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의 통렬한 자기반성 "현재 위기, 스스로 초래했다"

발행날짜: 2014-10-09 05:45:40
  • '의료계 고립과 위기' 토론회…"사회 참여로 아군 만들어야"


"우리에겐 우군이 없다. 사회적으로 고립돼 있는게 현실이다."

2000년 의권투쟁 이후 강한 협회를 부르짖었던 대한의사협회가 사회적 위상과 영향력이 자꾸 퇴보하고 회원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를 솔직하게 털어놨다.

현안 과제에 매몰돼 의약분업, 저수가, 원격의료 등 의료 정책의 본질적 문제 의식과 위기감을 느끼지 못해 현재의 어려움을 초래했다며 철저한 반성을 통해 향후 똑같은 과오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8일 의협은 의협 회관 3층에서 오후 7시부터 '의료계 고립과 위기 돌파하기 : 진단과 대응 토론회'를 개최하고 과거부터 지금까지 의료계를 둘러싼 위기의 원인과 대응 방안을 모색했다.

이날 토론회는 강한 의협을 만들기 위해 회장 직선제와 강력한 대정부 투쟁선언 등 활로를 개척하기 위해 힘을 썼지만 의협의 위상과 영향력이 자꾸 퇴보하고 심지어 회원으로부터 외면받고 고립되고 있다는 철저한 자기 반성에서 기획됐다.

이날 서울대 송호근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의료의 현실과 미래 대응적 과제'라는 발제를 통해 사회학자로서 우리 의료계의 문제를 국내 사회, 환경적 틀은 물론 선진국의 비교의료제도적 관점에서 문제점을 짚어나갔다.

송 교수는 "정부가 강압적으로 정책을 밀어붙인 의약분업 이후 14년이 지났지만 상황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면서 "큰 제도의 혁신을 이루지 못한 채로 영리병원이나 원격의료를 밀어붙면서 수가로 달래는 그런 임시방편적인 일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고 운을 뗐다.

그는 "2012년만 해도 동네의원 3400여개가 폐업을 했고 개업 비용은 평균 5억원에 달해 부채 또한 3억 5천만원을 지고 있다"면서 "개원의들은 환자 수를 늘려야 적자를 면하고 대학·대형병원은 연구와 인력 배양, 병원간 출혈 경쟁의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그는 "의약분업 이후 한국 의료체제의 모순은 유지되고 있지만 정권은 복지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면서 "의료계 내부에서 이런 모순들을 소화하는 현실이 계속되면서 모순이 내재화되고 그야말로 의료계는 '비정상의 전형'이 돼버렸다"고 꼬집었다.

의료계를 둘러싼 위기를 의사들이 스스로 초래했다는 자아성찰의 목소리도 이어졌다.

송 교수는 "의료정책을 수립하는 부분에 의협을 비롯해 의사 집단의 참여가 부족했다"면서 "정권교체에 따라 정책이 변화할 때마다 의료계와 이해와 정면 대립하는 시민단체는 동원의 정치로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의사들은 내부 균열의 요인으로 역할이 미진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의사들의 영향력이 줄어든 데에는 의사들이 수 많은 하부 조직을 만들어 놓은 것도 하나의 원인이다"면서 "복지부가 정책 추진 협의를 의협과 하지 않고 다른 하위 조직과 할 때 의협의 위상은 현격히 낮아진다"고 우려했다.

그는 "의협이 의료계의 대변 기구로서의 위상을 높이려면 소통 창구의 단일화가 시급하다"면서 "하부 조직의 통일과 단일화 작업을 해야만 대외적인 전문성과 정치적 영향력이 증대된다"고 강조했다.

의료계 위기 돌파를 위해 ▲의료관련 기관 연합체 구성 ▲협회 가입 의무화 ▲대정부 정책건의 창구 일원화 ▲스마트폰 앱 구축 등 구체적인 제안도 곁들였다.

송 교수는 "2000년 의약분업 파업 당시 지식인과 노조, 시민단체, 언론 모두 똘똘 뭉쳐 있어 의협은 사회적으로 고립돼 있었다"면서 "고립을 만드는 장벽을 탈피하기 위해 대통령 주치의가 정책자문위로서 정치적인 역할을 하고 건강의료수석이 반드시 청와대에 있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환자단체에 각종 의사조직과 의료산업, 노조가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 의료관련 연합체 구성을 제안한다"면서 "의사들의 이미지 제고를 위해 전문적으로 의료 만화를 그리는 사람을 발굴해 의사 이미지를 업그레이드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만 하다"고 덧붙였다.

패널토의자로 나선 신현길 충남의사회 부회장도 의사들의 적극적인사회 참여로 고립 구조를 깨고 '아군'을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을 했다.

신 부회장은 "의사 이미지 향상을 위해 연수교육에서 비행기, 선박 내 환자 치료 교육을 해야 한다"면서 "각 병원에 응급처치 장비, 약품 키트를 비치하고 응급 연락망 구성 등 유사시 민관군 협력에 주도적으로 나서면 대외적인 인식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의사들 만큼 기부를 많이 하는 직종도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오히려 사회적으로는 '도둑놈'이라는 그릇된 인식도 있는 게 사실이다"면서 "사회 기부금을 통합 운영해 대내외 이미지를 높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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