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 지원 첫날, 엉망진창 시스템에 의사도 환자도 울었다

박양명
발행날짜: 2015-02-26 06:06:39
  • 정보입력·처방 등록 모두 먹통, 결국 수기 처방…50분 이상 소요

|현장|금연치료 건강보험 지원사업 첫 날

50분. 금연상담과 처방을 위해 의원을 거쳐 약국까지 들렀다가 나오는 데 걸리는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50분 동안 의사와 '금연'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며 상담을 한 것도 아니다. 먹통이 된 건강보험공단 청구 프로그램 화면을 의사와 함께 들여다보며 '어떡하지, 어떡하지'만 반복한 시간이었다.

25일. 정부의 금연치료 건강보험 지원사업이 본격 시작된 첫날 오후, 금연 상담을 받기 위해 메디칼타임즈는 서울 서초구 G의원을 직접 찾아가 봤다.

의사와 환자가 함께 모니터를 보면서 오류를 일으키는 청구프로그램을 반복 실행해야 했다.
늦은 오후였음에도 기자가 G의원의 첫 번째 금연상담 환자였다.

"점심시간에 테스트를 해봤는데 시스템이 불안정했지만… 건보공단 콜센터에 전화를 해봐도 이해해달라는 답만 돌아오더라구요. 오셨으니 한번 시도해봅시다."

의욕에 찬 모습으로 첫 환자를 반겼던 G의원 원장의 얼굴에는 곧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금연 참여자의 기본정보를 입력하는 첫 단계에서부터 홈페이지가 멈춰버렸기 때문이다. 문진표, 진료상담 및 처방 내용을 모두 등록하고 처방전 출력 버튼까지 눌러야 마무리되는 멀고 먼 단계가 남아 있는데 처음부터 막혀버린 것이다.

"하, 준비를 야무지게 하던지…." 원장은 긴 한숨과 함께 눈치를 본다.

기껏 입력했더니 '오류'라는 창이 뜨며 내용이 날아가 허탈하게 만드는가 하면 아예 입력 자체가 되지 않기도 했다. 정보를 입력하고 다음 화면으로 넘어갈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 사이의 적막은 서로 민망하기 그지없었다.

처방 프로그램 실행 과정에서 생기는 오류 메시지
그렇게 처방 프로그램과 씨름하기를 세 번.

겨우 환자 정보는 등록했는데, 이번에는 처방 등록이 먹통이었다. 등록 후 '인쇄' 버튼을 눌렀더니 입력한 내용은 하나도 출력되지 않았다. 결국 이 원장은 '챔픽스 0.5mg'이라며 손으로 쓴 처방전을 건넸다.

손으로 쓴 영수증과 처방전
원장은 미안했는지 "원래 나도 성질이 급하고 욱하는 성격인데, 오늘만 참으려고요. 첫날이니까"라며 '첫날'임을 거듭 강조했다.

그리고는 "약국에 연락해놓을 테니 처방전을 갖고 내려가서 약을 받으세요. 일주일 후 다음 상담일에 봅시다"라고 말했다.

시스템만 완벽하다면 상담부터 입력까지 넉넉하게 10~15분이면 충분할 것을 시스템 먹통으로 40분 넘게 진료실에서 환자와 의사가 모니터와 씨름을 하는 진풍경이 벌어진 것.

약국도 처음 찾아온 금연 환자에 우왕좌왕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처방 프로그램과의 사투를 겨우 마무리짓고 받은 수기 처방전을 들고 찾아간 약국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의사 처방 내용이 약국으로 넘어가지 않아 약값을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약사는 "내일 오시면 안될까요"라는 청천벽력 같은 선고를 전했다.

그렇게 약 1시간을 병원과 약국에 머물렀지만 약을 받지 못해 다음날 다시 발걸음 해야 하는 불편함을 겪게 됐다.

금연치료 건보적용 첫날이 환자는 답답하고, 의사는 진땀 흘리고, 약사는 약을 판매하지 못한 아이러니한 하루였다.

혹시나 G의원만의 문제인가 싶어 금연상담을 신청한 일선 의원에 문의해봤다.

아니나 다를까, 기다렸다는 듯이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 명의 환자를 보는 데 최소 20분은 기본이었다. 환자는 답답하고, 의사는 진땀 흘리는 하루였다. 개원의들은 '처음'이라는 것을 위안으로 삼고 있었다.

경기도 C의원 원장은 "보건소에 다니다가 광고를 보고 병원에서 치료 받아보려고 한다며 환자가 한 명 왔었다. 정보를 입력하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환자한테 약국에 전화 해놓을 테니 받아가라고 했다"고 털어놨다.

서울 M내과의원 원장도 "이미 라포가 있는 환자를 대상으로 예약 상담했다. 청구시스템 서버가 먹통이니까 2시간씩 기다리게 만들었다. 우선 상담만 하고 오후에 다시 처방전만 받으러 오라 했다"며 "너무 갑작스럽게 하다보니까 준비가 덜 된 것 같다. 내일이면 좀 나아지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금연 상담하다가 다른 질병으로 찾아온 환자들의 항의에도 직면해야 했다.

서울 Y내과의원 원장은 "금연 상담에 30분이 걸렸다. 그동안 밖에서 다른 질환으로 찾아온 환자들이 불만을 터뜨리더라. 그냥 발걸음을 돌리는 환자도 있었다"고 말했다.

온종일 청구 서버가 말썽을 부리자 급기야 금연상담 진료를 포기하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의사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금연상담을 하러 온 환자에게 보건소를 안내하며 돌려보내고, 금연상담 진료를 포기했다는 글들이 속속 게시됐다.

한 개원의는 "금연지원 정책의 문제점은 환자에게나 의사에게나 너무 복잡하다는 것이다. 한번 치료하는 데 시간이 너무 걸린다. 너무 복잡해서 다른 환자 진료가 안 될 지경"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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