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떼돈을 벌 거야!"(1편)

정세용
발행날짜: 2014-04-10 06:08:59
  • 연세대 의대 본과 4학년 정세용 씨

"난 떼돈을 벌 거야!"

한 젊은이가 이런 말을 했다. 어떤 생각이 먼저 드는가? "귀엽네, 아주 꿈이 크구나.", 뭘 하려고 하는지는 몰라도, 자신의 분야에서 아주 열심히 하겠구나.", 혹은 조금 부정적으로 보면 "젊은 애가 돈을 벌고 싶다니, 속물적인 면이 있구나." 정도가 '노말 레인지'에 해당하는 반응일 것이다.

반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히 비정상적이다. "떼돈을 벌겠다고? 탈세를 할 생각이구나.", "보나마나 다른 사람들 등쳐먹고 바가지를 씌울 생각이겠지?", 혹은 "당장 자격 면허를 취소하고, 이 사회에서 내쫓아만 해!"

아니, 한 젊은이가 큰 꿈을 가지고 이야기한 건데, 최대한 나쁘게 봐야 속물적이라는 정도지, 비윤리적이거나 불법적인 일을 할 것이라 생각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사실, '젊은이'라는 조건에 '의사'라는 두 글자만 붙이면, 이러한 비정상적인 반응은 정상화 된다. "난 떼돈을 벌 거야!"라는 말 다음에 올 말이 "환자에게 엄청 친절하게 대해주고, 꾸준한 연구를 통해 의료 발전에 큰 기여를 함으로써, 떼돈을 벌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3분 진료에 과잉 진료는 기본으로 깔고, 731 마루타 부대의 이시이 시로가 되어, 떼돈을 벌 거야." 정도를 기대하는 것 같다.

과장한 것이 아니다. 술자리와 같은 사석에서라면 몰라도, 공석에서 의사가 돈 얘기를 했다가는 큰일이 난다. 언론에서는 의사가 '포괄수가제가 국민 건강에 해로운 이유'를 무엇이라 설명하든, 이에 대한 반박으로는 "의사는 포괄수가제를 하면 경제적 손해를 본다"는 논리면 무조건 충분한 것으로 인정받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산'(共産)을 외쳐도 괜찮은 이 시대에, 의사가 '자본'을 외치는 것은 사회적 사형감이지 않은가.

필자가 이번 네 편의 글들을 통해 다루고 싶은 주제가 이러한 것들이다. 이럴 때만 항상 어디선가 튀어 나오는 '히포크라테스 선서' 이야기, 환자와 의사가 서로 분노하고 억울해 하는 이야기들, 더 나아가 20세기 초 자본주의 사회에서 '청부'의 개념을 정립했던 막스 베버의 사상까지.

물론 다소 자극적인 제목으로 시작한 이 글의 결론이 "의사는 떼돈을 벌어야 한다."는 당연히 아니다. 의사가 윤리적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최근 원격 의료와 영리 자회사 등의 문제가 불거지자, 아니나 다를까 뜬금없는 의사의 윤리 문제가 거론되었다. 전문가의 의견이 나와야 할 시점에 정치 논리 혹은 인신공격이 나오는 순간, 이미 그 판은 진흙탕 싸움이 된다.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비판은 물 건너가고, 무엇이 진정 올바른 것인지 토론할 기회는 영원히 사라진다. 그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이 글을 쓰게 된 배경에는 그러한 문제의식이 있었고, 그렇기에 주로 두 가지 측면에서 다뤄보려 한다. 왜 이렇게 된 건가, 그리고 이게 문제가 없는가. (단, 나라마다 직업에 대한 문화나 현실이 다른 만큼, 앞으로의 글에서 이야기하는 의사를 포함한 모든 직업은 한국을 기준으로 함을 분명히 해 둔다.)

의사=(성직자 + 공직자)?

우선은 범위를 조금 넓혀서 생각해 보자. 또 어떤 직업의 젊은이가 "난 떼돈을 벌 거야!"라고 했을 때 꿈 큰 인간 대신 잠재적 범법자 취급을 받을까. 교사나 공직자, 성직자도 같은 처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의사가 이 직업들과 같은 처지라고? 십계명과 금욕, 무소유와 해탈에 일생을 바치기로 선택한 성직자야 당연히 떼돈을 벌겠다고 하는 게 이상한 것 아닌가.

물론 의사 비난의 기준이자 척도가 되고 있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시작은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으매 나의 생애를 인류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이기는 하다. 하지만 누구도 "나는 커서 엄마랑 결혼하고 같이 살 거야."라는 말을 지키지 않고, 또 지키지 않는 이유가 엄마가 너무 싫어져서 그런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것보다 사실, 대부분의 의사들이 의대에 입학할 때 한 번 쯤 읊고 까먹어 버린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의사들의 행동 기준이 되는 것도 좀 이상하다.

성직자는 이만 하고 다시 2라운드로 돌아가서, 그럼 의사를 교사나 공직자와 비교해 보자. 만약 교사도 공무원이라 한다면, 이는 의사와 공직자의 싸움이 될 것이다. 학원 강사 혹은 인터넷 강사가 떼돈을 벌겠다고 하면, 스타 강사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이라 이해할 수 있을 테니, 학교 교사와는 다른 이야기일 것이다.

일단 공직자는 평생 월급을 받는 직업이지, 절대 월급을 주는 위치인 '국가'가 될 수 없다. 게다가 최근 논란이 되는 일부 공기업이나, 소수의 고위 공직자, 국회의원 등을 제외하면, 사실 공직자는 대부분 박봉이라고 하지 돈을 많이 번다고는 할 수 없다. 정년 보장, 퇴직 연금 등의 '안정성'이 공무원의 주된 장점이고, 그래서 공무원이 선호되는 사회는 나라 경제가 불안정하고 미래가 암울하다고 하지 않는가.

여전히 공직자가 떼돈을 원하면 안 되는 이유로는 약간 부족한 것 같다. 아무래도 개념적인 측면에서, 공무원은 말 그대로 '공무'(公務)를 집행한다는 점이 나름의 중요한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공평할 公' 자를 쓰는, 여러 사람에게 공정한 심판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하는 자리인데, 월급이나 승진 이상의 '떼돈'을 원하고 있는 공직자라면? 개념적인 측면에서든, 방법적인 측면에서든, 공적인 업무와 사적인 이득의 충돌을 걱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치료할 醫' 자를 쓰는 의사(醫師)의 업무와, 의사가 떼돈을 버는 것이 충돌하는가? 의사가 자신의 직업으로 치료를 하면 그만큼의 돈을 버는 것이고, 두 개는 연관되어 존재하는 것이지 상반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건 사실 의사, 공직자, 성직자 뿐 아니라 대부분의 '직업'이라는 게 원래 그런 것이고, 다만 공직자나 성직자는 그 직업의 특성상 문제가 있다고 한 것 뿐이었다.

물론, 의사도 떼돈을 벌기 위해 비윤리적인 행동을 하며 환자의 건강을 해친다면, '치료할 醫'자와 충돌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가 실제로 존재하기에 그렇게 생각할 수는 있지만, 그러면 다시 이 글의 시작으로 돌아간다. 의사가 떼돈을 벌고 싶다고 했지, 언제 떼돈을 벌기 위해 비윤리적인 행동을 하겠다고 했나? "의업과 떼돈을 버는 것은 본질적으로 충돌하지 않아."라는 주장은 왜 이렇게 "비윤리적인 의사라면 달라."라는 예외의 지적에 허약하단 말인가.

애초에 의사는 성직자와 공직자를 합한 것에, 정년 보장과 퇴직 연금을 빼낸 직업이라 이해해야 하는가. (참고로, 그렇다고 의사를 공무원화 해서 정년 보장과 퇴직 연금을 받아내자는 주장은 절대 아니다. 필자는 그러한 생각에 결단코 반대하지만, 이 글의 주제와는 다소 벗어나므로 여기서는 쓰지 않는다.)

잘 모르겠다, 고로 나는 속았다?

혼자 고민하지 말고, 그냥 물어보자. 보건 의료 분야를 잘 모르는 필자의 친구들에게 "의사가 떼돈을 벌고 싶다고 하면 왜 안 될까?"하고 물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상은 의사가 빈부에 따라 환자를 차별하는 모습이라고들 했다. 돈이 없는 환자라도, 몸이 아프면 의사의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그렇지만 그건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 의료법 제 15조에 따라 의료인은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거부하지 못하는데, 그 '정당한 사유'에는 환자가 지불 능력이 없다는 것이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니 외상으로라도 진료를 해 주어야 하는데, 그럼 윤리적인 의사라면 이런 환자들에게 진료를 무료로 해 줄까, 마치 슈바이처처럼? 사실, 의료법 제 27조에 따라 환자의 본인부담금을 면제하거나 할인하는 행위 역시 불법이다. 물론 이 조항이 있는 실제 이유는 대형 병원이 홍보와 고객 유치를 위해 가격을 조절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지만,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환자의 빈부에 따른 대접은 의사의 윤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필자가 그렇게 대답하자, 친구들의 다음 반응은 "환자는 의사가 뭘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데, 의사가 돈을 그렇게 중요시한다면 어떠한 결정을 내릴지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필자 역시 의과대학 교수님들께서 "의사는 환자의 건강을 위해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의사의 양심이 중요하다"고 하시는 것을 많이 들었다.

병원 실습을 돌며 그러한 상황을 간접 체험해 본 것이 다인 상황에서 이에 대해 온전한 판단을 내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필자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의료가 의사의 '무법지대'는 아니라는 점이다. 의사의 모든 처방은 다 국가 기구인 '심사평가원' 관리를 받게 되며, 부적절한 처방일 경우 삭감을 받게 된다. 그러니 의사가 어떠한 행위를 한다면 분명히 그에 합당한 의학적 근거를 갖고 있다는 뜻이고, 그리고 많은 개원의들이 '삭감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로 사실 그 심사는 엄격하고 세밀하다. 그 외에도, 소수이지만 보험 회사 직원들이 보험금 지급의 적정성을 묻기 위해 의사들의 처방을 검토하는 것도 있고, 또 환자가 의료 소송을 걸었을 경우 그 책임이 의사에게 없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렇듯 의술이 기본적으로 '정보 비대칭'을 한 특징으로 가지고 있지만, 사실 그러한 특징은 모든 전문 분야에서 나타나는 것이고, 언제나 그 전문가들을 견제할 '심사평가원' 같은 존재가 딸려 있다. 법률, 과학, 혹은 예술 쪽이라 해도 말이다.

그리고 변호사가 떼돈을 벌고 싶다고 하면, 대부분 대형 로펌에 가려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가. 과학자가 순수 과학을 하지 않는다고, 영화감독이 인디 영화를 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뿐이다. 떼돈을 벌고 싶다고 해도, 논문을 조작할 거라고, 다른 영화를 표절할 거라는 생각을 먼저 하지는 않는다. 그건 분명히 엄청난 차이다. 의사는 그 반대에 해당하니 말이다.

아직 의문을 풀려면 조금 더 분석해 나가야 할 것 같다. 다음 편에서 계속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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