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 시절을 치열하게 기록해야 한다

이성우
발행날짜: 2014-04-09 06:12:06
  • 고려대 의대 본과 4학년 이성우 씨

하루 150만 명이 몰린다는 명동은 인파가 사람을 휩쓴다. 3월 16일 낯익은 사내가 그 물결을 버티고 서있었다. 파도 한 가운데 선 듯 현기증이 났다. 곧은 입은 굳게 다물었지만 안광은 고성으로 그 뜻을 높였다. 같은 시각 신촌에서도 흰 가운이 여러 벌 걸렸다. 흰 가운은 외출복이 아니다. 더러운 게 묻으면 금방 알아차릴 수 있어, 오염 상태를 알기 쉬웠다.

자기 소개 부탁드린다
함현석: 대한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이하, 의대협) 회장을 맡고 있는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본과 3학년 함현석입니다.
구봉모: 의대협 의장을 맡고 있는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본과 3학년 구봉모입니다.

각각 어떻게 의장과 회장으로 선출되었나
구: 재작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제 28대 학생회장으로 당선되었고 동시에 의대협 제 11대 대의원이 되었다. 의대생들의 전국적인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생각하던 중, 그 전까지는 겸임체제로 운영되던 의대협 의장과 회장이 분리되었다. 학생들의 여러 의견을 모으고 더 나은 학생사회를 만들고자 의장 후보로 등록하였고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함: 정책국원과 정책국장을 거쳐 올해로 3년 째 의대협에 몸담게 되었다. 그 동안 의대협 활동을 하며 안타까웠던 점들이 있었다. 자기만의 시간을 버려가며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해도 그 진정성이 왜곡되는 것이 아쉬웠다. 우리의 노력이 수포가 아님을 증명하고 싶었다.

명동 의대생 침묵 시위 모습.
소리를 높이는 대신 침묵을 택했다
함: 가장 신경 쓰였던 부분은 시민들의 불편이다. 그 불편을 어떻게 최소화하면서 효과적으로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고민했다. 또한 이번 시위는 파업을 위한 투쟁이 아닌 의료 본질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그 순수성이 왜곡되고 변질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의장과 함께 밤새 머리를 맞대고 구상했지만, 아쉽게도 언론 보도에서 문구는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구봉모 의장은 이번 시위를 통해 얼굴을 제대로 알렸다. 마스크를 안 끼고 나온 이유는 무엇인가
구: 사실 침묵시위 당일 시험 기간인 학교가 많아 학생들이 많이 모일 수 있을 거라 크게 기대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예상을 훨씬 웃도는 100명의 학생들이 모여 마스크가 모두 동났다. 먼 걸음 한 학우들을 되돌려 보낼 수 없으니 마스크를 양보했다.

신촌보다 명동 시위가 더 많이 기사화되었다
구: 학우들도 더 많이 모였고 유동인구도 더 많다 보니 더 많이 기사화 된 것 같다. 신촌이든 명동이든 장소가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의 목소리를 세상에 알리고 싶었을 뿐이다.

심적으로 큰 부담이 되지는 않았는가
함: 처음 의대협에 발을 들여놓은 그 순간을 기억한다.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당시의 뜨거움을 되새겼다.

학생들은 어떻게 모였는가
함: 처음에는 1인 시위로 기획했다. 생각은 오래되었으나, 시위 3일 전이 되어서야 날짜를 정했고 급하게 대의원분들께 연락드렸다. 대의원분들께서 모두 동의해주셨고 여럿의 뜻을 모으는 게 어떻겠느냐 제안해주셨다. 미처 소식을 못 접한 학교도 있다고 들었는데 갑자기 내린 결정이라 충분히 전달되지 못했던 것 같다. SNS와 각 학교 학생회장들을 통해 모집하였고 결과적으로 100명의 학생들이 모였다.

현장에서 어려움은 없었는가
구: 명동 인파가 예상보다 훨씬 많아서 부득이 시위 장소를 옮겨야 했다. 시민들의 통행불편을 최소화하고 싶었다. 자리를 옮기는 과정에서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큰 사고 없이 잘 진행되었다. 사람들이 몰려 잠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있었다. 지나간 시민들께 사과드리고 싶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의대협 제12대 회장 함현석.
웃지 못 할 해프닝은
함: 마스크를 거꾸로 쓰신 학우 분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병원 실습을 돌지 않으면 마스크 쓰는 법을 모를 수도 있다. 그만큼 저학년 학우들도 많이 참가한 것이라 생각하고 참 대견하고 뿌듯한 모습이었다. 또 시위 현장 바로 옆에서 라디오 공개방송이 진행되고 있어서 처음에는 낙담이 컸다. 하지만 오히려 사람들에게 더 많이 노출되어 호재로 작용한 것 같다.

시위 전 절차가 궁금하다
함: 옥외 집회는 최소 48시간 전 의무신고 해야 한다. 명동 중심지는 너무 혼잡하여 허가 받을 수도 없었고 더 큰 불편을 일으키고 싶지도 않았다.

가족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는가
구: 부모님께선 기사를 통해 소식을 접하셔서 많이 놀라셨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시위를 많이 겪고 자라셨기에 그 리스크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계신다. 특히 어머니의 이해를 구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인터넷 댓글을 확인해 보았나
함: 응원해주시는 많은 분들께 감사드리고 그 분들의 격려를 잊지 않겠다. 일부 근거 없는 비방이 올라오기도 했는데, 이해의 부족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의료계 현 상황을 알리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의정협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함: 그간 정부가 밖으로 꺼내지도 못한 키워드를 의정협의를 통해 이끌어 낸 것은 정부의 자세가 변화한 것이기에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다만 강제성이 없어 합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거나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것은 심히 유감이다. 의약분업 사태 이후 정부와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같은 비극이 반복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는 없다지 않는가. 우리는 이 시절을 치열하게 기록해야 한다.
구: 추후 파업을 묻는 총투표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1차 협상안 이후 언론 일각에선 협상이 종료된 것처럼 보도 하였는데, 협상안은 최종 결과가 아닌 과정의 산물이다. 아직까지 완료된 문제는 아무 것도 없다.

덧붙여
구: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의료 현실을 잘 모르고 있다. 이번 사안은 파업이라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흘러와 주목 받았지만, 교과 공부에 치이다 보면 관심 갖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우리 학생은 의료계의 미래라고 생각한다. 의대생들이 문제의식을 깨닫고 좁은 의과대학 울타리에만 갇혀있지 않도록 더욱 노력하겠다.
함: 이번 현안은 세 줄 요약이 없다. 의과대학 공부를 하다보면 요약된 정리 본에만 익숙해지는데, 의료 현안에 있어서는 직접 찾아보고 직접 생각해보고 수동적으로 끌려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의원분들은 학우들의 대표성을 부여 받은 분들인 만큼 오피니언 리더가 되어주시길 기대한다. 학우들의 의견을 모으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나아갈 길을 개척하는 것이 여러분들만의 의무이자 특권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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