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차의료 강화없는 의료서비스산업 육성은 허구

양염승
발행날짜: 2005-08-31 09:02:49
  • 양염승(부천시 의사회 회장)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발표한 ‘전략 서비스산업의 경쟁력 강화방안’이라는 보고서에서 우리 경제의 저성장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성장 잠재력이 높은 의료서비스의 경쟁력 강화에 주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이를 위한 실천과제로 영리법인 의료기관 설립의 단계적 허용, 각종 규제 완화,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를 통한 의료수요의 제고 등 민간투자를 촉진하는 정책과 함께, 고급 인력을 기반으로 해외시장을 적극 개척하고 IT·BT와 의료산업의 접목을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부의 보건의료정책이 의료는 공공재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효율성보다는 공공성을 강조하면서 규제 일변도로 추진되어 의사들로 하여금 값싸고 평준화된 진료, 규격화된 진료를 하도록 강요하고, 첨단의료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는 의료계의 일반적인 정서를 반영하고 있는 보고서라 평가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는 일차의료의 육성 및 발전과는 무관하거나 오히려 이를 심각히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에 많은 우려를 불러 일으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정부의 의료서비스산업 육성 추진방향

보건복지부는 의료서비스산업 육성을 위한 주요 검토대상 과제 중 일부에 대한 추진방안을 최근 확정했다. 의료서비스육성협의회 및 전문분과협의회 토론을 통해 마련된 제도개선안에 대해 7월 21일 당정협의를 거쳐 ①의료기관의 종별구분 개선 ②비영리법인 의료기관에 대한 세제 합리화 ③신의료기술평가제도 구축 ④의료기관평가 통합 ⑤보건의료정보화(e-health) 기반 마련 등에 대해 당과 합의한 것이다.

8월 2일의 서비스산업 관계장관회의에서는 ‘의료기관의 종별구분을 3단계로 축소하고, 의사 프리랜서제를 도입’하기로 의결하였다.

의료연대회의는 의사 프리랜서제는 영리병원이 허용될 경우 대학병원 의료진이 외부 영리병원에서 진료를 할 수 있게 하는 제도라면서 책임있는 진료 수행을 저해하고, 영리병원 허용을 위한 사전조치가 될 수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의료기관 종별축소 방안에 대해서는 종합병원의 필수과목 설치의무를 폐지함으로서 100병상 이상의 의료기관이 기본적 필수과목을 설치하지 않고도 병원을 운영할 수 있게 되어, 전문과목 영리병원 허용의 사전조치로 파악된다고 우려를 표시하며, 이번 조치는 영리병원 도입 등 의료산업을 본격화하기 위해 정부가 의사들의 고용구조를 바꾸려는 시도라는 지적과 함께 국민 입장에서 의료전달체계가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일차의료의 강화와는 거꾸로 가는 정부 정책

필자는 일차의료강화, 일차의료기관의 육성이라는 관점에서 위에 열거한 여러 정책들을 평가해 보고 싶다.(여기서 일차의료기관이라함은 건강보험진료를 하는 동네의원으로 보는 견해를 수용하고자 한다.)

요양기관 종별 기관당 진료비 수입 내역 및 변동상황에 따르면, 2005년 1/4분기 종합전문병원, 종합병원 등 대형병원급 의료기관의 총 진료비는 전년 동기 대비 두자릿수로 증가한 반면 의원급 의료기관의 증가율은 2%에 그쳤다. 이는 의원의 대부분을 동네의원이 차지한다고 가정할 때, 일차의료의 기능이 매우 취약해졌다는 사실과 의료전달체계가 유명무실하고 비효율적이며, 의료이용 측면에서 소비자의 의료쇼핑의 증가 현상을 반영하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에서 일차의료의 기능이 매우 취약한 이유를 정부의 정책적 지원의 부재, 일차의료 인력의 질적 수준, 시설 및 장비, 국민들의 의료이용 행태와 관련하여 찾는 견해가 있는데, 그 중 정부의 일차의료에 대한 무지와 정책적 지원 부족의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할 것이다.

의사 프리랜서제나 전문과목 영리병원의 허용은 국민들의 의사쇼핑, 병원쇼핑을 더욱 조장할 것이라는 걱정이 앞선다. 우리 현실에서는 주치의 제도나 의료전달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으며, 의사나 병원 선택에 있어서도 의료 소비자에게 거의 무제한의 자유가 존재하고, 전문의 또는 명의에 대한 과도한 선호를 갖는 국민 정서를 감안할 때 이는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일이다.

종신보험 등에서의 특약을 포함해 전체 가구의 88.5%가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한 것으로 2003년 생명보험협회 조사에서 나타났으나, 가입자들의 혜택은 건강보험에 비해 매우 낮다고 한다. 2003년 보험개발원의 자료에 의하면 민간보험의 지급율은 61.3%로 가입자들이 100원을 내면 61.3원을 돌려받는 셈인데, 이는 민간의료보험사에서 직원들의 급여, 홍보, 가입자 모집 등에 쓰는 관리운영비가 전체 재정의 30%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또한 의료비 등 보험사고로 실제 지출된 금액만큼 보험금이 지급되는 실손형의료보험이 8월부터 생명보험업계에 전면 허용되었지만, 보험가입자의 ‘도덕적 해이’ 가능성과 보험료율 평가의 어려움 때문에 생보업계가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고, 가짜환자 만들기 및 과잉진료 등의 리스크에 대한 사전 대비책 및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마련한 후에 시장에 진출한다는 이들의 전략을 고려해 보면, 민간의료보험이 우리 의료계에 유리하게만 작용할 것 같지는 않다는 판단이다.

중장기적으로 민간자본이 영리성을 목표로 병·의원에 투입되고 병·의원은 수익을 올려 투자자에게 되돌려 주는 영리법인 의료기관의 도입 문제 또한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닌 듯하다. 이의 도입을 주장하는 배후에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를 불형평한 구조로 유도, 전반적인 비효율 속에서 일부 민간보험사와 연계한 의료기관이 있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면 그 부작용은 심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거대 자본 및 투기성 불량 자본의 등장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중소병원이 많다는 사실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최근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논의 조차도 일차의료 체계의 입장에서는 매우 불리하기만 하다. 즉 정부는 2005년도부터 암, 뇌혈관질환(중풍), 심장병의 3대 질환에 대한 본인부담 금액의 획기적 경감책을 계획 중에 있으며 2008년까지의 보장성 확대 계획은 질병별 점진적 접근 방식으로 상위 10대 중대질환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2, 3차 병원 중심의 중병에 대한 보장성 강화가 일차의료에 대한 지원 정책이 없이 실행된다면 상대적으로 일차의료의 기반은 더욱 더 취약하게 될 것이다. 또한 소액진료비 본인부담금이 인상된다면 의원급 의료기관의 고사를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 5월 25일 발표한 정부의 공공의료 확충 정책안에서도 일차의료 강화에 필요한 인력의 충원방안이나 기존 인력의 질 향상을 위한 대책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지 않다.

일차의료의 장점 살리는 정책 제시해야

이상 열거한 모든 정책들은 노인인구의 증가, 만성퇴행성질환의 유병율 확대 등으로 인해 향후 지속적으로 국민 의료비 지출이 상승하리라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진료비를 줄이면서 의료의 질을 올릴 수 있는 잇점을 갖고 있는 일차의료의 강화와는 거꾸로 가는 정책들인 것이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질병의 경중에 따라 의료 이용의 단계화를 설정함으로써 의료비를 절감하고, 환자의 만족도는 향상되며, 불필요한 입원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음을 보여주는 일차의료의 장점에 대한 연구결과가 있으며, 일차의료가 환자를 치료하는 데 있어 질적인 향상을 이끌어 낸다는 보고들도 상당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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