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to the 의료계④보험급여심사의 과거와 현재
<메디칼타임즈>는 의료계의 과거의 다양한 모습을 짚어보고 이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기 위해 'Back to the 의료계'를 연재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빨간 볼펜, 손목아대, 스피드, 골무, 그리고 족보…
30여년전 보험급여 심사 담당 업무를 하는 사람이 꼭 갖춰야 했던 물건들이다.
1977년 직장의료보험 시행 이후부터 80년대까지 진료비 청구방법은 의료기관이 명세서를 출력해 우편으로 발송하거나 직접 접수하는 방식이었다. 심사비 지급은 접수 후 30일 내에 이뤄져야 했다.
모든 것이 전산화 돼 있는 지금과는 달리 이 때는 청구 명세서 접수부터 심사, 검산, 계산, 자료 입력 등 일련의 과정이 모두 사람의 손으로 이뤄졌다.
2만여개의 의료기관에서 들어온 명세서가 쌓여있던 현장은 B4크기의 종이에서 나온 먼지로 뿌옇기만 했다.
8명이 한 조를 이룬 심사업무 담당자들은 엄지손가락에 골무를 끼거나, 종이가 잘넘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스피드 크림을 옆에 두고 할당된 명세서를 빠른속도로 넘기며 붉은색 볼펜으로 잘못 청구된 급여를 표시했다.
사무실은 시끌시끌하다. 사람이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혹시나 틀릴까봐 다른 조원들과 서로 확인할 수 있도록 잘못 청구된 심사내용을 큰소리로 말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빠질 수 없는 필수 아이템은 바로 '족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심사실 김재선 실장은 "83년1월, 처음으로 심사업무를 하게됐다. 당시에는 수시로 바뀌는 약가, 심사기준을 다 외워야 했다. 심사기준이 나오면 사람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족보를 만들어 필요할 때마다 참고했다"고 회상했다.
종이 먼지 때문에 결막염, 비염 등 직업병 생겨
심평원 심사실 심사3부 김정자 부장은 웃지 못할 당시 에피소드를 전했다.
의원급은 명세서 양이 우편으로 보낼 수 있었지만 심사건수가 1000건이 넘는 대형병원은 병원 소유 구급차를 동원하기도 했다.
김 부장은 "명세서 접수일이 빠를수록 지급일도 빠르다. 의료기관들이 앞다퉈서 먼저 접수하려고 했다. 구급차를 동원한 것도 조금 더 빨리 접수를 하기 위한 움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청구 명세서를 보관하던 캐비닛이 종이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 직원들이 다치는 일도 있었다.
하루종일 종이와 씨름을 해야 하기 때문에 직업병도 생겼다.
김 부장은 "미세먼지가 많아서 먼지로 인한 비염, 결막염 등이 많이 생겼다. 종이를 들여다 본다고 시력도 나빠졌다"고 말했다.
심사4부 이수자 부장도 "종이를 빠르게 넘기다가 손을 베여서 피가 묻어나기도 했다. 종이를 빠르게 넘겨야 했기 때문에 손목을 보호할 수 있는 아대는 필수였다"고 거들었다.
심사업무 전산화 시대 개막, EDI 도입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IT 환경이 급속히 변하고 개인용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진료비 청구방법도 전산화되기 시작했다.
1991년에는 디스켓 청구에 대한 개발에 들어가 1994년 시범사업을 실시했다. 1996년에는 디스켓 청구의 전국확대와 함께 전자문서교환(EDI) 방식이 등장했다. EDI는 1999년 7월 조산소를 제외한 전 요양기관으로 확대됐다. 심사비 지급도 15일로 앞당겨졌다.
2011년 6월 현재 전체 요양기관의 99%가 전자청구를 하고 있다. 심평원은 이보다 한발 더 나가 자체적으로 '진료비청구 포털시스템'을 구축해 의료기관의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김재선 실장은 "심사청구 업무가 복잡하고 난이도가 있기 때문에 전산 프로그램 구현이 어렵다고, 해내지 못할 거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의료기관 수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에 인력적 한계가 있었다. 80년대만해도 약 2만개이던 의료기관이 지금은 8만곳을 넘어섰다. 전산화가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고 덧붙였다.
전산화로 수시로 바뀌는 약가를 일일이 외우지 않아도 되고, 족보도 필요없다.
이수자 부장은 "전산시스템이 자동으로 심사조정, 검산, 계산을 다해주기 때문에 가격착오의 위험이 줄었다. 지금은 의학적 기준을 유의깊게 보는 정도"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