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회 입법' 맛 들인 정부

고신정
발행날짜: 2009-05-14 06:42:36
지난 국회에서 뜨거운 논란을 일으켰던 의료분쟁조정법이 다시한번 국회에 제출될 전망이다.

국회 심재철 의원은 지난 6일 의료분쟁조정제도 마련을 골자로 하는 '의료분쟁 조정 및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의 제정을 추진키로 하고, 법률 작업을 마치는대로 국회에 제정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3일 뒤, 정부가 의료서비스선진화 방안의 하나로 의료분쟁조정제도를 마련하겠다고 나섰다. 해외환자유치허용에 따라 합리적 의료분쟁제도의 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이 그 이유로, 연내 국회 통과가 목표라는 설명도 달았다.

가만히 지켜보자니 어째 모양새가 조금 이상하다. 정부 입법추진 과제라는 건지, 의원 스스로 법안의 제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입법을 추진하겠다는 건지 당최 알쏭달쏭하다.

정부가 또 다시 '우회 입법'을 선택한 것이다. 실제 최근 들어 정책집행의 신속성을 위해 우회입법을 추진하는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다.

촉박한 일정을 감안해 입법예고에서 규개위 심사와 국무회의 의결까지 거쳐야 하는 정부입법이 아닌 의원입법을 통해 법 제정이나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것.

우회 입법의 경우 정부는 법안심의과정에 참여, 충분히 자신들의 의견을 충분히 관철시키면서도 부처간 의견조율, 정부 주도의 공청회 및 여론 수렴 등의 책임에서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이점이 있겠다.

최근 있었던 '원외처방 약제비 환수법안'도 이와 유사한 사례다.

약제비 환수법안의 경우 누가 보더라도 정부의 정책의지가 짙게 배어 있었던 법안. 그러나 정부는 행정입법을 택하는 대신, 기 제출된 의원 입법안을 통과시키는데 주력했다.

정부가 '야당'의원의 입법안을 총력 지원하는 좀처럼 보기드문 모습이 연출된 것이다.

이와 관련 당시 의료계는 "이 법안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정부는 왜 정부입법을 추진하지 못했느냐?"면서 "정부가 여당도 아닌 야당의원을 통해 법안 우회 상정을 시도한 점은 스스로 법안의 정당성을 부인하는 것"이라고 맹공을 퍼부은 바 있다.

'우회 입법'. 정부 입장에서는 분명 달콤한 유혹일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의 동의를 구하는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못했다면, 법안의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실제 원외처방약제비 환수법안 상임위 처리과정에서 국회는 이미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의료분쟁조정법 또한 이에 못지 않은, 아니 그 이상의 논란이 예상된다.

조율되지 못한 법안이 무작정 국회 안으로 들어오다보니, 국회 밖에서 진행되어야 할 다툼이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국회는 스스로 할일이, 행정부는 행정부가 할 일이 따로 있다. 국회와 행정부의 '상부상조'는 도가 지나쳐서는 안될 일이다.

양쪽의 밀월관계가 깊고 길어질수록 국민들의 신뢰는 더욱 멀어져 갈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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