시사점은 사뭇 다른 양상을 보였다.

이에 대해 내과 김성권 교수(59)는 “해부학의 첫 느낌은 포르말린 냄새로 시작되나 의사가 되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큰 산이라는 깨달음”이라며 “본과생부터 교수직인 현재까지 해부학은 훌룡한 의사로 거듭나기 위해 배울게 많음을 가르쳐준 학문”이라고 피력했다.

서울의대 해부학교실 황영일 교수(50)는 “해부학은 인체구조를 공부하는 화학의 주기율표와 같아 의학에 바탕이 되는 학문”이라고 설명하고 “일부 의사에게는 과거의 추억이나 단순 암기과목으로 기억될지 모르나 해부학은 환자 진료를 위한 모든 의사에게는 학생 때나 지금이나 동반자로 발전해야 할 불가분의 관계”라며 해부학이 지난 의미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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