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원장, 두번째 부부 전시회…"환자와 교감해야"
사실 이 정도 수준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개인전도 아닌 부부전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취미를 살려 몇 작품 전시해 놓는 수준일 거라고 생각했다.
6일 인사동 조형갤러리에서 만난 김정일 원장의 전시회는 이런 어설픈 예상을 보기 좋게 깨뜨렸다.
▲화력 23년…뒤늦은 선택이 보람으로
강남구 논현동에 소아청소년과의원을 개원하고 있는 김정일 원장은 이번이 벌써 두번 째 부부전이다.
2006년도 첫 번째 부부전을 연데 이어 이달 6일부터 12일까지 두 번째 부부전을 갖는 것.
김 원장은 작품 하나하나를 가리키며 늦깎이 화가 인생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여기 전시장 입구부터 89점의 작품이 전시돼 있습니다. 초창기 작품에서 후반기로 갈수록 그림이 유해졌다는 평가가 많아요. 나이가 들고 그림을 알게 되면서 그림체가 풀어진 것 같습니다."
김 원장은 어릴 적부터 미대에 가고 싶었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홍익대 미술교육원에서 들어갈 것을 결심했다. 미술이 가장 싫다던 부인 역시 미술교육원을 진학해 수채화를 배웠다.
벌써 23년 전 일이다. 뒤늦은 선택은 수 십 년이 지난 후 '쏠쏠한 보람'으로 되돌아 왔다.
1993년도 의인미술전람회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데 이어 한국의사미술회 초대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명예회장을 맡고 있다.
화력이 20년이 넘어가다 보니 그의 말대로 어깨에 힘을 빼고 그린 삼각산의 잔설, 토란이 있는 집, 화석정 아랫마을, 티벳여인들까지 그림마다 오히려 푸근함과 생동감이 넘친다.
▲"환자를 관람객으로 보고 교감해야"
김 원장은 자신의 진료실을 가리켜 '작은 전시실'이라고 표현했다.
자신의 작품을 10점이나 전시해 놓고 있는 까닭도 있지만 찾아오는 환자를 환자로만 보지 않고 작품을 매개로 만나는 '관람객'으로도 생각한다는 뜻이다.
"그림을 그리는 게 환자 진료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환자를 볼 때 더욱 여유를 가지고 대하게 되니까요. 환자들이 그림에 대한 평가도 해주면서 서로 신뢰감과 교감을 쌓고 있습니다."
화가가 그림을 그려놓고 관람객이 일방적으로 이해해달라고 강요하지 않는 것처럼 의사들도 진료를 할 때 '교감'에 신경써야 한다는 주문이다.
그림에 빗대 의료계에 대한 뼈아픈 충고도 잊지 않았다.
김 원장은 "봉사와 희생이라는 사명감이 큰 직업이 의사"라면서 "만일 돈을 벌기 위해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했다면 그는 단돈 5천원짜리 이발소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그는 "정성이 없는 그림은 보면 한번에 티가 난다"면서 "관람객도 정성 없이 기교만 부린 작품에는 감동을 느끼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병의원의 인테리어나 값비싼 의료기기에 집중하지 말고 환자를 대할 때 최선의 정성을 다하라는 뜻이다.
6년 후 결혼 50주년을 맞아 3번째 부부전을 가지겠다는 포부를 밝힌 김 원장. 만 69세의 나이가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화가로서의 '제2의 인생'이 막 꽃피고 있다.
개인전도 아닌 부부전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취미를 살려 몇 작품 전시해 놓는 수준일 거라고 생각했다.
6일 인사동 조형갤러리에서 만난 김정일 원장의 전시회는 이런 어설픈 예상을 보기 좋게 깨뜨렸다.
▲화력 23년…뒤늦은 선택이 보람으로
강남구 논현동에 소아청소년과의원을 개원하고 있는 김정일 원장은 이번이 벌써 두번 째 부부전이다.
2006년도 첫 번째 부부전을 연데 이어 이달 6일부터 12일까지 두 번째 부부전을 갖는 것.
김 원장은 작품 하나하나를 가리키며 늦깎이 화가 인생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여기 전시장 입구부터 89점의 작품이 전시돼 있습니다. 초창기 작품에서 후반기로 갈수록 그림이 유해졌다는 평가가 많아요. 나이가 들고 그림을 알게 되면서 그림체가 풀어진 것 같습니다."
김 원장은 어릴 적부터 미대에 가고 싶었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홍익대 미술교육원에서 들어갈 것을 결심했다. 미술이 가장 싫다던 부인 역시 미술교육원을 진학해 수채화를 배웠다.
벌써 23년 전 일이다. 뒤늦은 선택은 수 십 년이 지난 후 '쏠쏠한 보람'으로 되돌아 왔다.
1993년도 의인미술전람회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데 이어 한국의사미술회 초대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명예회장을 맡고 있다.
화력이 20년이 넘어가다 보니 그의 말대로 어깨에 힘을 빼고 그린 삼각산의 잔설, 토란이 있는 집, 화석정 아랫마을, 티벳여인들까지 그림마다 오히려 푸근함과 생동감이 넘친다.
▲"환자를 관람객으로 보고 교감해야"
김 원장은 자신의 진료실을 가리켜 '작은 전시실'이라고 표현했다.
자신의 작품을 10점이나 전시해 놓고 있는 까닭도 있지만 찾아오는 환자를 환자로만 보지 않고 작품을 매개로 만나는 '관람객'으로도 생각한다는 뜻이다.
"그림을 그리는 게 환자 진료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환자를 볼 때 더욱 여유를 가지고 대하게 되니까요. 환자들이 그림에 대한 평가도 해주면서 서로 신뢰감과 교감을 쌓고 있습니다."
화가가 그림을 그려놓고 관람객이 일방적으로 이해해달라고 강요하지 않는 것처럼 의사들도 진료를 할 때 '교감'에 신경써야 한다는 주문이다.
그림에 빗대 의료계에 대한 뼈아픈 충고도 잊지 않았다.
김 원장은 "봉사와 희생이라는 사명감이 큰 직업이 의사"라면서 "만일 돈을 벌기 위해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했다면 그는 단돈 5천원짜리 이발소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그는 "정성이 없는 그림은 보면 한번에 티가 난다"면서 "관람객도 정성 없이 기교만 부린 작품에는 감동을 느끼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병의원의 인테리어나 값비싼 의료기기에 집중하지 말고 환자를 대할 때 최선의 정성을 다하라는 뜻이다.
6년 후 결혼 50주년을 맞아 3번째 부부전을 가지겠다는 포부를 밝힌 김 원장. 만 69세의 나이가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화가로서의 '제2의 인생'이 막 꽃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