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황진철의 '비오니까'
|황진철 원장 칼럼(그랜드비뇨기과)|
매달 중순, 비뇨기과 의사인 나는 국가로부터 가르침을 받는다.
‘염증성처치가 단순처리로 삭감’
‘각종 검사를 포함한 진단 및 치료행위는 진료상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만 실시될 수 있도록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국가 소속의 그들은 비뇨기과를 아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내가 한 처치나 치료에 대해 대단히 해박하다. 아니 나를 뛰어 넘는 듯하다. 그리고 평가를 한다. 나를 심사하고 평가하는 그들이다. 전지전능하다.
난 의학적인 근거에 합당하게 검사를 하고, 정확하게 진단하려 노력하며, 필요한 진료와 치료를 한다. 그런데 전지적 시점의 그들의 판단은 다르다.
‘... 삭감 처리함’
그들의 힘은 실로 대단하다. 내가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리고, 병원을 운영하는 경제적 토대의 절반 이상을 그들이 평가한다. 국가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날, 난 한없이 작아진다. 자료를 준비해서 다시 그들에게 호소를 하고, 평가를 기다린다. 며칠이 지나 건조한 종이 몇 장이 내 책상 위에 놓여있다.
‘거기 비뇨기과 원장! 우리가 맞다니까, 괜히 고생 말고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해. 그럼 그만큼 돈으로 줄게!!’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물론 의학적 근거와 결과가 그 힘이다. 그렇지만 매번 평가를 받아야 한다.
난 진심으로 비뇨기과에 대해 자부심이 큰 사람이다. 그런데 개업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질환보다는 미용을 하는 나의 친구가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적게 버는 것이 자존심을 다치게 했던 적.. 적어도 나는 아니다. 내 친구는 전자차트를 구비할 필요도 없다. 질환을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에 심사를 받고 평가를 받지도 않는다. 비급여.. 본인 스스로 양심과 의학적 근거에 맞춰 진료하고 행복을 찾는다. 그런데 난 아니다.
진료실에도 찬 기운이 느껴지는 늦가을, 뚱한 표정의 여성이 내 앞에 앉아 있다. 한달에 두 번 정도는 방광염으로 고생을 한다고 한다. 그때마다 항생제를 먹으며.. 그녀는 한달의 절반을 항생제와 함께 사는 것이다. 안타까웠다. 문진을 하는 과정에 성매개감염병이 의심됐다. 충분히 설명하고 검사를 하고 치료를 했다. 치료 종료 후 얼마나 지났을까? 뚱한 표정은 어디로 가고 환하게 웃으며 따뜻한 커피를 담아 왔다. 병원 밖의 찬공기도 그녀의 따뜻함을 이기지는 못하는 듯하다. 직원들에게도 나눠 주며, 연신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갔다. 참으로.. 진심으로.. 행복했다.
그리고 보름이 더 지났다.
‘각종 검사를 포함한 진단 및 치료행위는 진료상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만 실시될 수 있도록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환자인 그녀는 만족했다. 나는 더욱 감사하며 행복했다. 그녀의 뚱한 얼굴과 환한 미소가 내 눈가에 사라지기도 전, 그 진료는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가 아니란다. 너무 허탈했다. 화가 났다. 미친 듯이 허공에다 대고 외쳤다.
“넌 도대체 근거가 뭐냐? 빅브라더!”
진료를 마치고 퇴근하는 길, 난 뚱한 표정으로 걷는다. 매서운 찬 바람을 헤치며..
그리고 ‘십센치’ 노래를 듣는다. ‘십센치’ 노래를!!