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진 서울대의료정책실 교수
의사협회장 선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선거는 대한의사협회 100년을 마감하고 새로운 세기를 시작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지난 100년을 돌아보면 한국 ‘의(醫)’분야는 괄목상대할 발전을 이뤘다. ‘의료’는 10만명의 의사배출과 전국민의료보험제도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값싸고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게 되었고, ‘의술’은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으며, ‘의학’ 또한 상당 수준에 도달했다.
결과주의적 관점에서 이런 성과의 이면에는 국가와 의사, 사회와 의사 관계의 난제들이 숨어있다.
먼저 국가와 사회는 첫째, 의료공급주체를 의사, 한의사, 약사로 분리시켜 그들이 국제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내수시장 내에서 서로 싸우도록 하는 환경을 만들었다. 이는 대부분 선진국들이 공급자 면허제도를 ‘의사’ 한가지로 운용하는 점과 약사들에게 의료공급자의 지위를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둘째 건강보험제도를 통해 의료시스템 전체를 획일화하고 전체 의사를 잠재적 범법자로 만들었다. 이는 전문가의 자율적 판단으로만 가능한 의료행위를 의료법이 아닌 국민건강보험의 지출 통제를 위한 심사기준으로 적법성을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셋째 의약품 리베이트 문제를 지난 10년 동안 의료개혁이란 이름으로 제기하면서 의사집단 전체를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함으로써 환자-의사 관계에 심각한 손상을 가져왔다. 이는 제약사-의약품유통회사-약사-보험제도-의사 등이 복잡하게 연관된 ‘의약품거래관행’ 문제를 사회구조적인 차원에서 접근하기보다 의사단체를 희생양으로 삼아 정치적 이득을 취했던 정치권-행정부-특정 이익단체 간 결탁의 산물이다.
이런 역사적 결과에 의사들의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의사들은 정부가 제안했던 의사-한의사 면허일원화를 스스로 반대했고, 질병과 치료를 1분도 배우지 않은 약사들이 버젓이 진료하는 것을 묵인했으며, 스스로 당시 관행수가의 70% 수가로 건강보험제도를 시작하는데 합의했다. 그럼에도 의사집단은 과거에 대한 각고의 통회함 없이 한의사, 약사와 싸워왔고 정부와도 충돌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의사들은 국민건강보험제도의 노예로 전락했고 미숙한 정치적 대응과 소비자중심 사회로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환자들마저 적으로 돌리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의사들이 이익단체의 한계를 넘어 ‘의(醫)’분야의 정책파트너로서 또한 국가를 먹여 살릴 산업주체로서 정체성을 재정립 할 수 있을까?
먼저, 의사들 스스로 상위 1%로 대접받고 싶다면 그만한 사회적 역할을 해야 한다. 의사들에 대한 사회의 요구는 단순히 아플 때 찾아가면 약 처방해주는 사람이 아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요구는 ‘똑똑한 만큼 나라를 먹여 살리는데 기여하라’는 것이고 사회적 차원에서 요구는 ‘투명하게 살고 사회에 봉사할 때 상대적 부를 용인하겠다’는 것이며 환자 차원에서 요구는 ‘나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고 선택권을 보장해 달라’는 것이다.
둘째, 과학주의에 대한 맹신을 버려야한다. 의사들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의학지식만이 아닌 직관과의 결합으로 자신의 행위를 결정한다. 또한 임상의학지식은 환자의 상태를 판단하고 치료행위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기준이 되지만 근본적으로 통계적 속성을 갖는다는 의미에서 본다면 환자입장에서는 0.1% 부작용에 대한 문제만으로도 결국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가 된다. 더군다나 아직도 의학의 영역에는 원인과 결과는 있지만 기전을 밝힐 수 없는 문제, 원인을 모르지만 결과만 있는 문제들이 산적해 있고 의사들은 이런 정보를 모두 포함하여 판단을 내리고 있다. 즉, 아직도 의사들이 모르는 것이 아는 것보다 많을 것이란 것이다.
과학주의를 맹신하는 의사들의 태도는 한의학 등의 전통의학이나 보완통합의학을 터부시 하는 태도에서 잘 드러난다. 그러나 서양 선진국에서 전통의학이나 보완통합의학을 연구하고 발전시키는 주체도 의사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셋째, 의료의 공익적 성격을 잘 이해해야한다. 의료행위가 국민의 건강수준향상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공익적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또한 성형외과의사가 쌍꺼풀 수술을 하러 온 환자에게 코도 높이면 예뻐질 것 같다고 제안하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후자가 상업적이지만 지위를 이용한 강권이 아니라면 비윤리적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응급의 문제나 예방접종의 문제, 차상위 계층의 문제 등은 아직까지 국가가 개입해야할 명분과 조건이 충분하다. 지금까지 국가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형편이 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적극 개입하게 될 것이다. 국가가 세금을 통해 이런 정책사업을 수행함에 있어 민간과 협력하여 효율적인 제공방식을 선택할 수 있지만 민간과의 협력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국가는 얼마든지 공공의료기관등을 통해 이런 사업을 수행하거나 별도의 사업기관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여태껏 이런 공적성격의 사업들조차 의사들이 알아서 해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국가는 국민의 세금으로 국민들의 건강수준 향상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그 범위와 내용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결정되기 때문에 의사들 스스로 이 문제에 대해 사회와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한다.
넷째, 글로벌 전략을 세워야 한다. 이미 의료서비스가 국경을 넘나들며 제공되고 있고 그 확산 속도가 매우 빨라지고 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우리나라가 가격대비 기술수준이 높다는 점은 상당한 잠재력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국가 전략 차원의 논의이지만 정부가 이런 논의를 상당히 진행하고 있는 시점에서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의료계 스스로 그 방향과 내용을 논의하고 의사들의 역할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위에서 언급한 네 가지 문제는 철학적인 문제이다. 지금까지 충분한 논쟁이 되지 못했지만 이제는 한국이 더 이상 보고 배울 나라가 없고 스스로 갈 길을 결정해야한다는 측면에서 의료분야에서 이 문제에 대한 심도 깊은 논쟁을 시작할 때가 된 것이다.
이런 관점을 정리하고 논의하는 것이 향후 100년을 준비하는 지금시기에 의사협회의 주요한 임무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반드시 두 가지 문제가 선결되어야 한다.
첫째, 의사협회는 이익단체의 위상과 전문가단체의 위상을 분리해야한다. 의사협회가 이익단체의 위상을 갖고 매년 개원의들의 이익을 위해 수가인상을 외치는 한 정부나 사회와 시도하는 어떤 대화도 결국 이익을 위한 연극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의사협회가 매년 하반기에 개원의사의 대표로 수가협상에 참여하는 이상, 정부 정책에 대한 의견조회에 개원의사 입장에서 회신하는 한 의사협회는 의사들의 대표조직이 될 수도 없고, 정부의 정책파트너가 될 수도 없고, 스스로 자율성을 관리할 수도 없다.
구체적으로 의원협회를 분리하는 것이 대안이다. 병원협회가 의료법상 법정단체로 명시된 것처럼 의원협회 또한 의료법상 조직으로 신설되어야 하고 의사협회의 업무 중 보험업무와 의사국 업무와 예산, 인력 모두를 이관해야한다. 이는 병원협회와 의원협회는 기관 조직으로 계약당사자 역할을 하고 의사협회는 회원 조직으로서 전문성관리를 책임지게 하자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현재 개원의협의회를 확대 개편하는 것이 가장 좋은 대안이 될 것이다. 현재 개원의협의회의 업무 성격은 비슷해 보이지만 개원의협의회는 의사조직이고 의원협회는 의원(기관)조직이란 점에서 전혀 다른 조직의 성격을 갖는다. 이를 통해 의원협회가 개원의들의 이해를 대변하고 수가협상에 직접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될 때야 비로소 의사협회는 전문가 단체로서 윤리위원회 운영과 국가적 정책 파트너로서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둘째, 의료계 스스로 포퓰리즘과 보신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의사들은 지난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를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면서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거나 정책을 추진하는 모든 과정에서 포퓰리즘적 행태를 못 벗어나고 있고, 의료계 정치인들은 자신을 희생하는 판단을 하기보다 보신주의적인 의사결정 절차를 선호하고 있다.
정부의 예방접종 사업시행과 관련하여 의사협회가 신청을 보류하라고 회원들에게 문자를 보내고 소아과개원의사회가 회원들에게 설문조사를 하고 있는 행태가 전형적인 예이다. 지난 수 년 동안 예방접종 사업을 민관협력 사업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의료계 스스로 노력해왔다. 현재는 약값정도의 예산이 배정되었지만 사업이 시작된 이상 정부는 이 분야의 예산을 줄이진 못할 것이다. 수가 또한 의료계의 많은 노력의 성과로 적지 않은 수준에서 결정되었다. 장기적으로 본다면 세금을 통한 공적 의료 사업들을 정부와 의료계가 파트너십을 이뤄 해결해 나가는 첫 번째 모델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사업이 반드시 성사되어야 하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집행부들이 회원의 뜻과 다르다는 이유로 정부정책 시행과정과 행정절차를 잘 모르는 회원들에게 결정을 떠맡기는 포퓰리즘과 보신주의의 절묘한 조합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선거제도와 맞물려 있는데 회장선출 방식인 직선제를 개선하는 것이 핵심적인 과제이다. 의료계 내에 정당이라고 할 만한 그룹이 존재하지 않고 의료정책 자체가 매우 철학적이고 복잡하기 때문에 선거기간에 보여지는 후보들의 주장만으로 누구를 지지할지 결정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 정책의 연속성 문제와 정치권, 정부와의 관계까지 고려된다면 지지후보 결정은 더욱 어렵게 된다. 이런 현실이 당선을 꿈꾸는 의료계 정치인들을 소신 있는 정책 추진보다 당장 한 표를 얻기 위해 사탕발림을 하는 포퓰리즘으로 내몰고 있다.
현행 직선제 선거제도는 미국 대통령 선거와 같이 선거인단제도로 바꿔야 한다. 민주주의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한 제도개선만으로 그 효과를 점치기 힘들고 현재 대의원들에게 맡기는 것이 불안요소로 남아있지만 큰 틀의 방향에 합의하고 실무적인 논의를 통해 보완하는 것이 옳다.
이 두 가지 선결조건이 해결되어야만 회원들이 한치 앞의 이익에 일희일비할 때 의료계 지도부가 장기적인 관점을 갖고 정부와 사회와 소통하며 소신 있는 정책 추진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후보들이 공약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후보로 거론되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큰 기대를 하기는 힘들다. 그분들이 의사협회나 서울시의사회, 대의원회 임원 시절, 의사를 위해서나 한국사회의 미래를 위해서 했다는 일들이 철학도 없고 내용도 없기 때문이다.
어떤 후보는 지역과 합종연횡을, 어떤 후보는 전문 선거꾼을 동원한 언론플레이를, 어떤 후보는 전공의 공략을 하고 있지만 다들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을 보이는 양상이다. 후보 등록이 완료되고 공약이 공개되면 이런 우려가 기우가 되어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
이번 선거가 한국사회의 미래상에 근거한 의료계의 미래를 논의하는 장으로, 정부 정책에 수동적으로 저항하는 한풀이의 장이 아닌 대안과 계획의 장으로, 지난 100년 동안 한국의 ‘의(醫)’를 책임져온 의사들의 반성과 성찰의 장으로 역할을 함으로써 한국 ‘의(醫)’분야의 100년 미래를 설계하는 논의의 장이 되길 바란다.
*이 칼럼의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난 100년을 돌아보면 한국 ‘의(醫)’분야는 괄목상대할 발전을 이뤘다. ‘의료’는 10만명의 의사배출과 전국민의료보험제도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값싸고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게 되었고, ‘의술’은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으며, ‘의학’ 또한 상당 수준에 도달했다.
결과주의적 관점에서 이런 성과의 이면에는 국가와 의사, 사회와 의사 관계의 난제들이 숨어있다.
먼저 국가와 사회는 첫째, 의료공급주체를 의사, 한의사, 약사로 분리시켜 그들이 국제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내수시장 내에서 서로 싸우도록 하는 환경을 만들었다. 이는 대부분 선진국들이 공급자 면허제도를 ‘의사’ 한가지로 운용하는 점과 약사들에게 의료공급자의 지위를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둘째 건강보험제도를 통해 의료시스템 전체를 획일화하고 전체 의사를 잠재적 범법자로 만들었다. 이는 전문가의 자율적 판단으로만 가능한 의료행위를 의료법이 아닌 국민건강보험의 지출 통제를 위한 심사기준으로 적법성을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셋째 의약품 리베이트 문제를 지난 10년 동안 의료개혁이란 이름으로 제기하면서 의사집단 전체를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함으로써 환자-의사 관계에 심각한 손상을 가져왔다. 이는 제약사-의약품유통회사-약사-보험제도-의사 등이 복잡하게 연관된 ‘의약품거래관행’ 문제를 사회구조적인 차원에서 접근하기보다 의사단체를 희생양으로 삼아 정치적 이득을 취했던 정치권-행정부-특정 이익단체 간 결탁의 산물이다.
이런 역사적 결과에 의사들의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의사들은 정부가 제안했던 의사-한의사 면허일원화를 스스로 반대했고, 질병과 치료를 1분도 배우지 않은 약사들이 버젓이 진료하는 것을 묵인했으며, 스스로 당시 관행수가의 70% 수가로 건강보험제도를 시작하는데 합의했다. 그럼에도 의사집단은 과거에 대한 각고의 통회함 없이 한의사, 약사와 싸워왔고 정부와도 충돌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의사들은 국민건강보험제도의 노예로 전락했고 미숙한 정치적 대응과 소비자중심 사회로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환자들마저 적으로 돌리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의사들이 이익단체의 한계를 넘어 ‘의(醫)’분야의 정책파트너로서 또한 국가를 먹여 살릴 산업주체로서 정체성을 재정립 할 수 있을까?
먼저, 의사들 스스로 상위 1%로 대접받고 싶다면 그만한 사회적 역할을 해야 한다. 의사들에 대한 사회의 요구는 단순히 아플 때 찾아가면 약 처방해주는 사람이 아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요구는 ‘똑똑한 만큼 나라를 먹여 살리는데 기여하라’는 것이고 사회적 차원에서 요구는 ‘투명하게 살고 사회에 봉사할 때 상대적 부를 용인하겠다’는 것이며 환자 차원에서 요구는 ‘나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고 선택권을 보장해 달라’는 것이다.
둘째, 과학주의에 대한 맹신을 버려야한다. 의사들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의학지식만이 아닌 직관과의 결합으로 자신의 행위를 결정한다. 또한 임상의학지식은 환자의 상태를 판단하고 치료행위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기준이 되지만 근본적으로 통계적 속성을 갖는다는 의미에서 본다면 환자입장에서는 0.1% 부작용에 대한 문제만으로도 결국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가 된다. 더군다나 아직도 의학의 영역에는 원인과 결과는 있지만 기전을 밝힐 수 없는 문제, 원인을 모르지만 결과만 있는 문제들이 산적해 있고 의사들은 이런 정보를 모두 포함하여 판단을 내리고 있다. 즉, 아직도 의사들이 모르는 것이 아는 것보다 많을 것이란 것이다.
과학주의를 맹신하는 의사들의 태도는 한의학 등의 전통의학이나 보완통합의학을 터부시 하는 태도에서 잘 드러난다. 그러나 서양 선진국에서 전통의학이나 보완통합의학을 연구하고 발전시키는 주체도 의사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셋째, 의료의 공익적 성격을 잘 이해해야한다. 의료행위가 국민의 건강수준향상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공익적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또한 성형외과의사가 쌍꺼풀 수술을 하러 온 환자에게 코도 높이면 예뻐질 것 같다고 제안하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후자가 상업적이지만 지위를 이용한 강권이 아니라면 비윤리적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응급의 문제나 예방접종의 문제, 차상위 계층의 문제 등은 아직까지 국가가 개입해야할 명분과 조건이 충분하다. 지금까지 국가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형편이 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적극 개입하게 될 것이다. 국가가 세금을 통해 이런 정책사업을 수행함에 있어 민간과 협력하여 효율적인 제공방식을 선택할 수 있지만 민간과의 협력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국가는 얼마든지 공공의료기관등을 통해 이런 사업을 수행하거나 별도의 사업기관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여태껏 이런 공적성격의 사업들조차 의사들이 알아서 해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국가는 국민의 세금으로 국민들의 건강수준 향상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그 범위와 내용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결정되기 때문에 의사들 스스로 이 문제에 대해 사회와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한다.
넷째, 글로벌 전략을 세워야 한다. 이미 의료서비스가 국경을 넘나들며 제공되고 있고 그 확산 속도가 매우 빨라지고 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우리나라가 가격대비 기술수준이 높다는 점은 상당한 잠재력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국가 전략 차원의 논의이지만 정부가 이런 논의를 상당히 진행하고 있는 시점에서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의료계 스스로 그 방향과 내용을 논의하고 의사들의 역할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위에서 언급한 네 가지 문제는 철학적인 문제이다. 지금까지 충분한 논쟁이 되지 못했지만 이제는 한국이 더 이상 보고 배울 나라가 없고 스스로 갈 길을 결정해야한다는 측면에서 의료분야에서 이 문제에 대한 심도 깊은 논쟁을 시작할 때가 된 것이다.
이런 관점을 정리하고 논의하는 것이 향후 100년을 준비하는 지금시기에 의사협회의 주요한 임무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반드시 두 가지 문제가 선결되어야 한다.
첫째, 의사협회는 이익단체의 위상과 전문가단체의 위상을 분리해야한다. 의사협회가 이익단체의 위상을 갖고 매년 개원의들의 이익을 위해 수가인상을 외치는 한 정부나 사회와 시도하는 어떤 대화도 결국 이익을 위한 연극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의사협회가 매년 하반기에 개원의사의 대표로 수가협상에 참여하는 이상, 정부 정책에 대한 의견조회에 개원의사 입장에서 회신하는 한 의사협회는 의사들의 대표조직이 될 수도 없고, 정부의 정책파트너가 될 수도 없고, 스스로 자율성을 관리할 수도 없다.
구체적으로 의원협회를 분리하는 것이 대안이다. 병원협회가 의료법상 법정단체로 명시된 것처럼 의원협회 또한 의료법상 조직으로 신설되어야 하고 의사협회의 업무 중 보험업무와 의사국 업무와 예산, 인력 모두를 이관해야한다. 이는 병원협회와 의원협회는 기관 조직으로 계약당사자 역할을 하고 의사협회는 회원 조직으로서 전문성관리를 책임지게 하자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현재 개원의협의회를 확대 개편하는 것이 가장 좋은 대안이 될 것이다. 현재 개원의협의회의 업무 성격은 비슷해 보이지만 개원의협의회는 의사조직이고 의원협회는 의원(기관)조직이란 점에서 전혀 다른 조직의 성격을 갖는다. 이를 통해 의원협회가 개원의들의 이해를 대변하고 수가협상에 직접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될 때야 비로소 의사협회는 전문가 단체로서 윤리위원회 운영과 국가적 정책 파트너로서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둘째, 의료계 스스로 포퓰리즘과 보신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의사들은 지난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를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면서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거나 정책을 추진하는 모든 과정에서 포퓰리즘적 행태를 못 벗어나고 있고, 의료계 정치인들은 자신을 희생하는 판단을 하기보다 보신주의적인 의사결정 절차를 선호하고 있다.
정부의 예방접종 사업시행과 관련하여 의사협회가 신청을 보류하라고 회원들에게 문자를 보내고 소아과개원의사회가 회원들에게 설문조사를 하고 있는 행태가 전형적인 예이다. 지난 수 년 동안 예방접종 사업을 민관협력 사업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의료계 스스로 노력해왔다. 현재는 약값정도의 예산이 배정되었지만 사업이 시작된 이상 정부는 이 분야의 예산을 줄이진 못할 것이다. 수가 또한 의료계의 많은 노력의 성과로 적지 않은 수준에서 결정되었다. 장기적으로 본다면 세금을 통한 공적 의료 사업들을 정부와 의료계가 파트너십을 이뤄 해결해 나가는 첫 번째 모델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사업이 반드시 성사되어야 하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집행부들이 회원의 뜻과 다르다는 이유로 정부정책 시행과정과 행정절차를 잘 모르는 회원들에게 결정을 떠맡기는 포퓰리즘과 보신주의의 절묘한 조합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선거제도와 맞물려 있는데 회장선출 방식인 직선제를 개선하는 것이 핵심적인 과제이다. 의료계 내에 정당이라고 할 만한 그룹이 존재하지 않고 의료정책 자체가 매우 철학적이고 복잡하기 때문에 선거기간에 보여지는 후보들의 주장만으로 누구를 지지할지 결정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 정책의 연속성 문제와 정치권, 정부와의 관계까지 고려된다면 지지후보 결정은 더욱 어렵게 된다. 이런 현실이 당선을 꿈꾸는 의료계 정치인들을 소신 있는 정책 추진보다 당장 한 표를 얻기 위해 사탕발림을 하는 포퓰리즘으로 내몰고 있다.
현행 직선제 선거제도는 미국 대통령 선거와 같이 선거인단제도로 바꿔야 한다. 민주주의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한 제도개선만으로 그 효과를 점치기 힘들고 현재 대의원들에게 맡기는 것이 불안요소로 남아있지만 큰 틀의 방향에 합의하고 실무적인 논의를 통해 보완하는 것이 옳다.
이 두 가지 선결조건이 해결되어야만 회원들이 한치 앞의 이익에 일희일비할 때 의료계 지도부가 장기적인 관점을 갖고 정부와 사회와 소통하며 소신 있는 정책 추진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후보들이 공약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후보로 거론되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큰 기대를 하기는 힘들다. 그분들이 의사협회나 서울시의사회, 대의원회 임원 시절, 의사를 위해서나 한국사회의 미래를 위해서 했다는 일들이 철학도 없고 내용도 없기 때문이다.
어떤 후보는 지역과 합종연횡을, 어떤 후보는 전문 선거꾼을 동원한 언론플레이를, 어떤 후보는 전공의 공략을 하고 있지만 다들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을 보이는 양상이다. 후보 등록이 완료되고 공약이 공개되면 이런 우려가 기우가 되어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
이번 선거가 한국사회의 미래상에 근거한 의료계의 미래를 논의하는 장으로, 정부 정책에 수동적으로 저항하는 한풀이의 장이 아닌 대안과 계획의 장으로, 지난 100년 동안 한국의 ‘의(醫)’를 책임져온 의사들의 반성과 성찰의 장으로 역할을 함으로써 한국 ‘의(醫)’분야의 100년 미래를 설계하는 논의의 장이 되길 바란다.
*이 칼럼의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