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 의료정책 부재…정권 바뀐것 맞나?"

박진규
발행날짜: 2008-07-01 07:20:12
  • '식코'에 발목잡혀…당연지정제 완화 최우선 과제

이규식 교수는 "우리나라가 선진 일류국가로 가기 위해서는 의료산업화가 필수 요소"라고 강조했다.
이규식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의료산업화의 전도사'로 통한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자문위원으로 참여했었던 그는 "우리나라가 선진 일류국가로 가기 위해서는 의료산업화가 필수 요소인데도 정부는 반대여론에 밀려 모든 개혁을 포기하려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교수는 메디칼타임즈 창간 기념 인터뷰를 통해 "새 정부의 보건의료정책 기조는 과거 정부와 다를 것이 없다. 특히 보건의료 부문에서는 정권이 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또한 그는 "의료산업화는 형평성 문제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막힌 물꼴를 터서 일자리를 창출하고 국가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자는 것이다. 의료산업은 국익에 대단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 교수는 정부의 의료산업화 정책이 좌초 위기에 몰린 이유에 대해 "국민을 설득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괴담이 나오면 '아니야' 하고 정면으로 설득하고 제대로 된 정책을 펴야 한다"고 충고했다.

다음을 일문일답.

새정부가 출범한지 넉달이 지났다. 새정부 보건의료 정책을 간단히 평가한다면.

-정책기조는 과거 정부와 바뀐 것이 없는 것 같다. 특히 보건의료부문에서는 정권이 연장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회자된다. 정부는 아직 제대로 된 정책과 비전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는 영화 'SICKO'와 함께 몰려온 의료 영리화 괴담이 큰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요양기관 계약제(당연지정제 완화)의 경우, 현재에는 정부 강제로 규정하고 있는 공단과 의료기관과의 계약을 의료기관의 선택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건강보험과 민영보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처럼 호도됐고, 결국 돈 있는 사람들은 민영의료보험으로 좋은 치료를 받고, 돈 없는 나머지 사람들은 치료를 못받는 다는 식의 오해가 퍼져나갔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부가 인수위 국정과제였던 계약제에 대해 입도 뻥긋 못하고, 나아가 주무장관이 먼저 나서서 사태를 진화하는 형국에 이르렀다.

영리법인 허용의 문제도 같은 이유로 공론화되지 못하고 있다. 의료를 시장주의에 내맞긴다느니, 정부가 의료에 대한 관리를 포기한다느니 하는 반대여론이 들끓고 있고, 정부 또한 이에 대한 논의를 피하고만 있다.

Q. 그간 의료산업화 정책을 강력히 주장했왔다. 그 배경은?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 필수적인 부분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의 보건의료정책은 형평성을 맞추는데 집중되어왔다. 그러나 지금 단계에서 형평의 문제는 상당히 해결되었다고 본다. 이제 우리도 새로운 가치를 볼 때가 됐다. 형평의 문제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사회보험제도 그대로 유지하면서 의료도 일부 영역은 소위 일자리 창출할 수 있고 국가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보자는 얘기다.

실제 국내 병원 가운데 세계적 수준으로 손꼽힐만한 역량을 가진 곳들이 많다. 그러나 보험으로 무조건 꽁꽁 묶어두니 병원들이 제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손발이 묶여 있는 형국이다. 이제 의료서비스에서도 명품이 나와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의료와 더불어 국내 의료기기, 제약업체도 더불어 발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A병원이 세계 50대 병원에 들어간다면 그곳에서 사용하는 의료기기, 의약품도 세계적인 명품이 된다. 그렇게 장기적으로 보자는 것이다.

경제제특구 문제도 오해가 많다. 외국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특구를 만들고 유인책으로 그 안에 외국병원을 넣은 것이다. 사실 대한민국이 먹고 살기 위해서는 경제특구 몇 개로는 한계가 있다. 국민 모두가 잘 살기위해 대한민국 전체를 특구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국민들은 가져야 한다. 그러려면 서울에 외국 일류병원이 들어와야 한다. 반대로 국내 병원을 세계 일류병원으로 육성하면 된다.

#i3#그렇게 되려면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완화해줘야 한다. 건보 틀에 묶인 병원 한 두개라도 요양기관 계약제하고 영리법인 인정해줘서 그런 병원들이 경쟁력을 갖도록 하고 세계적인 병원이 되고 관련 산업들이 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좌파쪽에서도 이런 논리에 동의하지만 현재의 보장성 수준을 감안할 때 아직은 아니라고 한다. 보장성 80~90%달성하고 하자는데 쉬운 일이 아니다. 보장성을 급격히 올리려면 보험료를 올리던지 해야하는데 사회적으로 합의가 안된다. 산업화에 대해 공적의료를 제끼고 가자는 것이라고 호도하는데, 의료이용에서 공적 부담 즉 보장성을 높여가면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Q. 결국 지금까지의 모습만 보자면, 정부가 의료산업화 정책을 당차게 꺼내놓았다가 말도 못붙이고 주머니에 다시 집어넣는 꼴이 됐다.

-국민들을 설득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정권초기부터 식코 논란있고 하니까 국민들을 설득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던 것 같다. 그나마 국민들에게 가장 먹혀들어갈 수 있는 것이 민영화였는데, 그것 마저도 설득할 시간이 없었다. 국민들의 이성을 찾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 첫번째 과제다. 지금까지 나온 괴담은 괴담에 불과하다는 것을 것을 알려야 한다.

식코는 미국영화지 우리와 완전히 다른 상황이다. 미국은 보험이 없는 국민이 20%나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전국민이 의료보험 혜택을 받고 있다. 의료산업화 한다는 것도 의료전체를 산업화한다는 것이 아니라 의료에서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가는 작업이라는 것을 설득해야 한다.

Q. 보건의료현안이 산적해 있다. 새 정부가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핵심은 요양기관 계약제에 있다고 본다. 의료가 공공재가 된 것은 실증적 판단결과가 아니라 정치적 판단, 즉 가치경제적 규범적 판단이었다. 그러다 보니 모든 나라가 매우 적은 부분에 대해서만 실증적 영역, 즉 경제적 영역을 인정해주고 있다. 우리도 일정부분 경제적 영역을 인정해야 한다. 그 첫 단추가 바로 계약제가 될 것이다. 계약제가 되면 의료기관이 수가가 낮다고 보험환자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데 대만의 경우를 보면 민영화로 빠진 의료기관은 극히 적다. 보험환자를 받지 않으면 리스크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Q. 그동안 의료계와 정부는 매우 불편한 대립적 관계였다. 그래서 새 정부에 대해 상당한 기대와 관심을 갖고 있는데...

-의료를 사회보험으로 관리하는 나라에서는 정부통제가 불가피하다. 숨통 터놓으면 의료계가 불만이 나와도 정부가 할말이 있다. 싫으면 가라, 나가라는 식으로 말이다. 정부가 무조건 강제로 들여놓으니까 의료계가 불만일 수 밖에 없다. 길을 열어주면 할말이 있다. 그러니까 다른 사회보험국가들은 일부라도 이 같은 길을 열어두는 것이다. 유럽의 경우도 자비부담 병실을 허용해, 병원이 살길을 찾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보험수가는 어느 나라다 다 통제되고 있고, 보험수지가 안맞는 부분들을 자비부담병상으로 보완할 수 있도록 숨통을 열어주고 있는 것이다.

Q. 건강보험재정의 합리적 이용을 위해 공단을 분리운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새정부 초기부터 있어왔다. 이에 대한 생각은?

-현재는 바람직하지 않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다. 공단을 두고 가상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대안 중 하나는 관리운영비를 절감하거나 징수율이 높은 지사에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다. 또 현행 본부-지역본부-지사 3단계 구조는 비효율적이다. 지역본부 없애고 지사가 제대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해햐 한다. 국민들에게 지사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Q.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경제학적으로 얘기하면 의사는 환자진료를 대리하는 대리인이다 합리적 대리인, 비합리적 대리인 기능도 한다. 정부정책이 합리적이면 전자, 정부정책이 비합리적이면 의사도 후자로 간다.의사들이 보기에 지금의 정부 정책은 비합리적이다. 그러다보니 의사들도 비합리적인 대리인이 되는 것이다. 이런 악순환을 해결하는 길은 정책을 합리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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