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진료제 폐지를 전제로 이야기하자

강주성
발행날짜: 2005-10-13 06:57:28
  • 강주성 공동대표(건강세상네트워크)

얼마 전, 대구에 사는 어느 기초생활수급자의 진료 내역을 본 일이 있었는데 놀랍게도 전체 의료비(약 1천 7백만 원) 중 선택진료비가 무려 7백만 원에 이르는 경우를 보았었다.

그간 선택진료비와 관련하여 본 영수증 중 가장 많이 나온 경우(전체 진료비 대비)였다. 내가 본 환자들의 영수증 중 천만원이 넘는 고액의 중증 환자들의 진료비 사례 가운데 선택진료 비용만 일이백 만원이 넘는 경우는 아주 일반적이다.

선택진료비는 환자들의 불만사항 중 가장 많은 민원 중의 하나로 이미 자리매김 되어 있다. 경제적인 부담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환자들이 갖는 선택진료제에 대한 심적 저항성이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유야 두말 할 필요 없이 ‘선택진료제도’ 자체의 논리적 허구성에 기인한다.

지난 달 하순에 건강보험 체계와 관련하여 대만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애초의 방문 목적은 문서로만 보아왔던 대만의 ‘중대상병보상제’를 직접 확인해보되, 제도를 연구하고 설계한 학자와 그 안에 있는 의료 공급자들을 포함해서 실제 건강보험에 가입한 환자까지 두루 만나서 하나의 제도 내에 있는 각각의 이해 집단들의 생각과 제도 모두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한 목적이었다.

대만에 가기 전 중대상병보상제에 대한 내용과 더불어 대만의 선택진료제에 대해 모 기관에서 나온 짤막한 문서를 일단 읽고 그것을 머리에 두고 갔다.

처음에 만난 사람은 현지에 사는 화교 가이드였는데 밥을 먹다가 이 가이드에게 “혹시 대만에 선택진료제도‘라는 게 있는데 아느냐?” 고 물어 보았다.

나는 이 사람이 선택진료라는 개념을 모를까봐 ’특진제도‘라고 다시 설명을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처음 들어보는 말이라고 말했다. “이상하다.

한국에서 보고 온 자료에는 ’있다‘ 고 되어 있었는데 왜 모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런 의문은 바로 그날 대만 국립대학 의료관리학 교실을 방문하여 대만의 의료제도 설계에 깊이 관여한 모 교수를 만나면서 일부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교수도 역시 선택진료제도라고 해서는 이해하지 못하였고, 우리가 ‘특진’이라고 말하고서야 비로소 이해하기 시작했다. 특진이 있긴 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특진은 대학교수 급의 의사들이 일부의 부유한 환자들에게 진료를 하고 치료비 전액을 비급여로 요구하는 것이어서 대만 의료제도에 있어서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이것조차도 제도로서 확립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던 것은 전민건강보험 총국(우리의 건강보험공단)을 가서였다.

건강보험과 관계없이 극히 일부의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환자(사업가나 정치가들)가 자신이 선택한 병원과 의사를 찾아가서 진료를 받을 때 진료비 전액을 본인이 내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본격적으로 환자를 만나고부터는 더 분명하게 이것이 제도도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에 불과했다.

신장장애환자협회를 가서도 백혈병 환자들의 모임인 골수이식협회를 가서도 그리고 루프스 환자 모임과 각종 암환자들이 모인 모임을 가도 어떤 환자이든지간에 선택진료 또는 특진이라는 말 자체를 알지 못했다.

결론은 ‘대만에 우리와 같은 선택진료제는 없다’는 것이었다. 100% 환자 본인 부담 진료는 외국인에 대해 국내서도 그렇게 적용하고 있는 있지만 우리가 그것을 제도로 생각하고 있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단지 그것은 건강보험제도 밖에서 운영되는 일종의 패널티 성격으로 환자 개인이 전액 지불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다른 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정부에서 관련하여 보건산업진흥원에 연구 용역을 주었다고 하지만 보건산업진흥원도 아마 이와 유사한 제도를 다른 나라에서 발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간 선택진료제에 대해 여러 차례 개선이 아닌 제도의 폐지를 강력하게 요구해 왔다. 환자들도 이미 각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고, 이런 소송을 기초로 이 제도 자체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을 조만간 청구할 것이다.

우리가 이처럼 폐지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대학병원과 같은 3차 의료기관에 대하여 의원이나 병원보다 더 높은 건강보험 수가를 인정하고 있다. 이름하여 종별가산금 제도이다. 건강보험 수가가 결정되면 대학병원은 여기에 무려 30%를 더 받는다(종합병원은 25%, 병원 20%, 의원은15%). 그런데 환자가 대학병원의 의사에게 진료를 받았다고 추가적인 의료비를 더 부담해야 한다는 것은 이중 삼중의 부담인 셈이다.

둘째, 선택진료비는 2000년 의료계의 수가인상 요구를 정부가 편법적 제도로 해결해준 것이다. 따라서 선택진료비는 ‘환자에게 의사의 선택권을 보장한 비용’이라고 할 수 없다. 이 말은 정치적으로 사용된 허구적 표현일 뿐, 본질은 수가보전책인 것이다. 이는 이미 정부와 의료계가 인정하고 있다.

셋째, 건강보험제도를 운영하는 세계 여러 나라를 살펴보더라도 우리나라의 ‘선택진료제’와 같은 예는 없다. 대만과 같이 ‘VIP진료’(특진)라고 하여 국내외 부유층이라고 하는 일부 사람들에게 제한적으로 적용하고 있을 뿐이며,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는 주치의와 상의하지 않고 환자가 일방적으로 병원과 의사를 찾아 진료를 받은 것에 대한 일종의 범칙금 성격으로 운영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건강보험제도를 운영하는 여러 나라들이 이와 같은 선택진료제를 운영하지 않는다고 해서 환자의 권리가 침해되고 있다는 보고는 없다는 것이다.

국민들의 언성이 드높고 제도 자체가 이렇게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여전히 폐지가 아니라 개선에 그 무게를 두고 있다. 선택진료제의 폐지냐 개선이냐를 논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선택진료제의 폐지는 논의조차 하지 않고 개선 쪽으로 방향을 틀어 연구와 논의를 진행하려는 것은 선택진료에 대해 분노하는 국민들을 우롱하는 행태이다.

우리는 정부가 ‘현실적 이유’를 들이대며 ‘개선’이라는 애매한 현실적 타협을 하게 될 경우 자칫 또 다른 왜곡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선택진료제도개선위원회의 활동에 깊은 우려감을 갖고 있다.

이제 병원계 쪽에 중요한 이야기를 한가지 하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폐지를 전제로 하는 일부 수가 인상 논의를 하는 게 어떻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고 모 언론에도 이런 생각을 한번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런 나의 생각은 더 생각을 진전시키면 시킬수록 그 생각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선택진료제는 폐지되는 것이 마땅하지만 만약 다른 제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면 의료의 질 관리에 대한 보상과 지원의 차원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선택진료가 실질적으로 병원의 수가보전책으로 시행되었다 하더라도 외면상으로는 의료의 질적 차별성을 인정하자고 하면서 의료 질에 대한 국민적 선택을 보장하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것이라면 그런 방향으로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맞는 것이다.

둘째, 진료 수가 자체를 변동시켜서 선택진료 수입을 보전해주는 것은 국민 전체의 입장(개개인이 아니라)에서 보면 마찬가지의 지출이 될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보면 수가 변동에 따라 그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재 운영되고 있는 종별가산금에 얹혀서 운영해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선택진료제와 관계없이 종별가산금도 매우 문제가 심각한 제도라고 보고 있기에 선택진료비를 이에 연계하여 운영하는 것은 오히려 이를 더 강화하는 것이어서 국민들은 이에 동의하기 어려운 것이다. 물론 이렇게 했을 때 현재의 상대수가체계의 논리적 모순이 발생하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나는 선택진료제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폐지를 전제로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공급자와 가입자 간에 얼마든지 추후의 대안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급자와 가입자의 중간에서 둘 -의료계와 국민들- 의 반발을 무마하려고 하는 정부로서는 결국 서로에게 각각의 반발을 빌미 삼아 양쪽을 잠재우려할 것이고, 그렇게 하려면 결국 제도를 축소(선택진료 의사 수나 선택진료 적용 항목 축소 등)하거나 규정을 보완(타과 의뢰 시 자동으로 부과되는 선택진료를 합법화하는 것)하여 지속시키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가입자와 공급자가 이 문제와 관련하여 새로운 합의를 끌어낼 필요가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냥 두어봤자 향후 정부가 내놓을 안으로는 가입자와 공급자 그 둘에게 남을 것이 별로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전 세계에 유래가 없는 이 선택진료제는 국민의 저항을 받고 있고, 방향이야 어떻든 폐지로 가는 도상에 이미 서 있다는 것이다. 편법은 결국 불법을 낳는다. 이런 제도는 당장 좋을지 모르지만 의료계가 국민 속에서 자리매김하는 데는 장기적으로 무조건 불리하다.

그 동안 해왔던 양태로 보면, 앞으로 정부가 내놓을 제도 개선안도 환자와 일반 시민들의 항의와 공격이 끊임없이 계속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함께 사는 나라를 위해 정도에 기초한 제도를 만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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