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훈정 전 대한의사협회 감사
지금 대한의사협회는 시쳇말로 멘붕에 빠졌다. 지난 4월 정기대의원 총회에서 선출된 대의원의장이 무효라는 주장 때문이다.
간략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다섯 명이 출마한 1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나오지 않아 상위 두 명이 2차 투표를 치렀는데, 공교롭게도 동수를 득표했다. 그래서 당시(전임) 대의원의장이 3차 투표를 진행하였는데, 얼마 전에 알고 보니 득표수가 같을 때는 연장자를 당선자로 한다는 규정이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3차 투표 끝에 당선된 후보가 연소자임으로써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명색이 10만 의사를 대표하는 대한의사협회의 최고의결기구인 대의원회의 수장을 뽑는 선거에서,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규정(대의원회 운영 및 운영위원회 규정)조차도 몰랐다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 규정에 따르면 지난 4월에 선출된 대의원의장(현 의장)의 선출은 무효가 된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현 의장의 자격이 없다면 그가 주재한 정기대의원 총회에서 이뤄진 모든 선출직의 선출과 안건들의 의결마저도 무효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욱 황당한 일은, 선거 얼마 뒤에 이 사실을 여러 대의원들이 알게 되었으나, 사건의 파장을 우려하여 쉬쉬하고 있었다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다. 이건 차마 사실이 아니라고 믿고 싶으나, 만약 그렇다면 정말 무책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일이 세간에 알려지자 많은 의사들이 이로 인해 의사협회의 위상이 흔들리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언젠가 터질 게 터졌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지금껏 의사협회와 대의원회가 보여준 구태의연한 방식들이 대형 사고를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의 대의원총회를 방청해 본 회원이나 외부인이라면 누구나 느꼈을 테지만, 코리언타임으로 늦게 시작된 회의가 초반부터 축사나 시상 등으로 시간이 늘어지다가, 나중에는 시간에 쫓겨 중요한 안건들을 심도 있게 다루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회의 역시 정관이나 제규정, 회의법 등을 숙지하지 못한 대의원회 운영진이나 대의원들이 진행 순서나 토의 방법 등을 갖고 싸우다 귀중한 시간을 허비한다. 예컨대, 한 사람이 계속 발언권을 얻어서 똑같은 얘기를 반복하거나 의사진행발언을 얻은 자가 안건과 관련된 장광설을 늘어놓는 식이다.
작년 4월 노환규 전 회장 불신임을 전후하여, 지금껏 대한의사협회가 파행된 책임이 집행부뿐만 아니라 대의원회에도 있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에 부랴부랴 대의원회가 만든 것이 혁신위원회였다.
의협이 뼈를 깎는 심정으로 근본적인 구조개선을 해보자는 것이 그 취지였고, 필자 역시 의협의 체질을 크게 바꾸는 강도 높은 개혁을 주문했었다. 그러나 몇 달 후 혁신위원회는 별다른 성과 없이 해체되었고, 의협이나 대의원회는 옛날 그대로였다.
이번 사태가 어떻게 매듭지어질지는 알 수 없으나, 지금처럼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다가는 의사 회원들이 의협과 대의원회에게서 더욱 멀어지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규정이나 회의 방식도 제대로 모르고 밤낮 소모적인 정쟁만 벌이다가 정작 회원들의 생존과 직결된 중차대한 안건들은 허술하게 처리되고, 의료계의 절박한 위기에도 별다른 행동을 보이지 않는 협회나 대의원회를 누가 신뢰할 수 있겠는가.
필자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이 책임을 지지 않는 풍토라고 생각한다. 이는 우리 의사 사회도 마찬가지다. 지금이라도 회원들의 마음을 붙들고자 하는 생각이 남아있다면 이번 일을 예사롭게 처리해서는 안 된다. 책임지고 물러날 사람은 물러나시라. 그리고 이번 기회에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라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고 회원들이 폭넓게 참여하는 열린 조직으로 환골탈태를 시작해야 한다.
예전보다 많이 낮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사회에서 의사들을 높게 보는 이유는 공부를 많이 했거나 돈을 더 벌어서가 아니다. 적어도 의사라면 일반 사람들보다는 더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합리적으로 행동할 것이라는 기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기대가 우리의 대표 단체에서조차 무너진다면, 앞으론 어디 가서도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칼럼의 내용은 메디칼타임즈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간략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다섯 명이 출마한 1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나오지 않아 상위 두 명이 2차 투표를 치렀는데, 공교롭게도 동수를 득표했다. 그래서 당시(전임) 대의원의장이 3차 투표를 진행하였는데, 얼마 전에 알고 보니 득표수가 같을 때는 연장자를 당선자로 한다는 규정이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3차 투표 끝에 당선된 후보가 연소자임으로써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명색이 10만 의사를 대표하는 대한의사협회의 최고의결기구인 대의원회의 수장을 뽑는 선거에서,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규정(대의원회 운영 및 운영위원회 규정)조차도 몰랐다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 규정에 따르면 지난 4월에 선출된 대의원의장(현 의장)의 선출은 무효가 된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현 의장의 자격이 없다면 그가 주재한 정기대의원 총회에서 이뤄진 모든 선출직의 선출과 안건들의 의결마저도 무효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욱 황당한 일은, 선거 얼마 뒤에 이 사실을 여러 대의원들이 알게 되었으나, 사건의 파장을 우려하여 쉬쉬하고 있었다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다. 이건 차마 사실이 아니라고 믿고 싶으나, 만약 그렇다면 정말 무책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일이 세간에 알려지자 많은 의사들이 이로 인해 의사협회의 위상이 흔들리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언젠가 터질 게 터졌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지금껏 의사협회와 대의원회가 보여준 구태의연한 방식들이 대형 사고를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의 대의원총회를 방청해 본 회원이나 외부인이라면 누구나 느꼈을 테지만, 코리언타임으로 늦게 시작된 회의가 초반부터 축사나 시상 등으로 시간이 늘어지다가, 나중에는 시간에 쫓겨 중요한 안건들을 심도 있게 다루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회의 역시 정관이나 제규정, 회의법 등을 숙지하지 못한 대의원회 운영진이나 대의원들이 진행 순서나 토의 방법 등을 갖고 싸우다 귀중한 시간을 허비한다. 예컨대, 한 사람이 계속 발언권을 얻어서 똑같은 얘기를 반복하거나 의사진행발언을 얻은 자가 안건과 관련된 장광설을 늘어놓는 식이다.
작년 4월 노환규 전 회장 불신임을 전후하여, 지금껏 대한의사협회가 파행된 책임이 집행부뿐만 아니라 대의원회에도 있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에 부랴부랴 대의원회가 만든 것이 혁신위원회였다.
의협이 뼈를 깎는 심정으로 근본적인 구조개선을 해보자는 것이 그 취지였고, 필자 역시 의협의 체질을 크게 바꾸는 강도 높은 개혁을 주문했었다. 그러나 몇 달 후 혁신위원회는 별다른 성과 없이 해체되었고, 의협이나 대의원회는 옛날 그대로였다.
이번 사태가 어떻게 매듭지어질지는 알 수 없으나, 지금처럼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다가는 의사 회원들이 의협과 대의원회에게서 더욱 멀어지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규정이나 회의 방식도 제대로 모르고 밤낮 소모적인 정쟁만 벌이다가 정작 회원들의 생존과 직결된 중차대한 안건들은 허술하게 처리되고, 의료계의 절박한 위기에도 별다른 행동을 보이지 않는 협회나 대의원회를 누가 신뢰할 수 있겠는가.
필자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이 책임을 지지 않는 풍토라고 생각한다. 이는 우리 의사 사회도 마찬가지다. 지금이라도 회원들의 마음을 붙들고자 하는 생각이 남아있다면 이번 일을 예사롭게 처리해서는 안 된다. 책임지고 물러날 사람은 물러나시라. 그리고 이번 기회에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라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고 회원들이 폭넓게 참여하는 열린 조직으로 환골탈태를 시작해야 한다.
예전보다 많이 낮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사회에서 의사들을 높게 보는 이유는 공부를 많이 했거나 돈을 더 벌어서가 아니다. 적어도 의사라면 일반 사람들보다는 더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합리적으로 행동할 것이라는 기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기대가 우리의 대표 단체에서조차 무너진다면, 앞으론 어디 가서도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칼럼의 내용은 메디칼타임즈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